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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국민이 해설해 주세요“

문화재청이 공모하는 문화재 안내문안에 응모하자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4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을 맞아 문화재청에서 의미 있는 일을 벌이는 모양이다.

 

전국에 있는 25개의 문화재를 대상으로 안내문을 더욱 쉽고 멋있고 더 편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써서 보내주면 우수한 작품을 뽑아서 표창도 하고 그것을 안내판에 쓰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리 함께 만들어요! 문화재 안내판 안내문안’ 온라인 공모전으로서 오는 5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안내문안을 공모해 받는다. ​

 

문화재 안내문은 원래가 복잡한 한자말에서 온 것이 많아서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음은 자타가 다 인정하는 점이다. 전국에 있는 모든 문화재의 안내문을 새로 쓸 수는 없으니 우선 25개만을 뽑아서 안내문을 새로 써보자는 것이다. 이를 테면 명승 제20호인 제천 의림지와 제림에 대한 기존의 안내문은 다음과 같다:​

 

“제천 의림지(義林池)는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호반의 둘레는 1.8km이고 수심은 8m이다. 제방을 따라 소나무,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제림(堤林)이라 불린다. 물과 숲이 주변의 영호정(映湖亭) 및 경호루(鏡湖樓) 등과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고 있다. 호서(湖西), 호수의 서쪽이라는 충청도의 다른 이름은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내제(奈堤), 곧 큰 제방이라는 제천의 옛 이름도 의림지에서 비롯된 것이다.”(아래 줄임)

 

 

이 안내문에는 한자가 병기되어 이해를 돕고 있으며 비교적 이해가 잘될 수 있게 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한 단어 한 문장도 단어의 배열에 따라 그 뜻이 더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이를테면 ‘호서(湖西), 호수의 서쪽이라는 충청도의 다른 이름은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같은 부분이 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부분을 포함해 전체를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제천의 의림지는 호수의 둘레가 1.8킬로미터이고 수심은 8미터에 이르는 큰 저수지이다. 호수를 따라 큰 뚝이 만들어져 있는데, 소나무나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서 이를 뚝방 숲이란 뜻의 제림(提林)이라고 부른다. 이 숲의 자락 경치 좋은 곳에는 ‘호수를 비추는 정자’인 영호정(映湖亭)과 ‘거울 같은 호수를 볼 수 있는 정자’인 경호루(鏡湖樓)가 세워져 있는데 이처럼 물과 숲, 정자가 한데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충청도를 부를 때 흔히 호서(湖西)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바로 이 호수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고장의 이름인 제천(提川)은 조선시대 태종 때부터 사용되었고 이전에는 큰 제방이라는 뜻의 내제(奈堤), 또는 큰 제방이 있는 고을이라는 뜻의 제주(堤州)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모두 이 의림지와 뚝을 뜻하는 제(堤)라는 글자에서 나왔다.”

 

위 문장과 첫 문장의 차이는 보는 분에 따라서는 그게 그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뜻이 더욱쉽고 명확하지 않을까 한다. 다만 이렇게 풀어쓰다 보면 설명이 길어져서 안내판에 다 싣기가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기왕에 편하게 읽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풀어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안 개선의 대상으로 제시된 국보 제41호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의 안내문을 보자:​

 

“철당간이 서 있는 곳은 고려시대 청주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던 용두사가 있던 자리이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 사찰의 건립과 함께 많은 수의 당간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대부분 당간을 받치고 있던 지주(支柱)만이 남아 있다. 이 당간은 화강석으로 지주를 세우고 그 사이에 둥근 철통 30개를 연결하여 세운 것인데, 현재는 20개만이 남아 있다. 이 중 밑에서 세 번째의 철통에 『용두사철당기龍頭寺鐵幢記』가 새겨져 있다. 철당기에는 당간을 세우게 된 내력과 건립 연대, 그리고 건립에 관여한 사람들의 관직명이 적혀 있어, 당시 지방경영과 관련된 사실을 알 수 있다.”(아래 줄임)

 

 

이 안내문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절을 많이 다녀보았는데 당간이 있었다는 설명은 있지만, 당간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를 설명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당간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글이 먼저 나오는 것이 어떤가? 이를테면 당간의 당(幢)은 불전이나 불당 앞에 걸어두는 깃발(旗)이고 간(竿)은 높은 기둥을 뜻하므로, 당간(幢竿)은 절에서, 기도나 법회 등이 있을 때 행사를 알리는 깃발을 걸어두는 기둥이라고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철통 30개를 연결하여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밑에서 위로 쌓아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살려서 안내문을 만들어본다면 ​

