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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태종, 동전을 던져 한양 천도 결정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1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태조는 고려를 건국하고, 고려의 황궁인 송도 수창궁에서 임금 자리에 올랐습니다. 말하자면 송도 곧 개성은 조선왕조의 첫 번째 서울인 것이지요. 그러다 태조 2년인 1393년 3월 15일 마침내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고 이듬해인 1394년인 태조 3년에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천도했습니다. 그 뒤 정종이 임금에 오르자 형제 사이 골육상쟁에 회의를 느껴 1399년 개성으로 서울을 옮깁니다. 그런데 조선의 세 번째 임금 태종이 등극하면서 조선은 다시금 서울을 한양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서울이 되려면 첫째 군사적으로 방어하기 편리한 곳, 둘째 강과 해상을 통하여 물자를 수송하기가 편리한 곳, 그리고 셋째는 사방으로 거리가 균등하여 교통이 편리한 곳인데 한양은 이 세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요. 하지만 서울을 옮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서울이 되려면 지리적 여건도 중요하지만 명분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양으로 옮겼다가 다시 송도로 옮긴 지 얼마 안 되는데 다시 한양으로 옮기려면 중요한 명분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예배(禮拜)한 뒤에, 조상의 혼백을 모신 묘당(廟堂)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이천우에게 명하여 밥상 위에 동전을 던지게 하니, 새로 정한 서울은 2길(吉) 1흉(凶)이었고, 송경(松京)과 무악(毋岳)은 모두 2흉(凶) 1길(吉)이었다. 이에 임금이 한양으로 서울을 천도하기를 결정하고, 땅의 생김새를 보고 길흉을 판단하여 향교동(鄕校洞) 동쪽 가에 이궁(離宮, 태자궁)을 짓도록 명하고…….”

 

《태종실록》 4년(1404년) 10월 6일 조에 있는 글입니다. 나라의 중대사인 도읍지를 결정하는데 태종은 동전을 던지는 “척전(擲錢)”이라는 방법을 썼습니다. 그 까닭은 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명분과 정당성을 내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종묘에 모신 영령의 뜻이 한양에 있다며 한양으로의 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 것이지요. 이처럼 정치적 행위에는 뜻밖에 엉뚱함이 있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태종이라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