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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서서 부르는 입창, 앉아서 부르는 좌창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2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 도령과 이별하고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하는 대목을 소개하였다.

 

서로 거울과 옥지환을 이별의 정표로 나누었지만, 정작 이별 앞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절규가 폭발하기 시작하며 주저앉는다는 이야기, 떠나가는 이 도령의 모습이 이만큼으로 시작해서-저만큼-달만큼-별만큼-나비만큼이란 표현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현상을 그림처럼 그리는 대목도 재미있다는 이야기, 이 도령을 떠나보내고 이제 고요하고 적적한 빈 방에서 외롭게 등불만 바라보게 되었으니 춘향의 서글픈 심경은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나뭇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비가 내려도 임의 생각, 밥 못먹고, 잠 못 자니, 이게 모두 임 그리운 탓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접고, 지난 6월 12일 성동구 행당동 소재의 소월 아트홀에서 있었던 제27회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와 함께 연창의 형태를 의미하는 입창과 좌창의 의미를 짚어보기로 한다.

 

이 난에 소개한 바도 있거니와, <산타령>은 선소리, 곧 여럿이 서서 부르는 노래이다. 가사의 내용은 주로 산천경개를 읊는 노래로, 산으로 들어가 즐긴다는 좌창의 유산가(遊山歌)와는 음악적 분위기가 다르다.

 

산타령을 <선소리 산타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종목의 연행형태가 서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인데, 여러 소리꾼들이 소고를 들고, 한 사람의 지휘자(모갑이라 부름)통제 하에 질서있게 대형을 갖추어 부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행형태는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대중들에게 크게 호응을 받아온 분야였던 것이다. 선소리를 한자어로는 입창(立唱), 곧 서서 부르기 때문이라 한다면 이와는 달리 앉아서 부르는 노래의 형태는 당연히 좌창(坐唱)이다.

 

 

서서 부르는 것과 앉아서 노래한다는 것, 곧 입창과 좌창은 음악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어떤 노래를 서서 부를 수도 있고, 또한 앉아서도 부를 수 있다면, 굳이 입창이나 좌창의 구별은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행 형태에 따라 해당 음악의 성격이나 특징적 표출 방법이 다르고, 이러한 차이점이나, 관습 등을 지켜가기 위해 전통적 연행태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앉아서 부르는 좌창의 형태로는 선비들이 불렀다고 하는 시조창이나 가사창, 그리고 전문 가객들이 불러온 가곡창 등, 소위 정가라 부르고 있는 노래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경기지방의 긴소리로 알려진 <유산가>를 비롯한 12잡가라든가 휘몰이잡가, 또는 영변가와 같은 서도의 긴소리들도 앉아서 부르는 좌창의 범주에 포함되고 있다. 이들의 일반적 특징이라면 무엇보다도 감정을 절제하며 부르는 노래들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기쁨이나 슬픔을 그대로 들어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쁨을 표현할 때에는 얼굴 표정도 밝아야 하고, 이와 함께 손이나 발, 신체적인 움직임도 곁들여야 하는데, 좌창의 연행형태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창자의 표정이라든가, 또는 신체의 일부, 손이나 발의 움직임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단정하게 앉아 시선을 바로 하고 불러야 한다.

 

반면에, 서서 부르는 노래들은 좌창과는 대조적이다. 감정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표출해서 기쁨과 슬픔을 적극적으로 표출해 내야 한다. 손이나 발을 움직이지 않고, 부동자세로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서서 노래한다는 의미는 손이나 발, 또는 몸 전체를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감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해서 객석의 공감을 얻어야 잘 부르는 노래가 되는 것이다.

 

 

간혹, 경서도 민요 경창대회에 출전하는 초보자들의 연행 형태를 보면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손이나 발의 움직임 없이 부동자세로 노래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어색하기 그지없다. 또한 판소리 경창대회에서도 초보자들은 양손으로 부채를 꽉 움켜잡고 부동자세로 소리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긴장한 나머지 자연스러운 몸짓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노랫말에 어울리는, 또는 소리에 따른 몸짓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앉아서 노래를 부르느냐, 또는 서서 부르느냐, 하는 문제는 단지 노래 부르는 개인이나 집단의 선택이 아니라, 음악적 성격을 규정짓는 근본적인 문제다.

 

지난 6월 12일,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소월 아트홀에서 열린 선소리산타령보존회의 제27회 정례발표공연은 <선소리 산타령>이라는 종목이 말해 주듯 출연자 전원이 무대에 서서 모갑이의 지휘에 따라 대형을 갖추며 씩씩하고 활달하게 불러주어 관객의 열띤 호응을 끌어냈다.

 

산타령이라는 종목은 국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한 종목이다.

 

1969년에 지정되면서 뚝섬패의 김태봉과 유개동, 과천패의 정득만, 왕십리패의 이창배, 동막(공덕)패의 김순태 등, 5인을 예능보유자로 인정한 바 있다. 타 종목에 견주어 파격적이었지만, 그만큼 이 종목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활발한 전승활동을 기대했던 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