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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돈의문 철거하고 목재는 205원에 팔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9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15년 3월 4일 매일신보는 “난 경성 서대문이올시다.”라는 제목의 조선총독부 기관지답지 않은 기사를 실었습니다. 서대문이라고도 불렸던 돈의문의 철거를 의인화해서 ‘영원히 사라질 서대문’을 안타까워했지요. 기사는 “나는 1421년(세종 3년) 팔도장정 30만 명의 손으로 탄생한 성문 8곳, 곧 8형제 중 둘째 되는 돈의문이다”로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이름 덕분에 몇백 년 먹어도 갓난아이처럼 ‘새문 새문’ 소리를 듣더니…여러분과 인연이 끝나 경매되어 팔린답니다.(가운데 줄임) 조국에 변란이 일어나면 무능한 나도 국가의 간성(干城, 방패와 성)노릇을 해서 성밑에 몰려드는 적군의 탄환과 화살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지엄하게 한성의 서편을 지켰는데 다만 경매 몇푼에….(가운데 줄임) 도끼와 연장이 내 몸을 파괴한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죽죽 돋아난다.”라고 이어집니다.

 

이로부터 3달여가 지난 6월 10일 마침내 돈의문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요. 당시 조선총독부는 경성(서울)을 정비한다는 명목 아래 ‘시구개정’이라는 이름으로 도성 안 각종 도로 정비를 추진 중이었는데, 이 사업의 하나로 돈의문이 철거되었습니다. 총독부는 돈의문 석재는 도로공사에 썼으며, 문루의 기와와 목재는 경매에 부쳐 염덕기라는 이에게 단돈 205원(지금 돈 약 521만 원)에 팔아버려 없어지고 말았는데 돈의문의 흔적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돈의문 현판이 유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