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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일인다역(一人多役)의 소리꾼, 고향임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6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향임이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오정숙 명창의 영향으로 소리꾼의 길을 결심한 뒤 선생 댁에 기거하면서 소리만 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였고, 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履修者)가 되었으나 실기와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서 「놀부 제비노정기 비교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녀의 학위 논문, 「놀부 제비노정기 비교연구」는 박녹주-박송이로 이어지는 소리제와 김연수-오정숙의 소리제를 악보화 하여, 장단별, 단락별 구성음과, 종지음, 꺽는 음 등을 살펴서 선법(旋法)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장단 형태도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리듬형의 종류나 횟수 조사에 머물지 않고, 대마디 대장단 이라든가, 잉어걸이, 당겨 붙임, 완자걸이나 교대죽 등의 전통적 판소리 리듬꼴을 분석하는 과정이 구체적이고 객관적이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판소리 <흥보가>는 가난하고 착한 동생, 흥보가 날기 공부하다가 떨어진 제비의 다리를 치료해 주고, 그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가운데 강남에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대목이 바로 <제비 노정기>인데, 이 대목은 <흥보가> 가운데서도 유명한 대목으로 자주 불리는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놀부에 의해 다리가 부러졌던 제비도 강남에서 박씨를 물고 돌아오는 대목이 있는데, 이름해서 <놀보 제비 노정기>이다. 그러나 이 대목은 다소 생소하다. 박녹주-박송희의 창은 “앞 남산 지내고 밖 남산을 지내”로 시작해서 (가운데 줄임) “박씨를 툭 던져놓고 구름속으로 날아간다”로 모두 중중모리 72장단에 얹어 부르고 있다.

 

이에 반해, 김연수-오정숙의 창은 “그해 겨울을 다 보내고, (가운데 줄임) 박씨를 놀보 손에다 뚝 떨어치고 ~백운간으로 날아간다”로 34장단의 짧은 구성이다. 박송이가 부르는 가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원래 흥보가에서 이 대목, <놀보 제비노정기>는 없었던 것을 박봉술이 고종 말엽의 명창, 장판개의 <흥보 제비 노정기>를 참고해서 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판개는 송만갑의 제자였는데, 송만갑의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 짜 부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향임의 논문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다. 그는 소리공부에도 열심이었다. 착실하게 다져진 실기와 이론을 공부한 고향임은 국내 각 지방에서 열리고 있는 권위있는 판소리 경창대회에 출전하면서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1994년 대전광역시가 주최한 제4회 국악 가무악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대상>의 영예를 안은 것을 비롯해서 전국 유명 시(市), 도(都)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에서 <금상>, 또는 <최고상>을 거머쥐며 자신의 객관적 소리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2006년 5월, 마침내 국악계 최고의 경연으로 알려진 전주대사습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된다. 한해에 한 사람만이 오를 수 있는 권위있는 대회이기에 이 대회에서 장원을 했다고 하면 누구나 그 실력을 인정하게 되고, 그래서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최고의 소리꾼이 되었다고 하는 장원의 자리는 개인의 영광은 말할 것도 없고, 스승이나 부모, 그리고 수상자가 살고있는 지역도 함께 그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녀의 수상으로 인해 대전이 판소리 명창을 배출해 낸 예술의 도시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원래 충남은 예전부터 유명 중고제 소리꾼이 많았던 곳이었으나, 해방 이후는 달라진 것이다. 특히 대전이라고 하는 중심도시는 최근까지도 판소리와 거리가 먼 도시였다.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한 뒤 고향임은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나서서 소리판에 참여해 왔다. 또한 <고향임 판소리연구원>을 개설해서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 영향으로 국악, 특히 판소리를 전공하려는 학생들도 생기기 시작하였고, 공무원이나 자영업자, 교사를 비롯하여 일반 시민들의 교양이나 취미를 위한 참여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문화의 관심이나 냉대가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는 긍정적 분위기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업의 하나가 2009년에 동초제 춘향가 완창 공연을 8시간에 걸쳐 실시한 것이다. 또한, 이를 주최하면서 그 기념으로 <동초제 춘향가의 전승과 미학>이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연 것도 그녀가 판소리를 위하고, 대전을 위해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었다는 점은 당시, 판소리 학회장의 다음과 같은 축사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 이 행사는 고향임 명창의 노력에 의해 마련되었는데, 그녀는 나이 쉰이 되던 해에 전주대사습에서 당당히 장원을 차지함으로써 소리꾼으로서 입신했다. 판소리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전에서 활동하자면 혼자서 몇 사람 몫을 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일인다역을 위한 준비가 다 된 사람이다. 그래서 소리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또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오늘 세미나에 저명한 학자들이 많이 참석해 주셨는데, 모두 혼자 일인다역을 하며 분투하고 있는 고향임 명창을 응원하는 뜻에서일 것이다. 물질적 풍요만이 최고의 가치로 인식되고 있는 한심한 세태에 대항해서 문화와 예술의 기치를 높이 드는 맨 앞에 고향임 명창이 있다.”<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