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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입춘 추위가 반가운 까닭

남쪽에는 벌써 매화꽃이 피었다네
[솔바람과 송순주 3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주에 눈과 추위 실종신고서를 내려고 했더니 하늘이 입춘에 맞춰 추위를 보내준다. 이 정도 추위도 없이 올겨울을 거저먹었다는 비난을 듣기가 괴로우셨던 모양이다. 중국발 무슨 바이러스가 코로나 전염되는지 입으로나 전염되는지 갑자기 우리나라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소용돌이를 몰고 오고 있는데 이런 때에 입춘에 맞춰 오는 추위가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추위가 옴으로써 잊어버릴 듯하다가 생각나는 꽃이 있다. 바로 봄이 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는 매화다.

 

매화

얼음 뼈

옥 같은 뺨.

섣달 다 가고

봄 오려 하는데

북쪽 아직 춥건만

남쪽 가지 꽃 피웠네.

안개 아침엔 빛 가리고

달 저녁엔 그림자 배회하니

찬 꽃술 비스듬히 대숲 넘나고

暗香1은 날아서 금 술잔에 드누나.

흰 떨기 추워 떠는 모습 안쓰럽더니

바람에 날려 綠笞2에 지니 애석하도다.

굳은 절개 맑은 선비 견줄만 함 이로 아니

우뚝함 말할진대 어찌 보통의 사람이라 하리.

홀로 있음 사랑해도 시인이 보러감은 용납하지만

들렘을 미워하여 狂蝶3이 찾아옴은 허락치 않는도다.

묻노라, 廟堂4에 올라 높은 정승의 지위에 뽑히는 것이

어찌 옛날 林逋5 놀던 西湖6의 위, 孤山7의 구석만 하겠는가.

 

暗香1 : 매화의 향기를 일컬음

綠笞2 : 이끼

狂蝶3 :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나비

廟堂4 : 조정

林逋5 : 중국 북송의 시인

西湖6 : 중국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의 서쪽에 있는 호수

孤山7 :서호 중의 매우 뛰어난 산으로 임포(林逋)의 사당이 있다

 

조선왕조 선조와 광해군 때를 산 권필이란 양반이 쓴 매화라는 시다. 스무 줄에 이르는 시를 한 줄에 한 자씩 늘려가며 지어낸 솜씨가 예사스럽지 않다. 매화를 "얼음 뼈, 옥 같은 얼굴"이라고 정의한 것이 멋지다. 매화꽃 속에 얼음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는 눈이 부럽다. 여기서도 매화를 달에 비추어 본다. 그래야 매화의 참맛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맨 마지막 줄에 보면 "옛날 임포 놀던 서호"라는 것이 나온다. 임포, 조선시대에 매화를 얘기하면서, 은일군자를 얘기하면서 임포를 빼놓으면 '팥소 없는 찐빵'에 다름 아니다. 벼슬에 나가지 않고는 신분이나 재산이 유지되지 않는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벼슬에 나가면 바르게 일생을 가지 못하고 정쟁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당시 양반들은 깊은 산 속이나 조용한 시골에 은둔하기를 바랐다. 그 은둔의 표본이 바로 임포가 아니던가?

 

그런데 임포는 중국 송나라 때의 인물이다. 서기 967년에 태어나 1028년까지 살았는데, 평생을 홀아비로 살면서 세속의 영리를 버리고 고적한 가운데 유유자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깊고 잔잔하면서도 맑고 높았다고 하는데, 시로써 이름이 나는 것을 싫어하여 많은 시를 버리고, 후세에 전하여질 것이 두려워 시를 읊되 기록하지 않기도 해서 또 유명하다.

