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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시대, 불을 멸하는 군사 '멸화군' 있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5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주 강원도 고성, 속초, 강릉, 인제, 동해 등에 큰 산불이 났었지요. 사망 1명, 부상 1명 등으로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임야 530ha와 주택 516채는 물론 가축 4만1천520마리가 불에 타 결국 정부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번 산불은 태풍에 버금가는 큰 바람 탓에 불이 급격하게 번져갔다고 하지요. 이렇게 거센 바람으로 불이 난 것은 《태조실록》 3권, 태조 2년 2월 20일 기록에도 “큰 바람이 부는 데 성중(城中)에서 잘못하여 불을 낸 사람이 많았다. 강릉도(江陵道) 양주(襄州)에서 한 집이 잘못하여 불을 내어, 불길이 이웃으로 번져서 관사(官舍)와 민가(民家)가 거의 다 타버렸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세종 때 한성에 큰 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31권, 8년(1426년) 2월 15일 기록에 보면 “한성부에 큰 불이나 행랑 1백 6간과 중부 인가 1천 6백 30호와 남부 3백 50호와 동부 1백 90호가 불에 탔고, 남자 9명, 여자가 23명이 죽었는데, 타죽어 재로 화해버린 사람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당시에는 한성의 집들이 목조건물이거나 초가였고, 심지어 집집이 처마가 붙어 있을 정도여서 그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세종실록》 세종 8년 2월 26일에는 일종의 소방서격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오지요. 이 금화도감은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이 되었다가 1481년(성종 12)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로 고쳤습니다.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에는 멸화군(滅火軍)이란 상설소방대원이 있었는데 불을 없애는 군사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정원은 50명이었고 24시간 대기하고 있다가 불이 나면 관원의 인솔하에 즉시 출동해서 불을 끄는 소방관입니다. 당시 일부러 불을 낸 사람은 사형이었고, 실수로 자기 집을 태운 사람은 매 40대, 관가나 다른 사람의 집을 태운 사람은 매 50대, 불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는 매 100대의 형을 받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