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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정조의 백성 사랑이 이룬 결정체 화성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6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수원 화성은 조선시대 수원의 도심 전체를 둘러싼 전체 길이 5.4km 가량의 성곽입니다. 화성은 정조가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인 영우원(永祐園)을 화산(花山: 지금의 화성시에 있는 융건릉)으로 옮겨 이름을 현륭원(顯隆園)으로 고치고는 현릉원 능행을 위한 행궁을 지은 것이지요. 물론 화성 성곽 전체 길이는 처음 다산 정약용에게 설계를 명했을 때는 길이가 4.2km 정도였지만 1794년에서 1796년까지의 축성 과정에서 1km가 늘어났습니다.

 

성곽을 쌓을 때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이어 들쭉날쭉 지은 것입니다. 화성의 건축 과정을 기록한 비석 ‘화성기적비’에는 “봄의 버들잎 같은 모양으로 지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팔달산 아래에 버들개천 곧 유천(柳川)이라는 땅이름이 있었는데 정조도 “성벽을 세 번 구부리고 세 번 꺾으면서 이름처럼 ‘내 천’자 모양이 됐다”고 평가했을 정도였지요.

 

 

성곽이 구부정하게 된 것은 정조가 영의정 채제공에게 화성을 쌓을 때 그곳에 살던 백성을 쫓아내지 말라고 명을 했던 데에 있습니다. 기존의 집을 피해서 성곽을 쌓자니 자연 꾸불텅하게 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화성성역의궤》에 보면 성을 쌓는 과정에서 생긴 부상자는 팔달산 서쪽의 임시 병원에 입원시키고 일당의 50%를 주는 것은 물론 일군들이 무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척서단(滌署丹)’이라는 약을 주었고, 성 쌓기에 관련된 모든 이에게 ‘제중단(濟衆丹)’이라고 하는 영양제도 주었다고 하지요. 따라서 수원 화성은 정조의 백성 사랑이 이룬 결정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