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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나 굶어죽는 사람 천지던 패전 뒤 일본

[맛있는 일본이야기 501]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패전 뒤 일본에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가 12만 명에 달했다고 현대비지니스 신문은 지난 8월 13일자 기사에서 밝혔다. 이 가운데 부모를 잃고 길거리에서 부랑아로 떠돈 어린이는 35,000명으로 추정된다고 《아사히연감(朝日年鑑, 1947년)》을 인용하여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 부랑아의 말을 빌려 “일본의 종전기념일(終戦記念日)은 1945년 8월 15일이다. 하지만 부랑아들에게는 그날이 전쟁의 시작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전쟁 말이다.”고 했다. 부랑아 대부분은 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 겨울부터 여름에 걸쳐 생겼는데 도쿄, 센다이, 오사카, 아이치, 후쿠오카 등 미군의 공습으로 부모를 잃게 되어 생겼다고 했다.

 

특히 1945년 3월 10일, 도쿄대공습 때 도쿄가 불바다로 변했으나 아직 날씨가 쌀쌀하여 한기를 피하고자 수많은 부랑아들이 도쿄 우에노역 지하도로 몰려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우에노역에는 노숙자들이 몰려있지만 당시에 이곳에는 7,000명 정도가 지내고 있었다고한다.

 

 

부랑아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우에노역에는 너무나 사람이 많아 눕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그 비좁은 공간에서 해결해야했다고 하니 패전 후 일본 도쿄의 꼴은 한마디로 거지, 부랑아 천국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패전 뒤 가장 심각했던 것은 식량난을 꼽고 있다. 당시 우에노역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하루에 수십 명씩 나왔다고 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의 숫자도 많았지만 자살자도 많았다고 이 신문은 말한다. 그러면서 ‘잊어서는 안 되는 숫자가 자살자들이며 이 가운데는 초등학생도 많았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은 하루 종일 구걸이나 쓰레기통을 뒤지고 때로는 개나 고양이를 잡아먹으며 연명했으며 배고픔, 추위, 질병, 차별 속에서 살아갈 기력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당시 부랑아들에게 인기 있는 일거리는 구두닦이였으며 이들은 나무통을 짊어지고 다니며 구두를 닦으라고 소리치고 다녔으며 소매치기(스리)도 많았는데 심지어는 ‘소매치기학교(스리학교)’까지 생겨났다고 했다. 그러던 일본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전쟁물자를 팔아 엄청난 이득을 챙겼고, 경제부흥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건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적반하장으로 마치 한국을 잘 살게 해준 양 하는 것은 참으론 기가 막힌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