 

그가 은둔 생활을 한 곳은 항주(杭州) 서호(西湖) 근처의 고산(孤山)이란 곳이었다. 자주 호수에 나가 조각배를 띄우고, 간혹 절을 찾아 유한한 정취를 즐겼는데, 처자가 없는 대신 자신이 머물고 있는 초당 주위에 수많은 매화나무를 심어놓고 학을 기르며 살았다. 그는 학이 나는 것을 보고 손님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임포를 두고, ‘매화 아내에 학 아들을 가지고 있다(梅妻鶴子)’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 만큼 그가 남긴 매화에 관한 시도 역대 동방 문인들의 절찬을 받는다

 

산원소매(山園小梅) 2수(二首)

 

임포

 

衆芳搖落獨暄姸 모든 꽃 흔들려 떨어진 뒤 홀로 곱고 아름다워

占盡風情向小園 작은 동산을 향한 풍정 혼자 다 차지하네

疎影橫斜水淸淺 맑은 물 위에 그림자 비스듬히 드리우고

暗香浮動月黃昏 은은한 향기따라 달빛마저 흔들리네

霜禽欲下先偸眼 겨울새는 내리려고 먼저 몰래 주위를 둘러보고

粉蝶如知合斷魂 흰나비가 그 꽃을 안다면 깜짝 놀라고 말리라

幸有微吟可相狎 다행히 나는 시를 읊조리며 서로 친할 수 있으니

不須檀板共金尊 악기나 술 항아리도 필요 없네.

 

이 시는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이라는 구절로 더욱 유명한데 "은은한 향기 달빛 여린 황혼에 떠도네"라는 뜻이지만 "은은한 향기따라 달빛마저 흔들리네"로 번역하니 더 멋이 있고, 달이 떠있는 시간이 황혼이라는 시점이어서 더욱 절묘하다.

 

이러한 임포를 그리워하는 조선시대 시인문객들이 그를 소재로 한 많은 시와 그림을 남겼으니 그림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람(古藍) 전기(田琦,1825∼1854)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라는 작품이다. 아직은 봄이 오지 않은, 그러나 기운으로는 봄을 느끼는 늦겨울, 매화나무에 꽃봉우리가 맺혀 봄을 알리는 가운데 멀리 바깥을 보며 봄을 기다리는 선비의 모습이 단아하게 그려져 있다. 이 선비가 바로 임포 선생이다.

 

그림에서처럼 매화는 봄소식을 뜻하는 매신(梅信)이어서, 긴 겨울을 보내고 꽃이 피듯 시련기를 이겨낸 끝에 좋은 소식이 있음을 암시한다. 찬 서리를 이겨내는 강인한 성정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가는 선비의 의연한 자세와 닮았다 하여 군자의 꽃으로 추앙받는다.

 

외세의 억압에도 굽히지 않고 불의에 물들지 않으며 오히려 맑은 향을 주위에 퍼뜨리는 모습에서 선비의 기질을 본다. 그런 이유라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松)와 대나무(竹)도 마찬가지여서 매화를 포함한 이 세 가지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선비들의 표상으로 사랑을 받은 게다.

 

조선시대 성종연간에 활동하던 이인형(李仁亨:1436 - 1504)이란 분은 한시가 아닌 가사로 매화를 칭찬했는데

 

매창월가(梅窓月歌)​

 

매창에 달이 뜨니 매창의 경이로다.

매는 어떠한 맨가? 임천사 서호에

빙기 옥혼과 맥맥 청소에 음영하던 매화로다.

창은 어떤 창인가? 도정절 선생

쇄주 갈건하고 무현금 짚으며

슬슬 청풍에 기대었던 창이로다.

달은 어떤 달인가? 이적선 호걸이

채석강 머리에 일조선 띄워 두고

야피 금포 도착 접리 옥잔에 술을 부어

청천을 향하여 문하던 달이로다.

매도 이 매요, 창도 이 창이요, 달도 이 달이니,

있으면 일배주요, 없으면 청담이니.

평생에 한 시를 읊기를 좋아하노라.

 

라고 했다. 매화와 창과 달의 세 가지 소재를 끌어와 작품을 시작하면서 곧바로 자기 집 뜰에 심은 매화를 중국 송나라 때 임포가 서호에서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살던 그 매화라고 말하면서 임포를 인용하고 있다. 가사는 이어 자기가 거처하는 집(용두정)의 창을 도연명이 풍류 생활을 즐기던 취옹정의 창이라고 비유하고 자기가 거처하는 매창에 비치는 달은 당나라의 시선 이백이 채석강에서 뱃놀이할 때 보던 달이라며, 매화와 창과 달을 벗하여 시주(詩酒)를 즐기며 한가로이 살고자 하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듯 임포는 조선시대 매화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선비들의 거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매화를 심어놓고 그것을 즐겨 구경하는 취미는 우리나라에도 일찍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아도기라조(阿道基羅條)를 보면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一然)이 고구려에서 신라로 온 아도(阿道)를 시로 칭찬하고 있는데,