 

“여기는 고려시대에 청주를 대표하는 절이었던 용두사가 있던 곳으로, 절 앞 이곳에는 쇠로 만든 당간(鐵幢竿)이 서 있었다. 당간은 절에서 기도나 법회 등의 행사를 알리는 깃발을 걸어두는 기둥으로서, 기둥을 받치는 받침대인 지주(支柱)는 흔히 화강석 돌로 만들고 그 위에 쇠로 통을 만들어(철통) 쌓아올려 맨 위에 깃발을 거는 장치를 붙인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 절을 만들면 그 앞에 당간을 많이 세웠으나, 현재는 대부분 통은 사라지고 지주支柱만 남아 있는데 이곳 당간은 모두 30개의 철통 30개를 위로 연결하여 세운 것인으로, 현재는 20개가 남아 있어서 귀중하다. 이 가운데 밑에서 세 번째의 철통에 당간을 세우게 된 내력과 건립연대 등을 적은 『용두사철당기龍頭寺鐵幢記』가 새겨져 있어서 당시 건립경위와 건립에 관여한 사람들의 관직 등 관련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이런 문화재 안내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수원 화성에 있는 방화수류정에 대한 안내문에서 비롯되었었다. 수원시의 관광안내책자를 보면 ​

 

“화성의 각루는 4개소가 있으며 동북각루는 성의 동북요새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방화수류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동북각루는 건축미가 화려하면서도 우아하여 화성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곳이다.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보는 용연 위에 비친 달빛과 어우러진 버들가지는 용지대월이라 하여 수원팔경 가운데 으뜸이다.”​라고 되어 있다. ​

 

우리는 수원 화성을 들어보았지만 이 안내문만으로는 왜 화성이라고 하는지, 화성이 별이름하고 어떻게 다른지는 알지 못한다. 각루는 무엇인지, 방화수류정은 혹 방화시설이나 수류탄 투척지가 아닌지 헷갈린다. 용연은 방패연과 다른 무슨 연인가. 수원팔경 중에서 으뜸이라고 하는 용지대월은 어디에 쓰이는 종이를 빌려주는 곳인가 의아해진다. 그것은 한자를 쓰면 큰 일 나니까 한글전용으로 써야한다는 데서 그런 것도 있고 애초부터 쉽게 쓰겠다는 생각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이 문안을 ​

 

“꽃처럼 아름다운 성이란 뜻으로 정조대왕이 이름을 붙인 화성(華城)에는 네 모퉁이마다 각루(角樓)라고 하는 누각을 세웠다. 동북쪽의 각루는 이 성(城)의 동북쪽 요새지(要塞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꽃을 찾아가고(訪花) 버드나무를 따라가는(隨柳) 정자란 뜻의 이 각루는 특히 화려하면서도 우아하여, 화성(華城)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곳이다. 방화수류정 앞에는 용연(龍淵)이라는 못이 있는데 이 각루에서 바라보는 용연(龍淵) 위에 비친 달빛과 거기에 어울어진 버들가지를 보는 이른바 ‘용지대월(龍池待月)’은 수원의 8가지 멋진 경치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

 

 

이렇게 고치면 좀 더 쉽고 그 아름다움이 금방 느껴지지 않을까? 거기에는 한자를 병기하는 것이 필수다. 흔히 우리는 한글만이 우리 글이라고 하는데 우리 말은 순수 고유어에서 온 것도 있고 한자말에서 온 것도 있으며 중요한 개념어는 한자말에서 온 것이 많기에 한자를 병기해야 뜻이 쉽게 이해되는 어휘들이 아주 많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한자 병기는 이러한 안내문에서 무조건 써야할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보다 실용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

 

좋은 안내문은 어떤 것일까? 상주에 있는 ‘경천대’가 그 사례가 될 것이다. 상주에서 20분이면 도달하는 낙동강 변 바위 절벽인 경천대에 12년 전에 갔을 때 거기 쓰여 있던 안내문은 다음과 같았다.

