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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묵계월 명창의 5주기 추모음악회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1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여러 회에 걸쳐 송서와 시창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해 왔다.

 

송서는 책을 읽되, 음악적으로 고저를 넣어 읽는 형태이고, 시창은 한문으로 지은 시(詩)를 노래하는 지식인 계층의 소리라는 점, 현재 서울시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앞으로는 전국 시(市), 도(道)의 무형문화재로 확대되어야 하고, 나아가 국가문화재, 세계무형유산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 특히 서울시는 송서의 책읽기 운동이나 시창의 시 읊기 운동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각 문화원 교양강좌의 개설이나, 경연대회의 주최, 구청별 시범학교의 선정 및 운영방안의 필요성을 제언하였다.

 

또한 책읽기나 노래 부르는 방법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심성이 황폐화 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어린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도 책읽기 지도가 중요하다는 점, 책을 읽되, 송서나 율창 형태의 독서생활화가 필요한 현실이란 점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고 묵계월 명창의 타계 5주기 추모음악회 이야기로 이어간다.

 

경기소리 예능보유자 임정란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며 정성껏 준비한 음악회가 지난 3월 28일 저녁,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예맥 그를 기리다 Ⅱ>라는 표제로 열린 것이다.

 

 

타계한 스승의 5주기를 맞아 제자들이 뜻을 모아 음악회를 꾸민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대극장 무대에서 100 여명의 대인원이 모여 제창을 하기도 하고, 모둠별로 준비한 춤과 노래의 순서를 두 시간이 넘도록 다양하게 진행하였으니 그 정성이 갸륵하다는 생각이다.

 

왕왕 보면, 스승을 따르고 존경하는 제자들이 많다고 해서, 또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추모음악회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우러나와야 한다. 마음이 있어도 시간이나 경제적 여건 등이 허락되지 않으면 또한 못 하는 예가 허다하다.

 

첫째 조건은 스승에 대한 예술적, 또는 인간적 존경심이 두터워야 한다. 스승에 대한 존경 여부도 제자에 따라서는 다르게 평가될 경우도 많다. 대체로 살아생전, 스승의 예술적 능력이나 그 수준, 객관적인 업적보다는 스승과의 개인적 친소(親疎)관계 등이 기준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문제 삼아 선생을 받들기도 하고, 또는 그 위상을 평가절하 하는 사례가 허다한 것이다. 극히 일부 종목의 경우를 보면, 스승에게 오랫동안 공부하고 이수를 하였지만, 스승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아예 잊어버리고 사는 제자들도 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추모음악회를 준비했다고 하면 이것은 곧 스승의 가르침이나 인간적 유대를 잊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정성이 모여서 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이날 밤, 묵계월 명창을 받드는 제자들의 정성을 만나보면서 스승이 살아생전 제자들에게 안내해 준 예술의 길이나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이 어떠했는가 하는 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곧 묵계월이라는 경기 명창이 그의 제자들에게 비춰진 모습은 경기소리의 명창이란 예술적 측면 뿐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미를 갖춘 스승이어서 그 제자들도 정성을 다해 스승을 받드는 모습으로 비춰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의 정성이 참으로 착하고 장하게 느껴지는 훈훈한 음악회였다.

 

묵계월은 어떤 명창이었나?

 

그의 본명은 이경옥이었다. 1921년, 서울에서 8남매 중 2녀로 태어났고, 2014년 타계하였으니 살아있다면 내년이 100세가 되는 셈이다. 그녀가 태어나던 그 때, 1920년대 초는 일제의 탄압이 극도에 달해 있던 암울했던 시기였다.

 

그의 집안은 너무도 가난했던 탓에 부모는 이경옥을 묵 씨네 집안으로 입양을 보내게 된다. 자녀를 양육할 능력이 없어서 보내는 부모의 마음도 마음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 곁을 떨어져 남의 집에 입양을 가야 했던 이경옥의 괴로웠을 심정도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묵계월은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시조나 민요가락은 한번 들으면 곧잘 흥얼거렸을 정도로 소리를 좋아하고 곧잘 불렀다는 것이다. 그녀의 재주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알아차린 양모는 곧바로 권번의 소리선생인 주수봉(朱壽奉)에게 묵계월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묵계월은 당대의 명창 앞에 나아가 본격적으로 시조며 경기의 좌창, 민요 등을 배우는 소릿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녀를 가르치기 시작한 주수봉 명창은 1930년대를 전후해서 조선 권번(券番)의 소리선생으로 있으면서 권번을 통하여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경기 명창의 한 사람이다.

 

우리가 1900년 이전시기, 경기지방의 소리를 논할 때, 초창기 3대 명창으로 추교신(秋敎信)ㆍ조기준(曺基俊)ㆍ박춘경(朴春景) 등을 꼽는다. 가사, 시조와 함께 긴잡가라 부르는 이른바 좌창은 박춘경의 장기로 알려져 있는데, 묵계월의 스승인 주수봉이 바로 박춘경에게 배워 경서도 소리에 일가를 이룬 명창이었다. 주수봉은 그 후, 협률사(協律社)ㆍ원각사(圓覺社) 등에서도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