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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안희제 선생의 백산상회, 임시정부 자금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3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일반적으로 그 논조는 총독부의 시정을 비난, 공격하고 세계 약소민족의 독립운동을 빙자하여 조선이 독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풍자하고, 매사를 편견과 중상을 바탕으로 한 집필을 강행함으로써 멋모르는 민중으로 하여금 총독정치를 오해하게 하였다.” 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중외일보에 대해 기록한 내용입니다. 중외일보는 시대일보를 백산 안희제 선생이 동지들과 함께 인수하여 발행했는데 선생은 사장, 발행인 겸 편집인 등으로 활동하면서 잦은 압수와 정간처분 등 일제의 언론 탄압을 뿌리치고 젊은 기자들과 편집진의 항일 언론투쟁을 지원하였습니다.

 

 

134년 전 어제(8월 4일)는 백산 안희제 선생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백산 선생은 1916년 무렵 고향의 논밭 2천 마지기를 팔아 자본금을 마련하고, 부산 중앙동에 포목과 건어물 따위를 파는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18년 주식회사로 바꾸었는데 백산무역주식회사는 독립운동자금을 위한 나라 안 독립운동기지로 삼기 위해 영남지역 지주들이 여럿 참여해 조직한 대규모 무역회사였습니다. 이때 함께한 이들은 경주 최부자집 주손 최준, 경상우도관찰사를 지낸 윤필은의 아들 윤현태 선생 등이었지요. 그러나 임시정부로 가는 독립운동자금은 회사의 손익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지원해야 했기에 결손이 거듭될 수밖에 없었지요.

 

해방이 되고 귀국한 김구 선생은 최준 선생을 불러 독립자금 지원에 고맙다는 말을 한 다음 독립운동자금 장부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최준 선생이 준 자금이 고스란히 장부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최준 선생은 백산 선생을 생각하며 통곡을 했다고 하지요. 최준 선생이 백산 선생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으나 장부에는 백산 선생이 여비나 활동자금에는 한 푼도 쓰지 않고 독립운동에만 자금을 완벽하게 관리했음이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에는 하와이, 멕시코 등에 사는 동포들의 자금지원도 물론 큰 몫을 했지만 백산산회를 통한 백산 선생의 자금지원은 그야말로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백산 선생은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