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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1주기 추모식

10일(일) 오전 11시, 도산안창호기념관 강당에서 열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이자 민족 계몽 운동가였던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81주기 추모식」이 10일(일) 오전 11시, 도산안창호기념관 강당(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에서 열린다.

 

(사)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김재실) 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추모식은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학생,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순흥 안 씨 안명옥 대표의 약전 봉독,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김재실 이사장의 추모식사와 국가보훈처 이병구 차장 등의 추모사, 도산 뮤지컬팀의 추모가,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안창호 선생(1878. 11. 9.~1938. 3. 10.)은 평남 강서에서 출생하였으며,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를 열어 자주 독립과 국민의 자각을 역설하였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05년 동(同) 회를 ‘공립협회’로 재창립하여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공립신보>를 발행하였다.

 

 

1907년 귀국 후,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였고, 1909년에는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펼쳤다.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1913년에는 ‘흥사단’을 조직하여 민족계몽운동과 국권회복 활동을 펼쳤다. 1919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민대회를 열고 파리강화회의에 국민회 대표 파견 계획을 추진하던 중,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에 취임하여 연통제를 실시하고 독립신문을 펴내는 등 독립운동의 방략을 지도하였다.

 

1923년에는 ‘대독립당’을 결성하고, 1924년에는 남경에서 ‘동명학원’을 설립하여 실력배양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1930년에 ‘동인호조사(同人互助社)’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합심 협력을 이끌어내었으며, 1931년 1월에는 흥사단 제17회 원동대회를 주재하여 대회장으로 선출되고 <흥사단보>를 발행하는 등 국민의 자질 혁신과 청년 인재 양성 등 흥사단의 이념 구현에 주력하였다.

 

조국의 자주독립에 헌신하던 선생은, 1937년 6월 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병을 얻어 12월 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1938년 3월 순국하였고, 이후 망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 현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