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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0일을 걸어가 종두법을 배워온 지석영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30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는 지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큰 어려움에 부닥쳐 있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아직 이에 대한 백신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백신이 없었던 조선시대 후기만 해도 두창(천연두는 일본에서 유래한 이름)은 조선시대에 만연했던 여러 가지 돌림병(전염병) 가운데서도 감염률과 치사율이 매우 높았고, 낫더라도 흉한 곰보 자국을 남길 정도였고 그래서 마마라고 높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1876년 수신사를 수행해 일본에 다녀온 박영선은 일본에서 서양의학의 종두법을 소개한 《종두귀감(種痘龜鑑)》이라는 책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자신의 조카를 비롯한 수많은 어린이가 죽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지석영은 이 《종두귀감》을 읽고 두창 예방을 위한 서양의학의 방법을 배우기 위해 부산에 있는 일본 해군 소속의 서양식 병원인 제생의원에 찾아갑니다. 가난했던 지석영은 타고 갈 말 한 필을 구할 수 없어서 서울부터 부산까지 20일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곤 해군 군의관에게서 두 달 동안 종두법을 배우고, 종두 접종을 위한 우두의 원료를 구해 가지고 와 종두법을 시행했지요.

 

그 뒤 지석영은 1880년 제2차 수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위생국에서 본격적으로 우두 제조법을 배워 와 그해 10월부터 서울에 종두장을 차리고 조선인을 대상으로 종두 접종을 시작했습니다. 또 개화파의 지원을 받아 전주와 공주에 우두국을 설치하여 사람들에게 종두를 놓아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1894년 이후 새로 생긴 위생국에서 전국의 종두사업을 관장하게 됩니다. 결국, 지석영의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보아 1895년 조선 정부는 모든 어린이가 태어난 지 70일부터 만 1년 사이에 의무적으로 종두 접종을 하도록 하는 ‘종두규칙’을 반포합니다. 우리는 이 땅의 의료 근대화 과정에서 선교사나 일본인들이 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지석영 등 조선인들이 스스로 노력했던 일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