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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경드름이란, 서울ㆍ경기지방의 음악어법(語法)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5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내포지방의 기악으로 대표되는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를 소개하였다. 심상건은 1894년, 충남 서산 출생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작은 아버지(심정순)댁에서 자라며 국악적 소양을 키웠고, 그의 4촌 동생들도 악가무로 이름있는 심재덕, 심매향, 심화영 등이며 특히 심화영의 승무는 충남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심상건은 1920~30년대 일제강점기에 강태홍, 한성기, 정남희, 안기옥, 김병호 등과 활동하였고, 약 40여 장의 음반자료를 남겼다는 이야기, 1960년대 말, 5·16 민족상, 전국음악경연대회 가야금 부문의 지정곡은 심상건류 산조였기에 그 이후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 한슬릭(Aduard Hanslick)의 ‘긴장과 이완’이나 심상건의 줄을 ‘풀고 조이는’ 음악 미학(美學)은 같은 의미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도 심상건류 가야금 산조(散調)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심상건류 가야금산조를 분석해 본 연구자들이나, 실제로 그 산조를 연주해 오고 있는 전공자들은 그 산조의 특징이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南道制) 산조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 산조란 무슨 말이고, 이는 어떻게 짜여 있는 산조인가?

 

산조라는 음악양식은 <진양>이라는 느린 악장을 시작으로 <중모리> <자진모리> 등으로 점차 빠르게 연주해 나가는 즉흥적인 독주 형태의 음악이다. 이 음악은 19세기 말, 가야금 연주자인 김창조가 처음으로 만들어 탔다고 알려져 있다. 김창조는 전라도 영암 사람이었고, 그의 뒤를 이어 그 산조를 전승해 온 연주자들의 대부분도 전라도 음악인들이었기에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 산조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남도제 가야금 산조는 그 음악적 구성이 우조로 시작해서 평조를 거쳐 계면조로 진행하는 우조-평조-계면의 진행이 일반적이다.

 

우조(羽調)란 음이 높으면서도 맑고 씩씩한 음악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조성(調性)의 이름이다. 우조의 대표적인 예가 남창 가곡과 같은 음악이다.

 

이에 견주어 평조(平調)는 청(淸)이 낮으면서도 명랑하고 화락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악조이고, 계면조는 슬픈 느낌을 안겨주는 분위기의 악조 이름이다, 글자의 뜻으로도 계면(界面)은 얼굴에 경계, 곧 슬픈 소리를 듣게 되면 얼굴이 일그러져 경계(금)가 생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음악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남도제 가야금 산조와는 또 다른 형태의 산조음악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충청도 지역에서 연주되고 있었는데, 심정순에 이어 심상건이라는 걸쭉한 명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심상건의 산조를 충청제 산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음악은 악조의 구성이 평조로 시작해서 우조를 거쳐 계면조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남도제 산조와 비교가 되고 있다. 처음의 시작부분도 남도제처럼 높은 음으로 힘차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음으로 화평하게 시작한 다음, 우조를 거쳐 계면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김창조의 남도제 산조와 심상건의 충청제 가야금 산조는 악조의 구성이 다르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보형은 판소리 동편제가 우조를 지시하고, 악조개념 서편제가 계면조를 지시하는 것처럼, 중고제라는 용어에도 유파 개념 밖에 악조 개념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설렁제요, 다른 하나는 평조라고 보고 있다. 그는 판소리의 평조라는 것이 민요에 보이는 남도경토리, 곧 성주풀이토리를 가리키는 것인데, 남도경토리라는 것은 창부타령 토리(진경토리)와 육자배기토리의 중간 토리를 가리킨다고 했다.

 

 

경기 충청지방에서 불려 온 중고제라는 판소리의 악조 개념이 설렁제와 평조라는 말은 곧 중고제 판소리가 우조처럼 씩씩하거나 계면처럼 슬픈 소리조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한다. 평조는 위의 이보형이 지적한 바와 같은 토리의 형태이고, 설렁제는 덜렁제, 드렁조, 권마성제로도 불리는데, 경쾌하고 씩씩하기는 하나, 선율의 진행이 차분하지 않고 다소 덜렁대듯, 건들거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진행이다.

 

김창조의 남도제 산조와는 다르게 충청제 산조에는 평조(平調)와 경드름(경조(京調)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중모리 악장과 자진모리, 당악 악장에 비중이 높고,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경드름이란 것이 바로 서울, 경기도 지방의 음악 어법이다. 그러므로 충청제인 심상건류 가야금산조 속에 경드름, 곧 경기 음악의 어법이 도입되었다고 하는 점은 경기,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해 온 중고제 판소리의 특성이 심상건의 충청제 산조 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그래서일까? 심상건의 산조 속에 나타나고 있는 계면조 선율을 들어보면 남도제 산조의 계면처럼 깊은 농현을 하거나, 또는 음을 꺾어 내지 않기 때문에 슬픔의 느낌이 깊지 않다는 점을 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적 분위기, 다시 말해 계면의 떠는 목을 깊게 표현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꺽는 소리를 절제하는 음악적 분위기 역시, 고음반에 나타난 중고제 판소리에 보이는 형태와 비슷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