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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산이 다시 부른다고?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솔바람과 송순주 3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날씨가 풀리면서 다시 산이 인기다. 코로나 몇 번 바이러스인지가 전국의 도시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놓았지만, 사람들이 그냥 집에만 있을 수가 없어 집 근처의 산으로 발을 옮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

 

산이 인기가 제일 높을 때가 있었다. 20여 년 전 이른바 IMF사태로 대량의 실업자가 생겨 그들이 가족에게는 직장에 나간다고 하고는 갈 데가 산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산이 요즈음 바이러스 사태로 갈 데를 잃은 도시인들이 찾는 서글픈 돌파구가 된 것이다. ​

 

그런데 산은 사실 가 본 사람만이 아는 즐거움과 기쁨과 깨달음이 있다. 산에 관해서는 공자가 말했다는 ‘요산요수(樂山樂水)’란 표현이 가장 멋있어 보이는데. 이 말은 원문을 보면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어서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한다.”로 풀이되는데, 우리는 이 말을 뭔가 많이 알고 지적(知的)이어서 세상에서 활동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물을 좋아하고 좀 인자하고 덕이 있는 사람들은 산을 좋아한다.“로 풀이하면서 서로 자신이 인자니 지자니 하고 스스로를 규정하며 산다. 그런데 공자가 했다는 이 말은 그 뒤가 더 재미있다. 곧 ​

 

“지자는 움직이고 인자는 조용하다. 知者動 仁者靜

지자는 즐겁게 살고 인자는 오래 산다. 知者樂 仁者壽 ”

 

라고 해서 지자와 안자의 특성을 더 규정한 것이다. 지자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만큼 삶이 더 즐거울 수 있고 인자는 움직이지 않고 조용한 만큼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이런 구절을 접할 때마다 과연 2천몇백 년 전에 살았다는 공자가 정말로 대단한 분이라는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공자가 물을 먼저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산을 우선해서 생각하는 것이, 그만큼 산에 대해 의미를 더 둔다는 뜻일 게다.

 

 

어릴 때 우리는 국토가 70%가 넘는 산으로 되어 있어 농토가 부족해 식량이 모자라고 성격이 산 속에 갇힌 모양으로 대범하지 못하고 그것이 민족성을 자꾸 오그러들게 만든다는 부정적인 쪽으로 배운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는 발상법도 가능하다; ​

 

산이 있으면 그것으로 막히고 갇히는 줄로 알기 쉬우나, 오히려 그것이 없는 광야에서 인간은 갈 곳이 없으며, 인간은 버림받은 양 고수(孤愁)를 맛보기 마련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7할의 산지를 국토로 가진 우리는 그만큼 천혜가 두텁다고 할 수 있다.                                  - 유치환/나는 고독하지 않다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시(詩) 깃발을 쓴 시인으로 유명한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1908~1967) 씨만 해도 60여 년 이전의 분이라서 ‘고수(孤愁)’라는 좀 우리가 쓰지 않는 단어를 골랐는데, 아마도 이 고수란 것은 고독한 쓸쓸함, 외로움의 느낌이란 의미일 것이다. 한글프로그램에서 이 '고수'라는 말의 한자어를 찾아보면 叩首, 孤愁, 苦受, 苦愁, 高手 등등이 나오는데, 원래 사용빈도를 한자(漢字)를 감안해서 배치했다는 설명이 유효하다면 이 고독한 쓸쓸함이란 말도 에전에는 꽤나 많이 쓰인 말인가 보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생소하다는 것, 그리고 맨 앞의 叩首(고수)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단어라는 데서 참으로 말이라는 게 많이도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되지만 요컨대 산에 가면 혼자서만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뭔가 이웃의 정이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니 산이 그만큼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좋다는 뜻일 것이다. 더군다나 산을 좋아하면 인생의 즐거움은 덜 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차분하게 오래 살 수 있다지 않는가?

 

 

그런 만큼 나이 드신 분들이 산을 좋아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올라가는 산은 건강에 그만큼 좋을 수밖에. 그렇지만 그분들, 특히 그 가운데에 좀 몸이 좋으신 분들이 일주일에 몇 번 산에 간다는 둥, 어디 어디를 몇 시간 만에 주파했다는 둥 자랑이 많으신데, 그렇게 산에 가는 것에 성과를 보여주려 하고 높은 산에도 잘 오른다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필자가 보기에는 인자의 특성이 아니라 지자의 특성이고 그만큼 즐거움을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오래 가지를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생긴다. ​

 

일본의 한 등산칼럼니스트가 이런 얘기를 했다; ​

 

중년의 나이에서는 ‘산은 도망가지 않는다’며 다음에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이 있지만 고령자들은 ‘산은 도망가지 않지만 나이가 도망 간다네’ 라고 하면서 부지런히 산에 간다​.

 

이 때문에 등반사고도 많이 일어나는데, 가장 많은 것이 60대이고 그 다음이 70대, 50대인 것을 보면 이런 말이 맞는 것 같다는 것이다. 요는 욕심일 것이다. 산이란 것이 과연 어디로 가겠는가? 그냥 그 자리에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마음이 바빠지니까 산에 대한 집착이 생기고 미련이 많아지면서 산에 욕심을 내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이리라.​

 

원래 요즈음에는 산 입구에서 명함을 나눠주며 악수를 청하는 분들이 많을 때다. 곧 국회의원 선거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는 이 바이러스 사태로 악수도 하지 못하는 때인 만큼 산에 오르면서 입구에서 굳이 장갑을 벗을 일은 없다고 하겠다.​

 

워렌 버거란 사람이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라는 책에서 그랬단다;

“깃발을 꽂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을 받아들이고 공기를 마시고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 산에 오르세요. 세상에 여러분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산에 오르세요.”

 

뭐 60이 넘은 사람들이라면 이제 더 무슨 세상을 보고 싶겠는가만은, 요는 산에 가서 세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다시 보고 몸뿐이 아니라 마음도 씻어서 고요함과 차분함, 그리고 세상을 더욱 넓게 보게 되면 그것으로 산이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산이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충분한 존재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은 자유로운 바람이요 고요일세

커서 좋고 깊어서 더욱 좋네                           - 김광섭 / 산

 

 

우리에겐 산과 관련해서 기억해 줄 대통령이 한 분 있다. 산이란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워주신 분이다. ​모든 권력이 다 그런 운명인 만큼 이제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만인의 투쟁이 벌이지는 이 때에 우리들은 산의 덕성을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내려오지 않으려 발버둥치다가는 나중에 더 큰 낭패를 당하는 것이 인간사의 진리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들이 서로 길에서 좋게 만나서 좋게 인사하고 서로 덕담을 하고 그것으로 인간의 정을 나누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는 것도 올 봄이 꼭 정치의 계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

 

“내가 오르고 있는 이 산 정상에서 언젠가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내가 왜 숨 가쁘게 이 산을 오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죠. 옆사람보다 빨리 정상에 도착 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산에서 내려올 때 우리는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