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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경기잡가 12곡 모두 이수는 어려워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1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 묵계월 명창이 소리 잘하는 명창으로 이름이 나기도 했지만,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명창이었다는 이야기, 그의 소리는 외양(外樣)이나, 즉흥적인 표현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편이었고, 공연활동, 방송, 음반, 교육을 통한 경기소리의 확산에 앞장서 왔다는 이야기, 그는 UCLA 한국음악부가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금을 쾌척하기도 했으며, 예능보유자 자리를 스스로 용퇴한 거인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묵 명창의 제자들이 준비한 첫 종목은 80여명이 제창한 <출인가>라는 좌창이었다. 출인가(出引歌)가 경기 12좌창 가운데 한 곡이기는 하나, 노랫말을 보면 ‘향단’이라든가, ‘오리정’과 같은 친숙한 말들이 나오고 있어서 판소리 춘향가의 한 부분을 경기소리제로 부르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제는 상식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다시 한 번 경기지방의 소리 종류를 정리한다면 부르는 속도에 따라서 느리게 부르는 긴소리가 있고, 빠르게 부르는 휘모리 소리가 있어서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느리게 부르는 소리를 긴잡가라 하고, 빠르게 부르는 소리는 휘모리잡가라고 구별해 부르고 있다.

 

서울 경기지방에서는 이처럼 느리게 부르는 긴소리 12곡을 묶어 12잡가, 또는 12좌창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12가사를 본 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12좌창(坐唱)이란 앉아서 부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관행이 되어 이러한 이름이 별 저항 없이 통용되고는 있으나, 느리게 부른다고 해서 <긴잡가>로 부르는 것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느리게 부르면 느린 잡가라 불러야 하고, 빠르게 부르면 휘모리잡가가 되는 것이다. 느린 것과 긴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잡가(雜歌)라는 노래 이름은 자랑스러운 이름이 아니다. 이러한 이름은 양반들이 부르던 <정가(正歌)>에 반해, <속가(俗歌)>나 잡가(雜歌)라 부르던 관습이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원래 잡(雜)이란 의미가 순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 뒤섞여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거나 장황하고 번거롭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다. 앉아서 단정하게 부르는 긴잡가의 노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다.

 

 

노래뿐이 아니다. 기악의 산조(散調)음악이란 이름도 그렇다. 산조를 기악의 옛 명인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탄다고 해서 <헛튼가락>이나 <허드렛 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 불렀다 한다. <헛튼가락>이란 <헛튼 짓>이나 <헛튼 수작>이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 말속에 진실성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고 있고, 허드렛 가락이란 <허드렛일>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듯이 그리 중요치 않은 일이나 또는 잡스런 뜻이 된다. 예술음악의 극치라고 알려진 산조의 명칭을 <하찮은 음악>이라 불렀다는 말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잡가의 의미는 각종 노래 사설집의 이름을 <잡가집>이라 한 것처럼 민요나 특징있는 소리들을 한 책 속에 싣고 있다는 의미가 짙다.

 

1910년대 이후, 여러 종류의 노래책 이름이 잡가집이었다. 예를 들면, 《신구잡가(新舊雜歌)》,《고금잡가편(古今雜歌編)》, 《무쌍신구잡가》, 《신구유행잡가》 등이었다. 그런데 이 책속에는 현재의 잡가만을 싣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곡이나 가사, 시조를 비롯하여 각 지방의 다양한 소리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서도소리도 있고, 남도소리도 있으며, 서울 경기의 유산가(遊山歌)를 비롯한 긴 좌창, 선소리, 민요, 단가, 회심곡, 병창 등 등 성악의 전 장르를 망라한 노래들이 하나의 노래책 속에 들어 있다. 이처럼 잡가란 노래 자체가 잡스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이름 그대로 여러 노래들이 한 권의 책 속에 잡거(雜居)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출인가>라는 곡은 서울 경기지방의 좌창이지만, 그 노랫말 속에 향단이나 오리정이 등장하는 점에서 춘향가 중 한 대목이 연상된다. 서울로 떠나가는 이도령을 만류하기 위해 술과 안주를 장만해서 오리정으로 나가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 <출인가>를 비롯하여 <적벽가>, <선유가>, <방물가> 등 4곡은 묵계월이 보유했던 종목이었다. 묵계월이 보유했던 4 종목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1975년 당시, 서울 경기지방에 전승되어 오는 긴소리 12곡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동 종목의 예능보유자로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등 3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3인은 12곡을 모두 전승시키는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르게 4곡씩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 중 묵계월 명창이 후진들에게 전승시키도록 지정되어 있었던 종목이 바로 적벽가를 비롯한 위의 4곡이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방법은 나름대로 전승의 활력을 띄고 40여년 이상 지속되어 왔고, 각각 수십명의 이수자와 2인 이상의 전수조교를 배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서인가 근래에는 이 체계가 무너지고 1인이 12곡을 모두 전승시키고 있는 구조로 변해 버린 것이다. 과거에는 4곡을 익혀도 이수자 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12곡을 다 배운 후에 이수시험을 치르게 되니 경기민요를 전공하려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전승을 확대하려는 정책인지? 위축시키려는 정책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