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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용이여 머리를 들고 나오소서

음력 2월 2일은 ‘용이 머리를 처드는 날(龍擡頭:용대두)’
[솔바람과 송순주 3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설이 지나고 대보름이 지났다. 우수도 지났다. 봄이 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비로소 해가 완전히 바뀐 것을 알고 올해를 어떻게 해야 잘 보낼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음력 2월에도 또다른 중요한 명절이 있음을 지나친다. 물론 우리가 그날을 쇠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올해만은 좀 특별하다.​

 

올해는 서력기원으로 따지면 2020년이어서 여기에 양력으로 2월 2일은 숫자로 표기하면 0202이니까 이것을 다 붙여놓으면 20200202가 되는데 이날이 우주의 대단한 섭리의 날이라고 해서 특히 중국 사람들이 열심히 복을 빌고 한 것을 우리가 소식으로 들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요즈음 무슨 ‘코로나19’인가 뭔가로 해서 2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몇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큰 재앙 속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정신을 차릴 날이 다가오고 있다. 바로 이달, 곧 2월의 25일이다.​

 

올해 양력 2월 24일 월요일은 음력으로 2월 1일이다. 그다음 날인 25일 화요일은 음력 2월 2일이다. “다음 주 화요일이 2월 25일입니다."라고 하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데 "다음 주 화요일은 음력으로 2월 2일입니다.”라고 하면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왜요? 그게 뭐 어때서요?” 그런데 이런 질문을 중국에서 하면 중국인들이 그것도 모르냐고 되물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음력 2월 2일은 중요한 날(名節)이기 때문이다.

 

무슨 날인가? 바로 ‘용이 머리를 처드는 날(龍擡頭:용대두)’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도 용을 더 좋아하고 숭상하는 중국인들은 용이 구름과 비를 주관하는 신령스런 동물이라고 믿는다. 음력 2월 2일은 곧 용이 머리를 들어 올려 하늘로 승천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단다. 절기상으로 보면 음력 2월2일은 대체로 양력으로 2월 20일 무렵인 우수(雨水)와 3월 5일 무렵인 경칩(驚蟄), 3월 20일 무렵인 춘분(春分) 사이에 온다. 중국은 남북으로도 땅이 크다 보니 이때쯤이면 남쪽 지방에서는 많은 곳에서 우기(雨期)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연현상이지만 중국인들은 이처럼 비가 시작되는 것을 용(龍)의 덕택이라고 생각해서 2가 겹치는 이 날을 용대두(龍擡頭)라고 부르며 기린단다. 용이 머리를 처든다고 하니까 거창해지지만 실은 음력으로 2월이 되면 동면을 하던 모든 벌레가 깨어나서 활동을 시작한다는 뜻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력 3월 5일 전후인 경칩(驚蟄)이 동면하던 개구리가 깨어난다고 해서 이날이 되면 봄이 본격적으로 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중국에서는 그것과는 별개로 음력 2월이 되는 첫날과 둘째 날, 특히 2월 2일을 만물이 깨어나는 날로 생각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왜 양력 24절기와 다른, 이런 명절이 생겼는가? 그것은 고대 천문학의 소산(所産)이다.

 

중국에서 밤하늘의 별자리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인 28수(宿)를 보면 각(角)、항(亢)、저(氐)、방(房)、심(心)、미(尾)、기(箕) 등 7개 별은 완전한 용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28수의 별은 각각이 한 개의 별이 아니라 몇 개의 별들이 모여있는, 일종의 별무리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중에 각(角), 곧 동쪽에 있는 제1수(宿)인 처녀자리 α별(스피카)이 용의 뿔처럼 보인다는 것, 음력 2월 초 초저녁에 동방의 지평선 부근 하늘에서 각성(角星)이 떠오르면 그때까지 지평선 아래에 숨어있던 용이 비로소 머리를 쳐들고 나오는 형세로 보인다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날부터 인간세계에 봄날이 돌아오니 대지는 다시 푸르러지고 봄의 경작이 남에서부터 시작돼 북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이날을 ‘춘경절(春耕節)’,‘농사절(農事節)’,‘춘용절(春龍節)’,‘청룡절(靑龍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단다.

