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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계신 신영훈 선생님과 민학회

우리가 선생님을 기억해드리는 실천의 하나
[솔바람과 송순주 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평소 가깝게 지내는 황평우 전 은평한옥박물관장이 지난 일요일에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더니 나중에 사진을 하나 보내준다. 병상에 누워계신 분을 문병하는 사진이었다. 한옥전문 건축가이신 신영훈 선생님이란다.

 

신영훈 선생님은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 한옥 건축의 큰 기둥이셨다. 특히나 한옥 건축의 해설분야에서는 그 구수한 말씨와 알기 쉬운 설명으로 많은 팬들을 갖고 계셨다. 황평우 관장은 신영훈 선생님이 자기를 건축문화인으로 이끌어주신 분이라고 말한다. 나는 신영훈 선생님이 나를 '민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 분이 젊을 때의 동글동글하고 온화하고 인자하신 얼굴을 다른 데로 보내시고 여윈 모습으로 누워계신 것을 보는 것은 정말로 살아있는 후배들로서는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 살아있는 것의 운명이 곧 탄생과 죽음일진데 그것을 어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황평우 관장과 카톡을 하면서 나는 이제 우리들이 선생님을 기억해 줄 차례라고 말해주었다.

 

그 사진을 보고 신영훈 선생님과의 인연을 다시 회고해 보았다. 80년대 초인 1983년 KBS의 문화부 기자였던 나는 우리 주위에 묻혀있고 널려있지만 우리들이 잘 모르고 넘어가고 있는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찾아 공부하는 민학회라는 모임을 통문관 이겸노 선생님으로부터 권유받고 거기에 들어가 몇 번 답사를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곳곳을 다니며 신영훈 선생님의 구수한 해설을 들으며 우리들 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움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1985년에 다큐멘터리로 만든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서"였다. 이 프로그램은 완전히 민학회에서 배운 것을 프로그램화한 것이다.

 

그 생각이 나서 집에 있는 민학회 회지를 꺼내어 들쳐보았다. 원래 낱권으로 있었는데 1985년 6월 말에 지난 10년 동안의 회지를 묶어서 펴 낸 것이 손에 잡힌다. 민학회는 1976년 6월에 통문관 이겸노 대표 를 회장으로 해서 발족을 했는데 초창기에 신영훈 선생님이 상임총무를 맡아 전반적인 일을 추진하셨다. 그러므로 민학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셨다. ​

 

1976년 4월30일에 나온 민학회보 제1집에서 신영훈 선생님은 민학회를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운을 떼셨다. ​

 

"학교도 없고 선생님도 계시지 않습니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도 읽을 책조차 없는 게 오늘의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엄연히 남아있어 자꾸 우리들 눈에 보입니다. (중간 줄임) 그것은 실제의 나이고 우리입니다.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생활은 일상생활이어서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역사책에 없다고 그것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를 이루는 원동력이 그것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중간 줄임) 지금부터라도 그것을 밝혀내는 일을 시작하는 쪽이 옳을 것입니다. 민족의 문화를 이룬 기층문화의 생성발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민학회의 활동은 전국 곳곳의 답사와 이를 기록하고 분석하고 의미를 붙인 민학회지의 발간으로 이어졌다. 그것으로서 일제강점기 민예품의 연구에서 시작된 우리 문화의 뿌리와 현실을 잡아내고 공부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공부의 즐거움의 기반이었다.

 

병상에 계신 신영훈 선생님을 보면서 세월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유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인정하게 된다. 그것은 영생이라는 것은 없으며 모든 생명은 탄생하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불변의 냉혹한 진리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영생을 사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이요, 학문이요, 행실이다. 그런 면에서 신영훈 선생님은 이미 영생을 얻으신 것에 다름 아니다.

 

신영훈 선생님의 근황을 보여준 그 카톡 단체방에 올린 "이제 우리가 선생님을 기억해주어야 한다."는 글에 대한 실천의 하나로 1985년 6월 말에 나온 민학회지 2집에 실린 선생님의 글을 여기에 올린다. 이 글은 선생님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신 글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아마도 민학회의 핵심 주제일 수도 있다. 민학회 회지를 발행하면서 쓴 본격적인 첫 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생님의 글을 읽는 것이 곧 우리들이 선생님을 기억해 주는 방법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