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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16살에 불로집 큰 며느리 되어

[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3]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세월이 흘러 분녀는 어느 사이 함치르한* 머리태가 치렁치렁한 북간도 예쁜 처녀로 자라나기 시작했단다.

 

분녀가 16살 되던 해의 단오절이었다는구나. 검은색 치마에 흰저고리를 입고 긴 머리태에 붉은색 댕기를 드리운 분녀도 처음으로 엄마 따라 그네터로 놀러 나갔단다. 하야말쑥한 동그스럼한 얼굴, 살포시 머리 숙이고 웃는 모습은 제법 아리따운 처녀라구 모두 칭찬하시더란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님 두 분이 분녀 가까이 다가와 살뜰하게 이것저것 묻더란다.

 

“와, 머리태가 좋기도 하구나! 몇 살이지?”

 

분녀는 안면 없는 사람과 처음 대면하는지라 부끄러우면서도 봉긋한 가슴이 이상하게 뛰더란다. 그러나 분녀는 엄마와 함께 기분 좋게 놀다가 집에 왔었단다. 그 후로부터 얼마 안 되어 분녀네 집에선 분녀를 시집보낸다고 하더란다.

 

과연 분녀는 뭐가 뭔지도 몰라 엄마에게 물으니 “사람 좋다는구나!”하더란다. 분녀는 그저 “사람 좋다는구나!” 그 말 한마디에 모든 시름 다 놓고 더 묻지도 안았단다. 하여 분녀는 신랑이란 사람은 한 번도 못 보았으나 데리러 온 그분을 따라 자그마한 보따리를 들고 걸어서 시집이라 하는 그 집에 갔단다. 그때 분녀는 “시집은 이렇게 가는가.”고 했단다.

 

시집간 날 첫날밤에 한 남자가 들어와서 등잔불을 켜더란다. 분녀가 피뜩 치여다보니 후리후리한 큰 키에 쌍겹진 두 눈 곱실곱실한 머리에 점잖은 모습이더란다. 분녀가 부끄러워 머리 숙이고 있는데 자기소개부터 하더란다. 알고 보니 분녀는 자기보다 12살이나 이상인 남편을 만났는데 거기다가 또 전처가 해산하다가 돌아가고 지금은 다섯 살짜리 녀자애가 있는 계모라는 딱지를 붙혀 가지고 시할배까지 3대가 살아가는 큰 가문에 이미 시집간 시누이 셋에 또 끌끌한 시동생 둘이나 있는 “불로집”이라는 큰 가문의 큰며느리로 시집 왔더란다.

 

그제야 가마도 타지 않고 예단도 없이 엄마가 시집보낸 영문을 알 것 같더란다. 분녀는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마음속으로 엄마를 탓하였단다. 16살 어린나이에 벌써 5살이나 되는 애의 엄마 노릇까지 해야 하겠으니…… 분녀는 어슴푸레한 등잔불밑 구석진 곳에서 한참이나 섧게 흐느끼었단다. 신랑이라는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기다리더란다.

 

 

한참 후에 분녀도 좀 진정하고 눈물을 닦는데 신랑은 얼른 다가와 분녀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곤 분녀를 찬찬히 보다가 와락 끌어 안아주면서 “미안하오. 나를 믿소. 나와 함께 잘 살아보기오.”하더란다.

 

그 말에 분녀는 왜서인지 싫지도 무섭지도 않아 처음으로 남자의 품에 안겼단다. 그리곤 그 남자가 펴주는 이불속에 분녀를 안아다 눕혀줘도 분녀는 그 신랑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다는구나!

 

이튿날 아침에 분녀는 저절로 긴 머리를 보기 좋게 얹고 큰집 며느리로, 안해로, 형수로, 더욱이는 엄마로까지 탈바꿈하였단다. 그 후엔 눈물은 흘리지도 않았고 불평도 입 밖에 번지지 않았으며 시어머님의 말씀대로 어머님의 며느리로, 딸로 변화하였단다. 그 분녀가 바로 나의 엄마, 너희들의 외할머니이시란다.

 

* 함치르르하다 : 윤이 나는 모양이 깨끗하고 반지르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