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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5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돌이 되는 날입니다. 나라안팎에서 3·1만세운동이 전 겨레의 운동으로 퍼져나갈 때, 독립정신을 집약하여 우리 민족이 주권국민이라는 뜻을 표현하고, 독립운동을 능률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던 것입니다. 물론 3·1만세운동 앞뒤로 나라안팎에 7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이들은 1919년 9월 모두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초창기엔 여러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 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활로를 찾게 되었지요. 이후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일제의 반격으로 상하이를 떠나게 되었고, 뒤이어 일어난 중일전쟁(1937)으로 상하이[上海, 1919]→항저우[杭州, 1932]→전장[鎭江, 1935]→창사[長沙, 1937]→광둥[廣東, 1938]→류저우[柳州, 1938]→치장[綦江, 1939]→충칭[重慶, 1940] 같은 곳으로 옮겨가며 험난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지요.

 

특히 임시정부는 충칭시기에 광복군을 창설하고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독일에 각각 선전포고를 했으며, 군대를 연합군의 일원으로 미얀마ㆍ사이판ㆍ필리핀 같은 곳에 파견하였습니다. 또 1945년에는 국내진입작전의 하나로 국내정진군 총지휘부를 설립하고 미군의 OSS부대와 합동작전으로 국내에 진입하려는 계획을 진행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임시정부 지도부는 미군정이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개인자격으로 입국할 수밖에 없었고, 국내의 혼란으로 임시정부의 내각과 정책은 계승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분명히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나라 독립의 토대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건국의 분명한 바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