 

2월 2일을 기리는 습속의 연원은 전설시대라고 하는 아주 멀리 삼황시대 복희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복희씨는 "농사, 누에치기를 중요시하고 애써 밭을 일궜다."고 하며. 매년 2월2일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시범을 보였다고 하는데 그 뒤에 황제 요, 순, 우왕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주나라 무왕 때에 단순히 농사를 짓는 시범을 펴는 것만이 아니라 대대적인 축하행사겸 잔치를 베풀어 다 같이 즐기는 전통을 마련했다고 한다.

 

 

용과 관계된 명절인 관계로 당연히 민속이 많다.

 

이날 아침 일찍 집집마다 돈을 넣은 차주전자를 들고 우물에 가서 물을 더 길어 조금씩 길에 따라내면서 집에까지 와서는 남은 물과 돈을 저수옹(貯水甕)이라는 항아리에 담는데 이것을 ‘인전용(引錢龍)’이라고 한단다. 곧 용을 집안에 끌어들여 집안의 행복과 재물의 풍성함을 구하는 것이다.​

 

이런 습속에 대해서 이상하리만치 우리나라 사람들은 둔감했다. 중국에 숱하게 사신을 다녀왔지만, 이 습속을 기록한 사람은 영조 때인 1760년에서 1761년 사이에 북경을 다녀온 이의봉(李義鳳 1733-1801)으로, 그가 기록한 사행일기인 《북원록》 제1권에만 보인다. 이 책 중의 산천풍속총론(山川風俗總論)을 보면​

 

“비록 외진 마을 초라한 집이라도 사방의 벽에 모두 색칠한 그림을 붙였으며 문미(門楣, 창문 위에 댄 나무)에 가는 반드시 ‘머리를 들어 기쁨을 보다〔擡頭見喜〕’란 넉 자를 썼으니 우리나라의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같다.

 

정월 초하루에 연거푸 폭죽을 터뜨리고 향안(香案, 제사 때 향로나 향합을 올려놓는 상)을 진설(陳設)하고 새 옷으로 바꾸어 입고 천지에 있는 여러 신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뒤에 아이들은 어른에게 절을 하고 친한 친구들과 신년을 축하하는 일을 마치는 것을 열흘이 지나야 그친다. 집집이 부친 둥근 떡〔餑餑〕을 종일 먹는다. 초하루부터 정월 초열흘까지는 날씨가 흐리고 맑은 것으로 육축(六畜, 집에서 기르는 대표적인 여섯 가지 가축), 사람과 곡식, 과일과 채소가 풍년이 드느냐 흉년이 드느냐를 점친다.

 

이달의 14일은 상등(上燈)이 되고 15일은 정등(正燈)이니 상원절(上元節)이 되며 16일은 잔등(殘燈)이 되니 이 3일 동안은 거리와 시장과 묘관(廟觀)에 모두 등불을 켜고 장식을 하며 주민들이 다리를 달리기도 하고〔走橋〕 성을 유람하니 ‘산백병(散百病 모든 병이 흩어짐)’이라고 한다. 고을에서 그네 뛰고 자초(紫草)를 묶고 등을 잡고 논다. 하순(下旬)에 속하는 닷새 동안은 절병(切餠)을 먹는데 이를 ‘전창(塡倉)’이라고 하며 온 땅에 재를 둥글게 편다. 2월 2일은 속명으로 ‘용대두(龍擡頭)’라고 하였으니 집집이 떡을 먹고, 문밖으로부터 방 안까지 재를 땅에다 까는데 이를 ‘인룡(引龍)’이라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무튼, 이날 중국인들은 때를 만난 듯이 이날 먹는 음식에 모두 <용>자를 붙인다. 이날 돼지머리 고기를 먹으면 ‘식용두(食龍頭)’이고 파전을 먹는 것은 ‘사용피(剚龍皮)’, 곧 용가죽을 찢는 것이 된다. 이날 먹는 밀국수는 ‘용수면(龍須麵)’, 곧 용의 수염을 먹는 것이요, 물만두를 먹는 것은 ‘용의 귀(龍耳)를 먹는 것(吃龍耳)’이 된다.