 

“낙동강변에 위치한 경천대는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1,300여리 물길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제1경”의 칭송을 받아 온 곳으로 하늘이 만들었다 하여 일명 자천대(自天臺)로 불리는 경천대와 낙동강물을 마시고 하늘로 솟구치는 학을 떠올리게 하는 천주봉,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울창한 노송숲과 전망대, 조선 인조15년(1637) 당대의 석학 우담 채득기 선생이 은거하며 학문을 닥던 무우정과 경천대비, 임란의 명장 정기룡장군의 용마전설과 말먹이통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명승지와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설명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명승지로서 낙동강 제1경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이 설명문에도 자천대는 한자로 써 놓고 경천대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다. "일명 자천대라고 불리는 경천대", 그것이 전부이다. 그럼 이 경천대는 하늘이 만들었다는 뜻인가? 보통 ‘경’이라고 하면 경사스러움(慶), 놀람(驚), 주의를 줌(警), 존경함(敬)...뭐 이런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지만, 그 넓은 유적지에 경천대를 한자로 쓴 것이 하나도 없고, 그 설명도 모호해서 과연 경천대가 무엇인지 구경을 다 하고 나서도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경천대는 ‘擎天臺’였다. ‘擎’이라는 글자는 옥편에 들 경이라고 훈을 달고는 그 뜻이 ㉠들다, 들어 올리다 ㉡받들다, 떠받들다 ㉢높다 ㉣우뚝 솟다... 란 뜻이다. 그렇다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리라. 한자 ‘擎’을 써놓고 풀이해주면 쉬운 일을 그걸 않니 말이 빙빙 돈다. 그래서 나는 경천대에서 ‘경’이란 한자는 알려주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한 바 있고,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에는 한자를 덧붙인 새로운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다. 더 복잡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벌국 옛 당에 자리한 경천대는 하늘이 지은 절경이라 자천대로 일컬어졌으며, 대 밑에 기우제 터인 우담(雩潭)이 있어 상산(商山)의 신성지였다.“

 

문장이 긴데 우선 여기까지만 보면 경천대에 한자를 병기했지만, 느닷없이 자천대는 한자만을 쓰고 있어 일관성이 없다. 또 자천대는 하늘이 지은 절경이라고 풀었는데 정확하게 하려면 하늘이 스스로 지은 대라는 뜻으로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다음 줄에 ​

 

”그런 까닭에 숭명사상으로 자천대 정상에다 ‘대명천지 숭정일월’ 여덟 자를 새긴 경천대비를 세움에 후세 사람들이 자천대를 경천대라 불렀다.“ ​

 

라고 하면서 경천대라는 이름의 풀이는 하지 않고 마치 숭명사상, 곧 명나라를 숭앙하는 사상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경천대라고 부른 것으로 설명한다. 이 모든 설명은 사실 다 맞지도 않는다. 움담 채득기 선생은 생전에 경천대라는 이름이 들어간 시를 남겼으므로 그 전부터 경천대란 이름이 있었다. 우담 선생이 명나라를 잊지 못한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경천대라고 했다는 말도 터무니없다.

 

 

이 부분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으로는 2007년 1월29일 영남일보가 보도한 대로 ​”본래는 기묘한 괴석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자연천성(自然天成)의 뜻으로 자천대(自天臺)라 하였으나, 우담이 터를 잡은 뒤 하늘을 떠받친다는 뜻의 경천대(擎天臺)로 바뀌게 되었다.“라는 설명이 가장 타당한 것 같다. 여기에 경의 뜻도 제대로 풀었다. 이처럼 문화재의 안내라는 것은 정말로 수준도 천차만별이고 난이도도 차이가 큰데 국민이 더욱 쉽고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는 안내문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에서 국민들에게 문화재 안내문을 공모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국민 모두가 쉽고 편하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문안을 만들어, 그것을 읽고 더욱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해나가자는 국민운동일 것이다. 그러니 필요하다면 한자건 또는 영어건 병기하는 것이 도움 될 것이다. ​

 

5월 15일까지 공모하는 안내문안 대상으로는 사적인 서울 독립문과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보물인 수원 팔달문, 천연기념물인 목포 갓바위처럼 국보와 보물, 사적과 천연기념물, 국가등록문화재 등 25개가 선정되어 있다. 나도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쉬운 말로 문안을 만들어 응모해볼까? 누가 아는가? 혹 당첨이라도 되어 이 봄에 그 기쁨을 갖게 될 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