 

雪擁金橋凍不開 다리 위에 눈이 쌓여 있고 얼음도 풀리지 않았네

鷄林春色未全廻 서라벌의 봄빛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

可怜靑帝多才思 어여뻐라. 봄의 화신은 재주도 많아

先著毛郞宅裏梅 맨 먼저 모랑댁네 매화를 꽃피웠구나.

 

라고 하고 있어 당시에 이미 매화가 일부 귀족들 간에 심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고려시대의 대시인 이규보도 매화를 읊었는데

 

雨晴草色連空綠 비 개니 풀잎에는 하늘빛이 배어 푸르고

風暖梅花度嶺香 따스한 바람 타고 매화 향기 재 넘어오네.

 

라고 했다. 한겨울 봄을 기다리는 매화는 아니지만 진한 향기를 묘사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만큼 매화의 향기가 진하기 때문이리라. 과연 매화의 아름다움의 근본은 어느 꽃보다 유덕한 그 암향이 좋기 때문이리라. 아무 꽃도 피지 않는 겨울, 흰 눈이 쌓이는 겨울 속에서 홀로 소리쳐 피는 꽃이 매화 밖에 어디 있을까? 바로 혹은 이러한 조건들이 매화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화가이며 수필가였던 김용준(1904~1967) 씨는 매화와 이렇게 대화를 한다.

 

"매화는 그 둥치를 꾸미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 자라고 싶은 대로 우뚝 뻗어서 제 피고 싶은 대로 피어오르는 꽃들이 가다가 훌쩍 향기를 보내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제가 방 한구석에 있는 체도 않고 은사(隱士)처럼 겸허하게 앉아 있는 품이 그럴듯합니다.

 

나는 구름같이 핀 매화 앞에 단정히 앉아 행여나 풍겨 오는 암향을 다칠세라 호흡도 가다듬어 쉬면서 격동하는 심장을 가라앉히기에 힘을 씁니다. 그는 앉은자리에서 나에게 곧 무슨 이야긴지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매화를 대할 때의 이 경건해지는 마음이 위대한 예술을 감상할 때의 심경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런데 매화를 좋아한 문인으로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도 지지 않는다. 최근 교육과학사라는 출판사에서 펴낸 《퇴계선생매화시》를 보면 퇴계가 지은 한시는 2천 수가 넘는데, 그중에서 매화와 관련된 91수를 퇴계 당신이 스스로 뽑아 당신 글씨로 써서 만든 《매화시첩(梅花詩帖)》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한중일 3국어로 번역한 것이 《퇴계선생매화시》인데, 그 가운데 이런 시가 있다.

 

黃卷中間對聖賢 옛 책을 펴서 읽어 성현을 마주하고

虛明一室坐超然 밝고 빈방 안에 초연히 앉아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 보게 되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으리

 

서기 1552년 임자년 입춘에 쓴 이 시는 빈방에 혼자 앉아 책을 읽으며 옛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선비의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매화를 보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

 

요즈음 기온이 내려가 영하를 밑돌면서 비로소 겨울임을 실감하듯 우리 사회도 가장 추운 겨울에 들어와 있음을 알겠다. 꼭 기온이 내려가서 추위가 아니다. 이런 추운 겨울에 우리도 새봄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남쪽에는 벌써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다. 우인이 보내준 통도사의 자장매 가지 끝에 봄의 기운이 매달려 있다.

 

 

입춘이 지나면 우리들의 삶도 펴질 것인가? 남녘에 활짝 핀 꽃소식들이 올라오겠지. 그래 추위가 심할수록 봄이 멀지 않다는 뜻일 터이니, 그동안 겨울답지 않은 겨울로 긴가민가하던 우리들, 이제 정말로 우리 사회의 한겨울을 털어버리고 함께 봄으로 가보자. 깨끗한 매화의 기품처럼 우리 사회도 맑아지고 봄기운에 따뜻해지기를 기원하며 그렇게 만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