 

‘용린병(龍鱗餠)’이란 것은 시루에 쩌서 나오는 떡이 용의 비늘이 나오는 것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고, 이날 먹는 밥은 ‘용자(龍子)’이며,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작은 물만두인 훈둔(混頓)은 ‘용안(龍眼)’, 곧 용의 눈이 된다. 뭐 이런 식으로 끝없는 용 이름이 붙는다. 그리고 이날은 바느질은 하지 않는단다. 혹시 바늘로 용이 눈을 찔릴까 해서란다. 이런 모든 것이 용에게 의지해서 인간 세상에 좋은 날씨와 순조로운 비를 내려 농사를 잘 되게 하고 집집이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는 소박한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인들에게 이날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중요한 명절인 것을 이로써 알 수 있다.​

 

한가지 더 특이한 것은 이날 머리를 깎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체용두(剃龍頭)’라고 하는데, 이날 머리를 깎으면 일 년 내내 용머리가 되어 사업이 번창하고, 어디에서나 용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너도나도 머리를 깎는 통에 미장원과 이발소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런 습속이 왜 우리나라에는 전해지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명절을 중국과 함께 하는 우리가 말이다. 아둔한 필자의 생각으로는 옛날 복희씨로부터 최고지도자가 지정된 밭을 갈아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친경(親耕)을 하는 전통만을 받아들여 우리는 서울 동쪽에 마련된 선농단에서 밭갈이 시범을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어 그것이 전통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때 남자는 친경을 하지만 여자는 친잠, 곧 누에치기를 시작하는 행사를 한다. 친경은 임금이 종친 이하 문무 대신을 대동하고 왕실 지정의 밭인 적전(籍田)으로 나아가 농사와 인연이 깊은 신농씨와 후직씨를 주신으로 해서 쌓은 제단인 선농단(先農壇)에 제사한 다음에 거행하는 의식으로, 임금이 직접 쟁기를 다섯 차례 밀고 나면 이하 대신은 품계에 따라 일곱 차례, 아홉 차례를 밀게 된다.

 

《예기(禮記)》 제통(祭統)에 보면 “천자는 남교(南郊)에서 친경을 하여 제사 음식 마련에 이바지하고, 왕후는 북교(北郊)에서 친잠을 하여 예복 마련에 이바지하며, 제후는 동교(東郊)에서 친경하여 역시 제사 음식 마련에 이바지하고, 부인은 북교에서 친잠하여 예복 마련에 이바지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의 유교문화가 발전하면서 친경하는 이 부분만을 받아서 하는 것으로 해서 중국의 용대두 풍속을 대신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금방 설에다 대보름을 잘 즐겼는데 또다시 큰 명절을 쇤다는 것이 예전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하면 국력의 낭비라 생각해서 그렇게 건너뛴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선농단은 동대문구 제기동에 그 흔적이 있다. 이곳은 필자가 다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바로 북쪽 낮은 언덕이었는데 지금도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와 함께 당시의 토담과 제단이 정비되어 사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해마다 4월에는 어가행렬 재연, 선농제향, 전통 설렁탕 재연 등의 축제행사가 열린다. 당연히 그 자리에서 발원된 음식인 선농탕, 곧 설렁탕이 축제 참가자들에게 제공된다. 다만 행사 날짜는 4월 20일 무렵에 오는 곡우에 한다는 것이 중국보다는 두 달 정도 늦다. 아무래도 우리 서울 농사의 시작을 그때쯤으로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기동이라는 이름에 나오는 ‘기(基)’는 우리는 흔히 '터 기'라고 훈독을 해서 그게 무슨 터인 것만은 알겠는데 이 글자를 더 자세히 보면 기초(基礎), 토대(土臺), 근본(根本)이라는 뜻 말고도 무덤이나 탑을 세는 단위이기도 하고 쟁기(논밭을 가는 농기구)를 뜻하기도 해서 이 '기'라는 글자에 그러한 뜻이 다 들어가 있음을 알겠다.

