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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묵계월, 자세를 낮추는 겸손한 명창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1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묵계월 명창의 타계 5주기 추모음악회가 3월 28일 저녁, 국립국악원 예악당 에서 열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러한 음악회는 스승에 대한 예술적, 또는 인간적 존경심이 두터운 제자들의 정성이 모여서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묵계월의 본명은 이경옥이고,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이 가난했던 탓에 묵 씨네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그는 권번의 소리선생, 주수봉(朱壽奉)에게 배우며 본격적으로 소릿길에 들어섰다는 이야기, 주수봉은 초창기 3대 명창의 한사람인 박춘경에게 배워 경서도 소리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후에는 협률사(協律社)나 원각사(圓覺社) 등에서도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30년대 전후, 권번을 중심으로 기녀들에게 소리를 가르친 경기지방의 잡가 명인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묵계월을 가르친 주수봉이라든가, 최정식, 원경태, 원범산 등이 있고, 좌창은 물론이고, 왕십리의 선소리꾼으로 이름난 이명길을 비롯하여, 이명산, 김태운, 탁복만, 탁연근, 엄태영, 김태봉, 유태환, 유개동, 김운태, 이광식 등이 있으며, 송서로 유명한 이문원, 그밖에도 무수히 많은 소리꾼들의 이름이 보이고 있다.

 

 

서도소리의 예능보유자였던 오복녀(吳福女)명창도 가야금은 정남희에게 배우는 한편, 양금 풍류는 김상순에게, 경기의 12잡가는 일제시대 경기소리의 대가였던 주수봉에게 배웠다고 했다.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정선아리랑의 전설적인 명창, 김옥심(金玉心)도 8살 되던 1932년, 조선권번에 들어가 주수봉 명창에게 경기민요를 배웠다고 하니 당시에는 주수봉이 꽤나 잘 알려진 명창이었다고 짐작된다.

 

그런데 주수봉 명창은 묵계월을 약 2년여 가르쳐 본 뒤, 그 녀가 소리를 받는 능력이나 재현하는 능력이 범상치 않음을 간파하게 된다. 본인이 더 붙들고 지도하기보다는 자신보다 더 유능하다고 판단된 최정식 명창에게 보내주기로 결심을 하는 것이다. 제자의 앞날을 위해 더 유능한 선생에게 보내주는 결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닐 것이다. 소질이 있고 재주가 있는 제자일수록 더 더욱 놓아주지 않고 본인이 키우려고 하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요, 관행으로 볼 때, 주수봉의 결단은 참으로 남달랐다고 하겠다.

 

묵계월의 두 번째 스승이 된 최정식은 학강(鶴崗) 최경식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학강은 당시 서울의 소리선생들이 그 앞에 나가 소리를 배웠다고 하는 큰 명창이다. 최경식의 대표적인 제자들이 최정식, 유개동, 박인섭, 김태봉, 김순태, 정득만, 이창배 등이며, 이 중 대부분이 1960년대, 선소리 산타령 종목이 국가문화재 19호로 지정될 당시의 최초 예능보유자들이다.

 

 

학강, 최경식의 윗대가 장계춘이고, 그 윗대가 추, 조, 박으로 알려진 추교신, 조기준, 박춘경 등이니 묵계월의 소리야말로 경기소리의 정통파 계보인 것이다. 1970년대 중반, 경기민요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당시,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등이 예능보유자로 추천이 되고 인정이 되었다. 그 결정적 요인은 이들의 기량이 출중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전승계보가 분명한 전통의 소리라는 점이 인정된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묵 명창의 소리를 하늘이 낸 목이라고 했다. 말하기가 쉬워 하늘이 낸 목이지, 어찌 하늘이 사람의 목을 선별해서 낼 수 있겠는가! 그만큼 뛰어나게 잘 부른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리라.

 

실제로 묵계월의 노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녀는 어려서부터의 습관이 그날 배운 소리는 그날로 완전히 암기하고 자신있게 부를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그의 제자들에게 너무도 훌륭한 교훈으로 남아있는 유명한 일화이다. 그의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인가? 20세 이전에 벌써 ‘소리 잘하는 묵계월!’, ‘젊은 명창, 묵계월!’ 등의 입소문이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묵계월의 소리, 무엇이 특징인가?

 

그의 소리 속에는 강약과 명암의 대비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음빛깔이 다르다. 또한 그의 소리는 역동적이다. 힘이 실려 있기에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목청만이 아니다. 위 아랫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넓은 음폭도 또한 그러하고, 강렬하면서도 힘찬 고음(高音)이나 편안하고 넉넉한 저음의 안정감이 또한 남다른 것이다.

 

그가 이러한 소리를 구사하게 된 배경도 알고 보면, 당대 최고의 명창들로부터 경기소리를 배웠고, 연습을 생활화 하면서 얻어낸 자신만의 특유한 목구성을 구사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이문원에게 송서(誦書), 삼설기(三說記)를 배웠는데, 책을 음악적으로 읽는 송서도 묵계월이 아니었다면 자칫 단절의 위기를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

 

소리도 소리이려니와 경기명창 묵계월은 상대를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자세를 낮추는 겸손한 명창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