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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박자가 아닌 또 다른 시간의 단위, 『숨』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송서나 시창의 음악적 분위기는 정가와 유사하나, 가성(假聲-falsetto)창법을 허용하는 점에서 보면 시조나 가사창과 가깝다는 점, 가성창법이란 속소리를 쓰는 변칙의 창법으로 남창가곡에서는 금기시 된 창법이란 점, 발음법에서도 하노라, 하여라, 하느니, 등은 모두 허노라, 허여라, 허느니, 등의 음성모음으로 바꾸어 장중미를 강조한다는 점, 송서나 시창의 불규칙 장단과 악구(樂句)의 단락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호흡, 즉 <숨자리>라는 점, 등을 이야기를 하였다.

 

호흡은 비단 정가나 민요, 송서, 율창, 등 일부 성악에서만 강조되는 음악적 조건은 아니다. 성악 전반은 물론이고, 기악합주곡에서도 매우 중요한 음악적 요소이다. 특히 장단의 흐름이 일정치 않은 음악에서의 호흡은 그 중요성이 배가된다고 하겠다.

 

한국의 대표적인 악곡으로 널리 알려진 <수제천>이란 궁중음악이 있는데, 이 곡이 바로 불규칙 장단으로 이어가는 대표적인 음악이다. 원래의 이름은 정읍(井邑)으로 백제의 정읍사와 관련이 있으나 조선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가사는 잃고 관악합주곡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악곡의 악기 편성은 피리와 대금, 해금, 소금, 아쟁과 같은 선율악기들과 북, 장고의 타악기로 편성된다. 각 장단은 피리가 주선율을 이끌고 있으며 피리가락이 끝난 이후에는 피리 이외의 선율악기들이 연음(連音)가락을 연주하며 다음 장단의 시작을 이어준다. 장단과 장단을 잇는 연음가락은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1장(章)과 2장, 또는 2장과 3장 등 장별 사이에는 비교적 긴 연음가락이 붙는다.

 

수제천의 장단형태는 쌍(雙)-편(編)-고(鼓)-요(搖)의 장고점 순서가 반복되나 각 장고점 사이의 소요시간은 일정치 않다.

 

장고의 주법에서 쌍(雙)이란 장고의 양면을 동시에 치는 합장단인데, 장고채를 쥔 오른손과 왼손바닥으로 북편을 동시에 울리는 주법이며 구음(口音)은 <떵>, 또는 <덩>이라고 표시한다. 편(鞭)은 채편을 말한다. 장고채로 오른쪽 면을 치는 주법이고, 구음은 <덕>이다. 고(鼓)는 북편이다. 장고의 왼편을 왼손바닥으로 울려주는 주법으로 그 소리는 <쿵>, 또는 <궁>으로 구음한다. 그리고 요(搖)는 장고채로 채편을 굴려주는 주법인데, 구음은 <더러러러>로 표기한다. 장고의 <요> 주법이 끝나게 되면, 다음 장단의 시작인 <쌍>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수제천과 같은 느린 음악에 있어서는 쌍의 주법을 동시에 치지 않고 ‘갈라치기’주법으로 연주한다. 갈라치기 주법이란 오른손의 채를 먼저 친 다음, 시차를 두어 왼손바닥으로 울려주는 주법으로 더더욱 멋스럽게 보인다. 달리 선편후수(先鞭後手)의 주법이라고도 하며 구음(口音)은 <기덕, 쿵>으로 부르고 있다. <쌍>의 갈라치기 주법은 대체로 느린 악곡, 예를 들면 관악 영산회상의 <상령산>이라든가, 가곡의 일부 느린 악곡 등에 종종 쓰이고 있다.

 

수제천과 같은 불규칙적인 장단은 매 장단의 소요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가령 제1장단의 연주 소요시간이 50초였다면, 제2장단 이하는 50초를 넘기도 하고, 또한 모자라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부분은 느리게 연주하고, 또한 어느 부분은 빠르게 연주하는 데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곡조는 혼자서 독주를 할 경우는 몰라도 합주를 한다는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나 이외의 다른 주자들의 가는 길이나 흐름도 익혀야 연주가 가능한 법인데, 박자만 세면서 연주를 하기 때문에 합주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송서나 율창, 또는 시창을 여러 명이 동시에 제창으로 읊어 나갈 때에도 박자의 단위가 불규칙적이어서 매우 어려울 것이라 판단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수제천과 같은 불규칙 장단의 합주음악이라든가, 또는 송서 율창을 여러 명이 제창함에 있어서 박자에 의하거나 또는 일정한 장단에 의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그 가락들을 불러 나갈 것인가?

 

 

나는 박자가 아닌 또 다른 시간의 단위가 바로 호흡, 곧 『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령, 수제천의 한 장단을 몇 숨에 연주하느냐? 하는 문제는 어느 부분까지 이어가다가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쉬고, 다시 시작하고, 맺고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제천의 주선율 악기들은 피리나 대금과 같은 악기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관악기들은 연주자들의 호흡을 기본으로 한다. 한 장단의 소요시간을 약 50초로 측정할 때, 인간의 <숨>은 제한을 받게 마련이어서 이를 한 숨에 처리할 수는 없다. 50초의 길이라면 최소한 두 숨이나, 세 숨 이상으로 처리해야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설이나 산문을 음악적으로 읽어나가는 송서나, 또는 시창과 같은 박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가락을 여러 명이 함께 읊어 나가기 위해서는 숨자리를 정해 두는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구절을 몇 숨에 읊어야 되는가?, 어느 가락,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쉬고, 다시 가락을 이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 창자들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약속으로 이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