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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백정들, 신분 해방을 외치며 ‘형평사’ 설립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6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6년 전인 1923년 4월 25일 경남 진주에서는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과 실질적인 사회적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형평사(衡平社)’가 설립되었습니다. 백정은 조선시대 소나 개, 돼지 따위를 잡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던 말이었지요. 개항 이후 자유평등사상이 들어오고, 부분적이나마 부를 축적한 백정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백정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신분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1922년 일본의 특수부락민인 에다[穢多: 屠者]가 신분해방단체인 수평사(水平社)를 조직했다는 기별이 들려왔지요. 이에 40만 명이 넘었던 백정들은 자신의 아들이 백정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자 이에 분노하여 신분 해방을 목표로 한 형평사를 창립한 것입니다. 이후 온 나라 곳곳에서 이에 활발하게 호응해 창립 1년 만에 전국적으로 지사 12개, 분사 64개가 조직되었습니다.

 

 

이후 분열과 통합이 이어지다가 1925년 4월 서울에서 전조선형평대회를 열어 통합이 이루어졌는데 1927년 4월 서울에서 열린 제5차 형평사대회에서 단체의 이름을 조선형평사총본부로 바꾸었지요. 하지만 형평사는 1931년의 혁명에 대한 논쟁과 1933년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을 겪으면서 그 세력이 급격히 퇴조하였습니다. 이후 형평사는 경제적인 친목이익단체로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35년 4월에 일제의 식민통치에 영합하는 친일단체인 대동사(大同社)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