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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조선ㆍ중국서 행한 성매매제도는?

[맛 있는 일본이야기 55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조직적인 국가 범죄다. 이렇게 강요된 성 착취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그 근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학술심포지엄이 지난해(2019) 12월 14일, 도쿄외국어대학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심포지엄의 주제는 일본ㆍ조선ㆍ중국 동북에서 본 만주의 기억과 흔적이었다. 이날 발표에서 경북대학교 이동진 교수는 ’만주국의 조선인 ‘성매매자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면,

 

“일본의 성매매제도인 유곽(遊廓) 시설의 공창제(公娼制)는 1872년에 <창기해방령(娼妓解放令)>을 공포하여 막부시대부터 내려오던 공창제를 폐지한 이듬해인 1873년 도쿄부령 제 145호로 <유곽규칙>과 <창기도세규칙娼妓渡世規則>을 공포함으로 성립되었다. 이러한 제도가 일본인의 해외 거류지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난 곳이 조선이었다. 조선에서는 1881년 부산과 원산에서 일본영사관령으로 <유곽영업규칙> 등을 공포하여 유곽 영업을 허가하였다.

 

중국의 대련에서도 일본의 공창제가 실시되었다. 현지 군 당국은 1905년 12월에 대련 봉판정에 유곽을 설치하여 군의 관리하에 기루(妓樓)의 설치를 허가하였다. 봉판정 유곽은 15개의 기루에 음식점, 잡화점이 3~4개 있고 사무소를 중앙에 두고 122에서 126명의 예기(藝妓)와 167명의 창기(倡妓)를 두고 영업을 했다.

 

성매매업이 가장 성행하던 상해에서는 모두 17개 등급의 기원(妓院)이 있었다고 한다. 1920년, 도덕촉진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등 기녀가 2,135명, 2등 기녀가 400명, 3등과 사창이 4,500명, 광동 기녀가 200명 등 모두 7,235명 있었다고 한다.”

 

 

이어 이동진 교수는 “공창제에서 나타나는 성매매종사자에 대한 인신구속, 포주와 성매매종사자, 고객과 성매매종사자 사이의 불평등성을 비판하지 않는 것, 성매매종사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들을 사회적으로 배제시키고 오로지 업주의 관점에서 돈벌이의 성공을 칭송하는 것,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식민지성(수탈성)’을 비판하지 않았던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성매매제도는 그 기원이 권번(예기), 유곽(창기), 요리점(예기와 작부), 음식점(작부), 카페(여급)로 분화되었으며 이러한 성매매제도는 조선과 중국땅에서 거대한 자본 생성의 한 업태로 유지되었다. 그것이 결국은 일본군위안부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이동진 교수는 보고 있다.

 

요 며칠 사이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그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치매 운운하며,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회견장에서 장시간 원고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치매 운운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지목된 당사자는 어찌 이런 지적이 나왔는지 곰곰이 반성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하며, 시민단체들도 장기집권하면서 개혁을 소홀히 하면 언젠가는 뿌리째 흔들릴 위기의 때가 분명히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하거나, 일본군위안부 지원 운동은 이제 필요 없다거나 심지어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러한 일은 일본 우익들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 일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