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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98년 전 오늘 러시아서 독립군 참살당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1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8년 전인 1921년 6월 28일 우리의 독립군부대는 러시아 자유시(알렉세예프스크)에서 러시아 적군에게 총격을 받아 처참하게 살해당한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전 만주 일대 독립군 부대는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을 감행한 일본군을 피해 항일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조직을 대한독립군단으로 규합하고 연해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1921년 3월 일부 부대가 만주에 남고 일부가 연해주로 갔지요. 러시아로 이주한 독립군은 소련 적군(공산군) 소속 한인 부대장을 통해 군사훈련에 도움을 받는가 하면, 소련 정부와 군사협정을 맺고 무기를 공급받았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강력한 외교공세를 벌여 소련 정부에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요구했고, 혁명 후 내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한 소련은 이를 받아들여 1921년 6월 22일 자유시에 주둔한 한국 독립군에게 무장해제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는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적군은 무장 해제를 거부하는 한국 독립군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집중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당황한 독립군들은 강으로 뛰어들었지요. 그러나 소련군은 강물에 빠진 독립군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했고 그 결과, 우리 독립군은 사망 272명, 실종 25명, 포로 97명에 익사 31명이란 엄청난 참살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른바 자유시 참변 또는 흑하사변이라고 하는 이 일로 인해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 무장 투쟁 전열은 거의 흐트러지고 말았고 이는 한국 독립 운동사의 최대 비극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