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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더 다듬어 나이 70에 다시 완창공연할 것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7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춘향가의 시작은 제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시작한다. 김세종 제는 처음 부분에서 남원이라는 고장과 춘향과 이도령을 소개한다. 이에 견주어 동초제는 춘향 모친의 태몽 이야기를 끌어들이며 시작하는 점에서 동초 자신이 새롭게 짜 넣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판소리 춘향가는 춘향과 이 도령이 꽃피는 봄, 광한루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이며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가>는 뜻하지 않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곧바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만일 이별 없이 오랜 시간 사랑가만이 지속한다면 관객은 곧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야기가 재미있게 전개되기 위해서는 반전의 슬픈 대목이 펼쳐져 슬픈 감정으로 변하게 되어야 한다.

 

이별의 장소가 오리정이냐, 춘향의 집이냐를 놓고, 각 바디는 차이를 보이지만, 헤어지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서로 사랑하던 젊은 남녀의 이별이란 곧 슬픔 그 자체가 분명하다. 슬픔은 비감(悲感)이어서 비감은 객석의 눈물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조건이고, 또한 눈물을 흘리도록 슬픈 분위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고향임의 완창무대는 이 대목에서 슬픔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춘향과 이 도령이 무대 위에서 실제의 상황을 그대로 열연하듯, 한동안 이별의 슬픔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슬픔의 분위기도 마냥 길어져서는 또한 청중이 흥미를 잃게 될 수도 있다. 다시 무대의 반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별가 뒤에 <신연맞이>가 나온다.

 

이 대목은 새 벼슬을 받고, 부임지로 오는 감사나 수령의 행차길이다. 이 길은 조용하거나 슬픈 분위기기 아니라, 악대가 따르고, 행렬이 씩씩하고 활달하여 떠들썩한 분위기로 바뀐다.

 

 

이처럼 판소리 춘향가의 앞부분이 재미가 있으면서도 긴장되는 것은 사랑가로 시작해서 이별가로 전환이 되고, 그래서 슬픔이 어느 정도 극에 달할 무렵, 다시 신연맞이 대목으로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가 분명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즐겁고, 슬프고, 기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대상물이나 상황에 느껴 감정이 달라지고, 그 달라진 느낌이 마음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소리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 악서(樂書)에는 슬픈 마음이 느껴질 경우의 음(音)은 초이쇄(噍以殺), 곧 그 소리가 타는 듯하면서도 힘이 없다고 하였다. 초(噍)는 애끓는 것이고, 쇄(殺)는 소리가 낮고 힘이 없는 것을 뜻한다. 또한, 즐거운 마음이 느껴질 때는 그 소리가 명랑하면서도 여유가 있고, 기쁜 마음이 느껴질 때는 그 소리가 높아져서 흩어지며, 분노의 마음을 느낄 때는 그 소리가 거칠고도 사납다고 하였다.

 

 

이렇듯 춘향가의 다양한 감정을 소화하며 완창무대는 객석의 호응과 함께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두 번째 권혁대 고수에 이어, 세 번째 고수로 등장해서 신연맞이~여러 기생이 등장하는 대목까지 북을 쳐 준 최광수는 현재 대전시 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의 이수자며 제28회 전주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을 받은 바 있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고수다. 특히 최 고수는 평소 고향임의 공연무대나 연습 때에도 함께 호흡을 맞추어 온 사람으로 누구보다도 창자의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남천예술원 예술 감독인 박현우가 등장하여 옥중가(獄中歌)에서부터 농부가 대목까지 북을 쳐주었다. 옥중가란 춘향이가 신임사또의 수청을 거절했다고 해서 옥에 갇혀 "쑥대머리 귀신형용"으로 시작하는 신세자탄가로 일제강점기 임방울이 불러 더더욱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대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서 서울시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의 예능보유자 송원조 명인이 나와 박석고개~춘향 유언대목까지 북을 쳐 주었는데, 그는 원로 고수의 여유있는 기품과 안정된 분위기로 창자와의 호흡을 맞추었다.

 

마지막 대목은 김규형이 등장해서 본관사또 생일잔치~끝부분까지 대단원의 끝을 장식해 주었다. 생일잔치와 암행어사 출두 대목은 고수에게 있어 특히 어렵고 힘든 부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대목을 김규형이 해결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김규형은 동초 김연수의 자제로 동초제 판소리의 전승과 보존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는 고수였기에 그가 직접 완창발표회의 8시간 대미를 장식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역할이었다고 생각된다.

 

 

박근영으로 시작해서 권혁대, 최광수, 박현우, 송원조, 김규형 등, 6명의 고수는 정확하고 강약을 살린 타법과 함께 다양한 추임새로 소리판을 시종일관 뜨겁게 달구어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일어서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창과 고수들이 안내해 주는 소리의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던 점으로 입증이 될 것이다. 완창 공연을 끝내고 명창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미비했던 점들은 다시 공부해서 보완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60대 중반이니까 70세에 다시 완창발표회를 가질 계획입니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이 바로 저의 생활이고, 소리 연습이 바로 저의 생활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객석에서 큰 손뼉 소리가 한참을 이어졌다. 여류명창 고향임과 고수들의 합작으로 빚어낸 소리의 세계가 충분히 청중을 울리고 웃겨 감동을 주었던 무대였다고 국악사는 평가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