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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광풍각에서 거문고를 듣기

지음과 함께 이 가을 소쇄원에 가볼까?
[솔바람과 송순주 1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소쇄원()이란 이름은 이제는 유명해서,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거기를 찾는 사람들은 말로만 듣던 것과는 달리 규모가 너무 작다고 실망을 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분은 명승 제40호 소쇄원에 대한 진정한 감상을 하지 못하고 돌아 나오는 것이 된다. ​

 

바로 우리나라의 민간 정원문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서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작은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정원이다. 그런데 단순히 정원으로만 본다면 다소 작아 보이지만 이곳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서 자연을 벗하며 인생의 원리를 탐구하고 인간의 멋진 세계를 찾아보려는 만남의 장이었다. 1520년대 후반에 호를 소쇄옹(瀟灑翁)이라고 하는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이 정원을 만든 이후 수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계곡과 물과 바람과 나무와 자연을 벗하며 멋진 경계를 시로 읊기도 했다. ​

 

소쇄원에 들어서면 계곡을 따라 먼저 광풍각(光風閣)이 있고 그 위에 제월당()이란 조그만 집이 있다. 광풍각은 소쇄원 건물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에 지은 것으로 너럭바위로 흘러내린 물이 십장폭포로 떨어지는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한 것이고, 제월당은 방 한 칸에 두 칸짜리 마루가 달린 작은 건물이지만, 주인의 서재로서, 바로 이 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소쇄원은 광풍각과 제월당으로 따로따로 세웠지만 흔히는 광풍과 제월을 붙여서 한 단어로 생각하기도 한다.

 

‘광풍제월’이란 말은 송나라 시대의 유명한 서예가인 황정견(黃庭堅)이 당시 성리학의 세계를 처음으로 열어 보인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인품과 사상을 존경하여 표현한 글에서 나왔다;​

 

“그의 인품이 심히 높고 마음결이 시원하고 깨끗함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같구나

其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

 

주돈이는 송의 유학자로, 우리나라에서 성리학이라고 부르는 중국 송학(宋學)의 개조(開祖)로 불린다. 그는 우주의 본체를 태극으로 보고 이를 토대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펴내, 종래의 인생관에 우주관을 통합하고 거기에 일관된 원리를 수립함으로서, 성리학(性理學)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그런 주돈이의 인품이 ‘광풍제월’, 곧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뜻을 좀 더 알려면 다시 ‘광풍(光風)’이란 말을 찾아가 보아야 한다. 광풍이란 말은 원래 《초사(楚詞)》에 나오는 말로, “해가 떠오르자 바람이 불어서 풀과 나무들이 광색(光色)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곧 아침 해를 받아 온갖 식물들이 맑고 고운 생기를 띄고 있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제월(霽月)’이란 말은, 비가 그치고서 나온 달을 뜻하므로, 밤에 비가 그치고 난 뒤에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정말로 맑고 깨끗한, 오염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주돈이란 사람이 그처럼 고결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본격 도입된 이후, 성리학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인품의 세계를 뜻하는 말로 쓰여 온 것 같다. 성리학자들은 우주와 세계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탐구한 사람들로서, 그들은 이 세상을, 현상을 의미하는 기(氣)와 근본원리에 해당하는 이(理)의 두 가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그것의 주종, 선후관계에 의해서 이 세상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 실상을 탐구하기 위해 마음에 온갖 잡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것을 찾아가게 되면 온갖 물욕을 벗어난 맑고 깨끗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고, 그 경지가 곧 ‘광풍제월’이라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도 그의 아들에게 주는 편지에서​

 

“사대부(士大夫)의 심사(心事)는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이 털끝만큼도 가린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에 부끄럽고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전혀 범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포목(布木) 몇 자, 동전 몇 잎 때문에 잠깐이라도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호연지기가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인(人)이 되느냐 귀(鬼)가 되느냐 하는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극히 주의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아무튼 소쇄원에 들어서서 계곡을 따라 먼저 보이는 광풍각, 그리 그 위에 있는 제월당은 비록 크기가 작은 정자이자 서재의 개념이지만 주인 양산보는 바로 이 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갔다고 하겠다. 이 두 건물의 편액은 후대 사람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썼는데, 송시열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있던 광풍루(光風樓)라는 누각에 붙이는 글에서​