 

 

그리고 그 인접한 동네가 용두동이다. 곧 용의 머리라는 뜻인데, 옛 서울시의 지명유래를 보면 근처에 용의 머리 같이 보이는 산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는 하지만, 내 생각에는 중국에서 용대두라고 하는 날의 풍속과 연관이 있는 지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실제로 용두동에서는 30년 전인 1991년에 청룡문화제라는 것이 복원돼 해마다 10월에 용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제가 벌어지는데, 원래의 기록을 보면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의 명을 받아 한양의 다섯 지역에 오방토룡단을 만들고 용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든 것이 흥인문 밖 3리의 평촌인 지금의 용두동 지역에 선농단과 함께 조성한 동방청룡단이었다고 한다.

 

이후 동방청룡단의 모양과 형태를 그대로 따서 서방, 남방, 중앙의 오방토룡단을 완성하여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동방청룡단의 기우제는 용의 모습을 그려놓고 지냈으며 친히 임금께서 폐백을 하사하여 예조나 관상감에서 이를 받들어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다 용대두의 변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올해 양력 2월 2일 2와 0이 그렇게 일렬로 서는 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에서도 별 소동 없이 자나갔다. 그것은 아마도 엄청나게 퍼져가고 있는 우한발 코로나 바이러스19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국인들 사이에 최근 감염자와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증상을 보이는 분들이 걱정했던 만큼 많지는 않다가 최근에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대보름에 호두나 땅콩껍질을 깨고 부스럼을 막아달라는 기원을 하는 대보름 습속이 있어서 그런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19의 억제에도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은 미신적인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너무 엉뚱한 발상인 것 같다.​

 

만일에 우리 동양에서 한 해의 운수를 음력으로 따진다면 당연히 2월 25일 음력 2월 2일이 그야말로 천년 만에 올까 말까 한 길일이 되는 것이다. 다시 숫자를 늘어놓아 보자. 2020년 02월 02일. 이날을 우리는 좋은 날로 축하하고 서로의 건강과 행운을 빌고 더불어 올해 농사, 사업 학업 모든 것이 큰 성취가 이뤄질 것을 빌면 된다. 우리가 중국을 따라 할 까닭은 없지만 그런 중요한 날이라면 이번 음력 2월 2일에 한 번쯤 마음속으로라도 소원을 만들어 비는 것이야 나쁠 까닭은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는 음력을 보니 2월 24일이 음력 2월 1일이고 2월25일이 음력 2월 2월이어서 이날 중국인들이 용의 의미를 기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확인을 위해 중국 측을 검색해보니 중국에서는 2월 24일이 음역 2월 2일이라고 하고 이날 용머리가 나오는 것을 축하한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다. 왜 음력이 다르게 나올까? 분명 우리에게 배포된 달력에 따르면 우리는 음력 2월 2일이 양력으로 2월 25일인데 왜 중국에서는 2월 24일이라고 할까? 중국 쪽의 신문들을 보면 모두 24일이 용대두라면서 이날을 기리자고 하고 있다.

 

 

분명 우리나 저쪽 어느 쪽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달력을 정하는 옛 관상감의 후신이라고 할 우리 기상대에 확인해야 할까? 아니면 중국 기상대에 확인해야 할까?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만세력을 뒤적거려 보아야 하나? 누구 아시는 분 있으면 좀 알려주시길….​

 

아무튼, 자고 나면 중국의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가 뛰고 있다. 중국에 창궐하는 것에서 중국의 용의 힘이 그렇게 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세계인들이 하게 된 것 같기는 한데 24일이건 25일이건, 어차피 우리는 이날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용이 이날 머리를 내미는 순간, 중국의 용이 중국인과 세계를 괴롭히는 이 신종바이러스균을 다 먹어치워 전 세계가 좀 불안에서 벗어나 마음을 놓을 수 있기를 기원하는 수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