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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고향임, 연극배우 접고, 판소리꾼으로!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6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향임(高香任) 여류명창이 국립국악원 무대에서 8시간 30분 동안, 판소리 <춘향가> 완창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때로는 슬픈 소리로, 때로는 재미있는 아니리와 발림으로 청중을 쥐락펴락했다는 이야기, 판소리 공연의 일반적 형태는 어느 한 대목을 토막소리로 부르는 것이었으나, 1968년도에 고 박동진 명창이 처음 완창을 시도한 이래, 이러한 형태가 정착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지난해 12월, 대전시 예능보유자 고향임 명창은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하여 객석을 메운 청중들로부터 열띤 환호를 받았다. 고 명창은 소리꾼이 되는 과정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녀의 말이다.

 

“저는 1957년(64살) 군산에서 태어났어요. 군산은 최난수 명창이나, 김수연 명창 등 국내 최정상급 판소리 명창을 배출해 낸 고장이지요. 또한, 내일의 명창이 되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젊은 소리꾼들이 적지 않은 전통 예술의 고장입니다. 저는 여고시절, 시(詩)를 좋아했고, 또한 누구 못지않게 연극에 관심이 많아서 배우 지망의 학생이었지요. 여고를 졸업한 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 연극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배우의 꿈을 키우다가 드디어 민예극단(미추)에 입단하여 배우가 되었습니다.”

 

고향임은 꿈에도 그리던 배우가 되어 극단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극단에 소리지도 차 초빙되었던 오정숙 명창을 만나게 되면서 판소리의 매력에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그녀의 나이 21살 때였다. 오정숙 명창의 소리를 열심히 따라 불렀고, 날이 가면서 판소리에 대한 새로운 열정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남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이기는 했지만, 대명창의 소리에 점점 빠져들면서 판소리의 매력에 이끌린 그녀는 그 후, 명창의 은근한 권유에 5년 동안 매일같이 소리 공부를 했다고 한다. 아예 선생 댁에 기거하면서 온종일 소리만 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이때 익힌 소리들이 바로 동초제의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등 네 바탕이었다. 각고의 수련 덕분일까? 냉소를 일삼던 주위의 소리꾼들도 조금씩 그녀의 소리를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6년도에 고향임은 꿈에도 그리던《국립창극단》에 입단하게 된다.

 

국립창극단이 어떤 곳인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판소리 전문가들의 집단으로 1960대 초, 국립으로 설립되었고,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창극(唱劇)공연을 나라 안팎에서 열어오면서 구시대의 낡은 유산이라는 판소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어 온 단체가 아닌가! 지금도 그렇지만 판소리를 전공해 온 젊은 소리꾼 중에서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이미 그의 소리 실력이나 연기의 수준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기공연, 비정기 공연 말고도 수시로 대중과 만나는 단체여서 단원 누구든지 극(劇) 중 맡은 역할에 몰두하지 않으면 전문가나 일반인의 비평에 견디기 어려운 곳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입단이 되었다고 하면 바로 그 소리 실력이나 연기의 수준은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 소리꾼들이 선호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고향임이 활동하던 당시의 국립창극단은 고인이 된 김소희 명창을 비롯하여 박귀희, 박초월, 박동진, 한농선, 남해성 등 당대 내로라하는 거목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현재 한국의 판소리계를 이끌고 있는 대명창들이 함께 수련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곳에서 소리와 연극, 인간관계 등을 배우기 위해 고향임이 어떠한 시간을 보냈는가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 것이다.

 

고향임은 창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도 꾸준히 오정숙 명창의 가르침을 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종목 이수자(履修者)의 자격도 획득하게 된다. 이수자란 예능 보유자에게 일정 기간 수련 과정을 거친 뒤, 전문가들의 객관적 평가로 그 실력을 인정받는, 곧 그 과정을 마친 전승자의 자격을 획득한 사람이다. 극단의 연극배우 한 사람을 장래성 있는 소리꾼으로 키우고자, 판소리 세계로 뛰어들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오정숙 명창은 오늘의 고향임을 있게 만든 은인 중의 은인이 아닐 수 없다.

 

창극단 단원으로, 문화재 이수자로, 활발하고 분주한 고향임의 생활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충분히 만족하고 안주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그녀는 더 큰 명창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곧 실기(實技) 능력과 이론 지식을 겸비하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뒤늦게 대전시 목원대학 한국음악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국악학 석사학위를 받게 된다.

 

 

이때, 그가 쓴 졸업 논문이 판소리 <흥보가> 중에서 「놀부 제비노정기 비교연구」였다. 흔히 흥보 제비의 노정기는 자주 접하는 대목이라 친숙한 편이지만, 놀부 제비의 노정기는 그렇지가 않은 편이다.

 

고향임은 이 대목의 가사와 장단형태, 붙임새의 모양, 그리고 구성음 중 꺾는 음의 형태 등을 박녹주-박송이로 이어지는 소리제와 김연수-오정숙으로 이어지는 소리제로 견줘 양자의 특징을 확연하게 밝혀낸 것이다.(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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