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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시대 국수는 ‘사치한 음식’이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7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종실록 4년(1422년) 5월 17일 기록에 보면 “진전(眞殿, 창덕궁에 있는, 역대 임금과 왕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과 불전(佛前) 및 승려 대접 이외에는 만두ㆍ국수(면-麪)ㆍ떡(병-餠) 등의 사치한 음식은 일체 금단하소서."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세종에게 아버지였고 든든한 후원자였던 태종을 위한 수륙재(水陸齋,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올리는 불교의식)였지만 진전과 불전, 승려 등의 대접 이외에는 ‘사치한 음식’을 내놓지 말라고 합니다. 이 ‘사치한 음식’에 국수가 한 자리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흔한 국수가 조선시대에는 어찌 ‘사치한 음식’이 되었을까요? 송나라 서긍의 고려견문록 《고려도경》에서 “고려에는 밀이 적어서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 잔치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라고 나옵니다. 그러기에 국수는 혼례 때나 되어야 맛볼 수 있었던 귀한 것이었지요. 판소리 춘향가 사설 가운데 “얼맹이 쳇궁기(체구멍) 진가루 새듯”이란 대목이 있습니다. 얼마나 귀했으면 밀가루를 ‘진가루’라고 불렀을까요?

 

그래서 이 ‘사치한 음식’ 국수를 먹고 싶어서 밀가루 대신 옥수수가루로 ‘억지국수’를 만들어 먹었으며, 옥수수 앙금으로 쑨 묵에 가까우면서 올챙이처럼 생긴 ‘올챙이국수’를 먹었다고 합니다. 또 그나마 보리, 밀보다는 흔했던 메밀로 대신하기도 했지요. 서명응이 1787년 펴낸 《고사십이집(古事十二集)》에는 “국수는 본디 밀가루로 만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든다.”고 기록되었을 정도입니다. 서긍은 또 《고려도경》에서 “고려 10여 가지의 음식 중 국수 맛이 으뜸이다.”라고 했습니다. 혼례 때 맺은 인연이 길기를 바라는 뜻으로 귀한 국수를 먹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