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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나도박달나무’의 호소

우리는 배달겨레의 자손들이다
[솔바람과 송순주 1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배달은 박달과 통한다. 박달은 박달나무를 일컫는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단군(檀君)의 단이 바로 박달나무 단이니까 단군도 박달나무가 나는 곳의 임금이란 뜻이 된다. 실제로 박달나무 아래서 나라를 열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박달나무의 박달은 한자로 ‘朴達’, 또는 ‘백달(白達)’, 그러다가 ‘배달’.... 이렇게 이어지지만 굳이 한자로 표기하기 이전에 박달은 '밝은 달'이란 순수 우리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박달나무를 본 적이 있으신가? 사전을 보면 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깊은 산 속에서 30미터 높이까지 자라는데 한국, 일본, 중국 북동부, 그리고 러시아 우수리 지방 등에 사는 곳으로 되어 있어 우리 겨레의 거주범위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우리 겨레를 배달겨레, 곧 박달 민족이라고 해서 크게 틀리지 않는다. 박달나무는 무척 단단해서 예전에는 포졸들이 들고 다니는 방망이나 윷, 방아와 절구공이, 떡살판, 다식판, 수레바퀴 등 생활 주변 곳곳에 쓰였다.

 

그런데 박달나무를 이제는 볼 수가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다. 나무가 단단한 만큼 빨리 자라지 않는데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벌채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박달나무를 봐도 그게 무슨 나무인지를 알지 못한다.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현대의 도시민들에게 뜻밖의 선물이 있었다. 박달나무를 자처하는 새로운 강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 이름은 ‘나도박달나무’. 여의도 공원에서 발견한 나무다. 자신이 박달나무임을 자처하는 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여의도공원을 뒤져도 ‘나도박달나무’라는 나무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야 할까? 여의도 공원을 산책하면서 단풍나무같이 생긴, 아주 빨간 단풍이 예쁘게 물든 나무를 찾아가보면 된다. 그런데 그 나무는 단풍나무는 아니다. 단풍나무는 보통 어린 아기의 작은 손 같이 잎이 5개 정도가 나 있는데, 이 나무는 단풍나무처럼 예쁘고 색깔도 고운데 잎에 세 개만 난다. 그런 나무를 찾아 가다 보면 팻말이 나오고 거기에 나무이름이 이렇게 써있다. ‘복자기 나무’

 

이 ‘복자기 나무’는 속명이 ‘나도박달나무’다. 자기도 박달나무에 뒤지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다만 박달나무가 자작나무과인데 견주어 이 나무는 단풍나무과다. 결국 잎의 형태만 다를 뿐 단풍나무의 사촌쯤으로 보면 된다. 복자기도 역시 재질이 무척 단단해서 나무의 단단하기로는 자작나무, 시무나무 다음의 세 번째라고 한다. 그래서 한자로는 소의 심줄 같다는 뜻으로 우근자(牛筋子)라고 한다나.

 

이 복자기 나무가 요즈음 여의도 공원에서 가장 멋있는 단풍을 자랑하고 있다. 일찍부터 잘난 체하고 자랑하던 벚나무나 느티나무가 이미 비바람에 날려 상당히 떨어진 지금, 노란 은행잎도 서서히 말라가고 날려가는 요즈음, 빨간 세손가락을 곧게 뻗은 나도박달, 곧 복자기나무는 이 가을이 단풍의 계절임을 마지막까지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엊그제 강추위가 오자 비로소 자신의 영웅본색을 드러내며 혼자서 웃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호소하고 있는 것 같다.

 

 

 

“여보세요? 서울 시민 여러분, 당신들이 가을을 압니까? 단풍을 압니까? 박달나무를 압니까? 그 모든 것을 보려면 여기 제가 서 있는 곳에 와서 저를 보세요!”

 

누구는 말한다. 낙엽은 한 해 동안 우리 곁에서 같이 살다가 떨어져 나가는 잎새들의 작별인사라고. 그래 작별은 서글픈 것이지. 그 작별에는 이 세상의 아름다운 시간과 마음과 추억과의 이별, 희망과 소생과 성장과 활동과 성숙, 결실과의 이별인 만큼 아무래도 우리들은 쓸쓸하고 서운하고 설렁할 것이다. 그런 마지막 이별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는 나도박달이라는 별명을 가진 복자기 나무가 있었음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 우리 곁에 바짝 와 있었지만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복자기 나무가 어디에 가장 많은가? 여의도 공원의 산책길 중에 가장 남서쪽, 영등포쪽의 길게 돌아가는 구간에 상당수 열을 지어 서 있다. 오늘 아침 그 빛깔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나무의 이름이 ‘복자기나무’였다. 혹 그 길을 가시는 분들이 있다면 어쩌면 뒤늦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봐주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듯 아주 얼굴 전체를 빨갛게 물든 채로 서 있는 단풍나무 사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나무에게 가서 이렇게 얘기해 주면 어떨까?

 

“여보세요! 당신 참 아름답군요. 참 단단하군요. 과연 우리 겨레의 상징인 박달나무와 비슷합니다. 늦가을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지조와 미모를 지키는 모습도 그렇고…….”

 

 

그리고 돌아서서 그 옆을 떠날 때 이것만은 잊지 말자.

 

비록 올 가을 많은 낙엽들이 우리 곁을 떠나더라도 내년에 반드시 푸른 잎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의 생도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또 내일이 있고 내년이 있다는 것을. 우리의 삶에 마치 희망이 다한 것 같아도 곧 희망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요즘 실감하는 명제는 '우리는 배달겨레다'라는 것.

집에서 모든 필요한 물건을 배달받을 수 있다.

짜장면 한 그릇도 배달받을 수 있다. 화장실용 두루말이도 배달받을 수 있다.

우리는 배달겨레다. 유통망으로 전국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세계에서 가장 바른 배달망을 갖춘 우리나라.

과연 우리는 배달겨레구나.

 

그런데 우리에게 배달되는 것은 물건 밖에는 없구나.

편안한 마음, 낙천적인 생각, 남을 챙겨주는 배려는 배달되지 않는구나.

그런 마음을 배달받지 못해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삶이란 고귀한 길을 포기하는 것인가?

 

가을이 끝날 때까지, 겨울이 올 때까지

우리의 박달나무, 아니 가짜 박달나무인 ‘나도박달나무’는

그 붉은 마음, 지조를 버리지 않는데

이 나무에서 다시 삶의 의지를 배워야 할 모양이다.

 

우리에게 삶이 있어서 이 가을이 아름다운 것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