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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예언은 그저 예언이었을 뿐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세균들도 멀리 날려갈 것
[솔바람과 송순주 3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해를 새로 맞을 때 언론들이 즐겨 다루는 소재가 새해 운세 예측이다. 신문이나 잡지, 혹은 방송들도 유명 역술가들을 동원해 새해의 나라 운세가 어떻다는 둥 개인의 운세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몇 월 며칠에는 무얼 조심하라는 둥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러한 새해 운세는 양력 1월 1일과 설날(음력 설)을 지나면 대개는 잊힌다.

 

설에 시골집에 내려가서 부모님들로부터 “올해 네 운세는 어떻다고 하니 올해는 가야지!”라는 말을 듣고 잔소리라며 지겨워하는 노총각 노처녀들처럼 한 해를 새로 시작할 때에 들은 말이 결국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것을 경험으로부터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 그들 아니라도 다들 생업에 뛰어들다 보면 연말이나 연초에 주워들은 새해 운세라는 것이 그리 삶에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왔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다르다. 올해 초 모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2020 나라운세’를 말한 여성의 예언이 화제가 되면서부터이다. ‘#보살’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이 여성이 현재 우리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예견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 데서 비롯된다. 곧 그 여성은 국민이 2020년에 무엇을 조심해야 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올해 운세를 봤는데 병원이 좀 매우 바쁘더라. 아플 일이 있을 것 같다"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올해 초에 이미 코로나 사태를 예견한 것이라고 누리꾼들이 주장하는 대목이다.

 

 

이 여성 외에 다른 역술가들도 "어느 지도자는 신수가 좋아 잘 될 것이라는 둥, 화재 그것도 대형 화재가 생길 것 같아서 걱정된다는 둥 활발한 수출과 무역으로 경기 회복이 예상된다는 둥 전망을 쏟아내었는데 이른 감은 있지만 지금 볼 때는 코로나19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고 있어서 그 말들을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그동안 역술가들이 말한 우리나라 정세, 국제 정세, 정치와 경제 등에 관한 예언(아니 그냥 전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기는 한데)들도 지나고 나면 맞는 것이 별로 없음을 우리는 경험했기에 연초의 새해 전망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쉽게 잊히는 것일 거다. 그렇지만 어떤 역술가는 때때로 다른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거나 맞추지 못하는 것을 혼자서만 맞춘다고 하면서 우리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미래를 점쳐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결국 이런 식으로 디지털 시대인 21세기에도 역술가들의 역할이 여전히 죽지 않고 남아있는 것 같다.

 

역사상 예언이나 예견은 수도 없이 많지만, 최근까지 수백 년 지속하는 예언이 말라키의 예언이라는 것이다. 이 예언은 아일랜드 아머의 대주교였던 ‘말라키 오모게어’(1094-1148)가 환상을 통해 본 예언을 기록한 글이 그가 죽은 지 450년만인 1590년 바티칸 고문서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진 이후 벌어진 일이다.

 

이 예언에는 그가 살아 있을 때 취임한 교황(1143년) 이후 역사 속에 등장할 111명 교황들의 특징을 2~3개의 라틴어로 설명해 놓고 있다. 예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11번째 교황 이후에 등장할 숫자가 표시되지 않은 한 교황에 관한 것인데, 말라키는 그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세워질 마지막 교황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

 

말라키가 예언한 교황들의 순서로 따지면 현 프란시스교황의 직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바로 111번째 교황에 해당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5년 4월 즉위했는데, 베네딕토 수도회 출신이었다. 그런데 베네딕토 수도회의 상징이 바로 ‘올리브’로서, 말라키가 111번째 등장할 교황으로 묘사한 ‘올리브의 영광(Gloria Olivae)’라는 문장과 부합한다면서 사람들은 과연 말라키의 예언이 맞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교황은 역사상 처음으로 살아생전인 2013년 초에 사임을 하고 3월에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선출되었다. 그렇다면 새 교황은 바로 말라키가 예언한 ‘무리들을 환난으로 이끄는 로마 카톨릭의 마지막 교황’이 되는 게 아닌가?

 

말라키는 마지막 교황을 ‘Peter the Roman(로마의 베드로)’라고 적고 있고 “마지막 박해의 때에 로마 교회는 ‘Peter the Roman(로마의 베드로)’이 통치하고 있을 것인데, 그는 많은 환난 속에서 그의 양들을 먹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7개의 언덕으로 된 도시(로마)는 파괴될 것이고, 끔찍한 심판이 사람들에게 내려질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이 교황 때에 세계가 멸망하고 끔찍한 심판이 내려진다는 말이 되는가?

