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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이별 별(別)자 낸 사람, 나와 백년 원수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2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향가 중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을 고하는 <와상 대목>을 소개하였고, 이 도령이 춘향에게 들려주는 ‘소통국 모자의 이별’, ‘오나라와 월나라 여인들의 부부이별’, ‘초패왕과 우 부인의 이별’, ‘왕 소군의 한궁 이별’ 등 이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연인들에게 있어 이별이란 상처를 남기게 되는 슬픔이고 아픔이란 점, 춘향가는 남녀가 만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그리워하다가 다시 만난다는 극적인 구조를 지닌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헤어짐의 정표로 거울과 옥지환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와 이 도령과 헤어져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조로 표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도령은 떠나기 앞서 석경(거울)을 내어주며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당부하였고, 춘향 역시 끼고 있던 옥지환을 빼 주며 “여자의 명심불망 지환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이별의 정표를 나누는 것이다.

 

이제, 이 도령이 떠나가기 위해 말 위로 오르자, 이별이 주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던 춘향의 절규가 폭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보통 속도의 중모리 장단으로 이별의 슬픔을 들어내고 있어 듣는 이를 공감케 하는 대목이다.

 

 

“아이고 도련님,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여보 도련님, 날 다려가오. 쌍교도 나는 싫고, 독교도 나는 싫소. 걷는 말끄 반보담 지어서 어리렁 출렁청 날 다려가오.”

 

‘날 다려가오’라는 요구를 3회를 반복하되, 점점 더 강하고 높은 음으로 질러대며 슬픔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쌍교(雙轎), 독교(獨轎)는 둘이 타는 가마, 혼자 타는 가마이고 “걷는 말끄 반보담 지어서 어리렁 출렁청”이란 표현은 걷는 말(馬)에게 짐을 싣는 부담농(농짝)에라도 나를 실어서 데리고 가라는 뜻이다. 나귀 정마를 쥐어들고 있던 방자가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가 채질을 툭 쳐 돌려서니, 비호같이 가는 말이 춘향의 눈에 점점 멀어지는 표현 또한 재미있어 소개한다.

 

“청산녹수 얼른 얼른, 한 모롱 두 모롱 돌아가니, 청산에 노든 원앙이 짝을 잃은 거동이라. 춘향이 기가 막혀 가는 임을 우두머니 바라보니 이 만큼 보이다가, 저 만큼 보이다가, 달 만큼 보이다가, 별 만큼 보이다가, 나비 만큼 보이다가, 십오야 둥근 달이 떼구름 속으로 잠기듯이, 아주 깜박 박석고개를 넘어서니, 춘향이 그 자리에 펄썩 주저 앉어 방성통곡으로 울음을 운다.”

 

가는 임의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는 표현으로 이만큼-저만큼-달만큼-별만큼-나비만큼이란 표현도 재미있다. 소설이나 시, 음악과 춤, 연극이나 영화, 등 등 다양한 장르에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별이라는 주제만큼 자주, 그리고 넓게 다루어진 것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하는 것도, 그리고 이별이란 것도 사람과 사람의 소통(疏通)에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당시의 사회적 구조에서 서로의 신분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헤어짐을 숙명처럼 받아드려야만 했던 결과를 현대의 젊은이들은 얼마나 공감을 해 줄 것인가!

 

 

이 도령을 떠나보내고 춘향이 허탈한 상태로 넋두리를 시작한다.

“춘몽이나 이루어서 알뜰헌 도련님을 몽중이나 만나보자.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 와 보이는 임은 신의(信義)없다 일렀으되, 답답이 그릴진댄 꿈 아니면 어이허리. 이별 ‘별(別)’자, 내든 사람, 날과 백년 원수로구나. 이별 별자 내셨거든 뜻 ‘정(情)’자를 내지 말거나, 뜻 정 자를 내셨거든 만날 봉(逢)자 없었거나, 공방적적대고등허니 바랠 망(望)자가 염려로구나.”

 

공방적적대고등(空房寂寂對孤燈)은 고요하고 적적한 빈 방에서 외롭게 등불만 바라본다는 뜻으로 이별 후 혼자 쓸쓸하게 지낼 일을 걱정하는 표현이 되겠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대목은 이도령을 생각하는 춘향의 심경을 절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행궁견월상심색 허니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추우오동엽락시의 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야우문령단장성허니 비 죽죽 와도 임의 생각, 석불감미 밥 못먹고 침불안석 잠 못 자니, 이게 모두 다 임 그리운 탓이로다 . 앉어 생각, 누워 생각, 생각 그칠 날이 전연 없어 모진 간장 불이 탄들, 어느 물로 이 불을 끌꺼나”

 

얼핏 사설이 매우 어렵게 보이나 이해가 될 만한 내용들이다. 행궁견월상심색(行宮見月傷心色)은 양귀비 죽은 다음, 당나라 현종 임금이 궁전에서 달을 쳐다보니 더욱더 슬프다는 시구이고, 추우오동엽락시(秋雨梧桐葉落時)는 가을비에 오동잎이 떨어질 때에도 임의 생각, 야우문령장단성(夜雨聞鈴腸斷聲)는 비 내리는 밤, 말방울 소리만 들려도 창자를 끊는 듯 하다는 시구, 식불감미(食不甘味)는 음식 맛이 없다는 뜻, 침불안석(寢不安席)은 편히 잠을 잘 수 없다는 뜻이니 모두 이별의 아픔을 강조하는 시구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