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2 (목)

  • 맑음동두천 2.8℃
  • 맑음강릉 6.6℃
  • 맑음서울 3.4℃
  • 맑음대전 6.3℃
  • 맑음대구 6.7℃
  • 맑음울산 6.8℃
  • 맑음광주 7.2℃
  • 맑음부산 8.4℃
  • 맑음고창 5.9℃
  • 구름조금제주 8.9℃
  • 맑음강화 2.6℃
  • 맑음보은 4.4℃
  • 맑음금산 5.3℃
  • 맑음강진군 8.0℃
  • 맑음경주시 7.0℃
  • 맑음거제 7.0℃
기상청 제공
닫기

우리문화편지

109년 전 하와이로 떠난 사진신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1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9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심영신(沈永信, 1882~1975) 지사는 이른바 ‘하와이 사진신부’의 한 사람으로 건너간 분이다.” 이 내용은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제7권에 나오는 심영신 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심영신 지사는 이렇게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건너가 혼인을 하고 사탕수수밭에서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재정부족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도왔습니다. 그러한 내용은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 그 고마움을 분명히 기록해두어 알 수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사진신부(寫眞新婦, picture bride)’란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이 사진만 보고 혼인한 조선여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진신부에 대한 설에 따르면 조선 평안도 의주의 백예수라는 사람이 중매해서 사라 최라는 신부를 신랑 이내수에게 보냈는데 사라 최는 109년 전인 1910년 11월 28일 도착하여 4일 뒤 혼인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1910년에서 1924년 사이에 하와이로 간 사진신부들은 대략 600명에서 1,000명에 달한다고 하지요.

 

웨인 패터슨이 쓴 《하와이 한인 이민 1세-그들의 삶의 애환과 승리(정대화 역, 들녘, 2003》이란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입니다. “비싼 채소 값을 해결하기 위해 와이와루아의 카후쿠농장에서 일하던 한인들은 채소를 직접 길러 먹었다. 하지만 죽어라 일하고 받는 월급 16달러 가운데 생활비 12달러 55센트를 빼면 남는 게 없었다. (중간 줄임) 고국으로 돌아가려 해도 뱃삯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하와이 노동이민으로 또 사진신부로 간 조선인들이 어떻게 고생을 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