 

“이것은 외부로부터 느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공경과 방종, 바른 것과 어긋나는 것의 분별을 명확하게 판별하여 도(道)의 본원(本原)에 통달하는 공부에 종사해서 가슴속이 쇄락하여 털끝만한 인욕(人欲)의 속박도 없이 태극(太極)을 마음에 간직한 뒤에야 기대할 수 있다.”라고 광풍제월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새원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호남의 이름난 선비인 하서(河西) 김인후(金仁厚,1510 ~1560) 선생이다 김인후는 이 소쇄원의 경치를 48편의 시로 그려,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후세에 전하여주고 있는데 광풍각과 제월당을 소개한 뒤에는 제20영(詠), 스무 번째로 옥추횡금(玉湫橫琴), 곧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를 비껴 안고’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瑤琴不易彈  거문고 타기가 쉽지 않은 건

擧世無種子  온 세상을 통 털어도 종자기(種子期)가 없어서이지

一曲響泓澄  맑고 깊은 물에 한 곡조 메아리치니

相知心與耳  마음과 귀가 서로 아누나. ​

 

이 시에 나오는 거문고를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뛰어난 성리학자인 김인후 선생은 왜 맑은 물가에 거문고를 가지고 나와 앉았을까? 혹 김인후 선생도 거문고를 연주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시 내용을 보면 종자기가 없어서 거문고를 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

 

그것은 김인후의 시에서 보듯 조선시대 선비들이 거문고를 즐겨 연주했고, 그렇기 때문에 김인후 선생도 거문고를 탈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글만 읽은 줄 알았는데 거문고까지 좋아하고 연주도 한단 말인가? ​

 

그것은 바로 거문고가 가장 맑고 고아한 소리를 내는, 선비들에게 잘 맞는 악기로 높은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문고 소리에는 의젓한 품위가 있고 그윽한 정취가 있으며 심오한 철학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일찍이 선인들이 거문고를 벗 삼아 풍류를 즐겼고, 거문고를 벗 삼아 인격을 도야했으며, 또한 거문고를 벗 삼아 인생을 담론해 온 것도 바로 거문고가 그러한 소리를 내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거문고를 벗해서 평생을 같이 친구로 지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시 말하면 거문고는 우리 선비들과 정신세계를 함께 하는 고고한 친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거문고는 그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역사에서 거문고 소리를 가장 잘 알아준 친구가 중국 춘추시대에 살았다는 종자기(鍾子期)라는 사람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거문고를 잘 타는 명인으로 백아(伯牙)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백아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소리를 잘 듣는 데에 탁월했다.

 

백아가 높은 산의 형상을 타고 있으면, 종자기가 "아, 멋지도다. 마치 태산준령(泰山峻嶺) 같도다." 하며 감탄했는가 하면, 강의 흐름을 묘사하는 곡을 들으면, "아, 기가 막히도다. 흐르는 물이 마치 황하나 양자강 같도다." 하면서 기뻐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워낙 자주 있다 보니 백아도 감탄해서 "아, 멋지도다. 그대의 듣는 귀나 생각의 깊이는 마치 내 속마음 같도다. 그대 앞에서는 거문고의 소리를 속일 수가 없구나."라며 끔찍이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기를 그토록 알아주던 종자기가 병이 나서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깨뜨리고 줄을 끊고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친한 사람이 죽었을 때 애도를 표하는 뜻으로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기분이라는 말이 나왔고 또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을 지음(知音)이라고도 하는 말이 나왔다. ​

 

선비의 도를 지향하는 우리 문인들, 문화인들은 지음을 찾아서 그를 대동하고 이 가을에 소쇄원 광풍각과 제월당에 가보자. 거기서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우주를 생각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그 거문고와 물소리로 함께 씻어서 청정한 마음을 갖고 이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준비를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