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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창(唱)에서 숨자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1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앞에서 시창(詩唱)과 시조창(時調唱)은 박자가 느리며, 장중한 창법으로 부르는 것이 비슷하고, 각 구성음의 기능, 곧 요성(搖聲)이나 퇴성(退聲)의 자리가 동일하며, 시조창이나 12가사에 나오는 가락들이 시창에도 보이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시창과 시조, 양자가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노랫말인 시(詩)가 다르다는 점, 곧 시창은 7언의 한시이고, 시조는 3장 형식의 시조시란 점이다. 송서와 율창(시창)을 주전공으로 공부하면서 호흡과 소리의 기본이 튼튼해졌다는 이송미양은 한자 풀이를 통해 시의 의미를 되새기고, 발음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며 특히, 발성을 통해 호흡의 안정, 공명, 역동성의 유지가 가능해 졌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시창의 음악적 분위기와 악구의 단위를 결정하는 숨 자리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다. 송서나 시창의 창법을 관심있게 살펴보면 그 음악적 분위기가 흡사 가곡을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영락없이 시조창을 부르는 듯하기도 하다. 또한 부분적으로는 12가사의 한 부분을 듣는 듯 같아서 마치 정가의 음악적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시조창이나 가사창에서는 고음의 처리를 가성(假聲 -falsetto)창법을 활용하고 있는데, 가성창법이란 진성, 또는 통성이 아닌 속소리로 내는 변칙의 창법이다. 이러한 가성창법은 시조나 가사창에서는 특징적인 창법으로 쓰이고 있으나 남창가곡에서만은 절대 금기시 되어 온 창법이다. 남창가곡에서는 가성창법 뿐 아니라, 가슴소리인 흉성(胸聲)도 기피대상이었고, 더더욱 생목이나 겉목의 사용은 가곡의 전통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창법이었다.

 

예를 들어 남창가곡 가운데 계면조 <소용이>라는 곡은 “어흐마 긔 뉘 오신가, 건넌 불당의 동령 중이 올러니-”의 시조시를 부르는 노래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처음부터 汰(f)로 높게 시작한다. 汰로 높게 시작된 음은 潢을 거쳐 林으로 떨어지고, 다시 潢-㳞을 거쳐 제 15박(장고점; 鼓)에서 청임종(淋)으로 올라간다. 이처럼 높은 淋도 가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들 어떠허며 저러헌들 어떠허리-”로 시작되는 계면 <삼수대엽>이라는 곡조에도 이같은 현상이 보이고 있다.

 

남성창법에서는 금기시 되어 온 가성창법이 여창가곡에서는 자연스럽고 고운 창법으로 쓰여져 왔으니 남창 가곡과 여창가곡의 창법상 차이가 분명하다는 점을 알게 한다.

 

대체로 가곡창의 음역은 낮은 㑖(a♭)~汰(f) 까지 약 두 옥타브 정도로 웬만한 사람이면 무리없이 부를 수 있는 음역대이다. 그런데 淋과 같은 고음은 가성이 아니면 통목으로는 내기가 어려움에도 남창 가곡에서는 가성을 허락하지 않고 있어서 요령이나 변통(變通)이 안 된다. 장중미의 극치라고나 할까? 장중미를 나타내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발음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종장의 마지막 구절인 하노라, 하여라, 하느니, 등의 양성모음은 모두 허노라, 허여라, 허느니, 등의 음성모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송서나 시창의 음악적 요소 가운데 호흡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는 요소이다. 정해진 장단형은 물론이고, 그 흐름도 불규적으로 가락을 이어가는데, 어느 단락에서, 또는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 어려운 부분이다. 혼자서 부를 때에는 숨자리가 그나마 자유롭지만 둘 이상 여러 명이 제창으로 부를 때에는 숨자리가 바로 소통의 체계를 이루는 척도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가령 복잡한 거리에 신호등 체계가 고장났다고 생각해 보면 짐작이 될 것이다.

 

 

음악에서 숨자리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노래를 부르는 중간, 중간에 창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숨을 쉬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소리가 이어가는 중간에 숨을 쉴 수는 없다. 특히 송서나 시창과 같은 장르의 소리들은 장단의 규칙성이 없고, 가락이 물 흐르듯 자유스럽게 불러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악구의 단락을 어떻게 정하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8구로 이루어진 촉석루의 숨 구를 살펴보면, 제일 짧은 구절은 2숨으로 부르고 있고, 긴 구절은 무려 5숨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그 외에는 대부분이 3-4회의 숨 자리를 갖고 있다.

 

장단이 없거나 불규칙적일 때, 숨자리는 음악의 진행을 이끌어 가는 유일한 단위가 되는 것이다. 기악에도 성악에도 박자나 장단에 의하지 않는 음악은 많다. 어쩌면 이 일정치 않은 길이의 악구가 숨에 의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모습이 인위적이지 않아서 더더욱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다.

 

송서나 시창을 배우면서 호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학생들이 있어 소개한다. 초등학교 3학년때 부터 민요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송서와 율창의 장르를 경험하게 된 김서정 양은 소리를 쭉쭉 뻗어나가는 힘과 호흡의 중요성이야말로 장단이 없는 송서나 율창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특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성유심문과 계자제서를 좋아하며 촉석루도 즐겨 부른다고 했다. 산공부를 가서 처음 계자제서를 배우는 날이었는데, 가락을 뻗어나가다가 호흡을 하고, 다시 긴 호흡으로 가락을 이어가는 형태가 너무 재미있어서 친구들과 하루 종일 불렀는데, 너무도 열심히 연습을 한 탓에 배우던 친구들 모두가 목이 쉬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한 숨에 어느 부분까지 뻗어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을 경쟁적으로 연습한 어린 학생들의 경험담이다.

 

대학 재학중인 최윤희 양도 어려서부터 송서와 율창을 배우기 시작한 학생이다. 송서율창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긴 호흡으로 소리를 이어나가는 음악이기 때문에 호흡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또한 호흡은 같은 음정이 변하지 않게 지속하는데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이와 함께 정확한 음정을 유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노래에 있어 호흡의 중요성을 경험한 이야기이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