 

물론 아직 교황이 건재하고, 세상도 곧 망할 것 같지는 않은 상황에서 말라키의 예언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상황이어서, 종말론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종교의 영향 때문에 세상의 종말이 정말로 오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론 도중 기침을 했다는 것이 뉴스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유독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퍼지고 있고 올해 83살의 고령에 폐 질환을 앓은 적 있는 ‘고위험군’ 교황이기에, 교황의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없을 수 없지만, 걱정의 밑바닥에 혹 말라키의 예언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상에 있었던 많은 종말론이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대부분 허무맹랑한 것으로 결론 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그랬고 무슨 천체의 행성이 대십자가로 서면 종말이 온다는 둥, 마야인들의 달력을 볼 때 2012년에 멸망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아무 탈 없이 21세기를 맞았고 2012년도 어느새 지나갔다. 국내에서도 여러 종교의 종말론이 다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말라키의 예언이 글자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말라키의 예언이 16세기에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는 데서야.

 

어떤 사람들은 신약성경 속에 이미 세상의 큰 전환이 암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마가복음 9장 1절에서 예수가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 가운데서 몇 사람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세 있게 오는 것을 볼 것이다.”라고 했고 누가복음 9장 27절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오지만, 그 제자들의 생전에 하나님 나라가 오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종교에서의 예언은 상징으로 보아야지 꼭 현실로 실현된다는 뜻이 아니라고 하는 분도 있다.

 

그러한 강한 상징과 비유로 기록된 것이 성경의 맨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이다. 이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말세를 미리 기록한 예언서다”라는 시각이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줄기차게 있었고 예상 못 한 천재지변이나 환경적 재앙이 있으면 그것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로 세상의 종말에 오는 환란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온갖 신흥종교들이 ‘요한계시록’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지어는 자신만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며 자신이 말하는 대로 따라 해야 하나님의 옆자리에 올라 영생을 보장받는다는 말을 하는 데에 사람들이 몰렸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마태복음 24장 3절~5절을 보면 예수는 세상의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라고 하고 있어, 일찍이 이런 데에 현혹되는 것을 경계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7장 15절에서도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만,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있다."라고 했다. 이것이 예수가 가르쳐준 진정한 의미의 예언이 아니겠는가?

 

올해 초 방송에서의 한 여성 역술가의 예견이라는 것도 그런 지적을 미리 했었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들일 일인 것 같다. 성경의 많은 예언도, 이렇게 말하면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지만, 그것을 현실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종교적인 비유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설마 정말로 현재의 사태가 성경에 나오는 세상의 마지막을 알리는 환란일 수야 있겠는가? ​

 

우리 인간들이 인간이라는 종족의 생존만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세균을 박멸하고 하는 과정에서 그 세균들도 생명이기에 진화를 거듭해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대비하지 못하는 존재로 다시 생겨나는 것이 그 원인의 하나라면, 우리는 이 사태를 보다 겸허하게 우리 인간들의 삶의 방식과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의 계기로 볼 일이지,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듯 불안해할 일은 아니라고 하겠다. 이런저런 말들에 신경을 쓰다 보면 다시 감각이 무뎌지고 이성이 흐려진다.

 

그러다 보면 공포심에 사재기나 도피, 이성을 잃은 행동들이 나올 수 있다.

 

한 미국인이 서울의 거리가 텅 비고 도시 곳곳에 감염병 관련 경고 문구가 적혀있는 등 서울의 모습이 마치 종말시대에 있는 것 같다고 어느 신문에서 말하자 BBC의 로라 비커 특파원은 "서울이 힘든 상황인 건 맞지만 종말을 맞은 건 아니다.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고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것은 맞지만 확실하게 말하던데, 시민들이 공포에 질리지는 않았다.”라고 썼다. 맞는 이야기이다. 모든 사람이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

 

이제 곧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우리나라 상공에 날아다니는 세균들도 미세먼지와 함께 멀리 날려가지 않겠는가? 모든 병이나 질환은 걱정과 근심을 먹고 큰다는 말이 있다. 쓸데없는 예언에 미혹되지 말고 봄바람으로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맑게 만들어 다시 생명의 환희가 넘치는 힘찬 봄을 만들어가자는 말을 요즈음에 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