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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어사 출도 직전까지 줄풍류가 벌어졌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7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세종제 암행어사 출도 대목 중에서 북, 장구 등이 이리저리 뒹글고, 취수는 나발 잃고 주먹, 대포수는 총을 잃고 입방아로 소리를 내는 등,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가운데 '장구통이 요절한다'와 ‘뇌고(雷鼓)소리 절로 난다’라는 의미를 이야기하였다.

 

장구는 원래 채로 치는 북이라는 뜻에서 장고(杖鼓)라고 쓰고, 읽으며 허리가 가늘다는 뜻에서 세요고(細腰鼓)라는 이름도 있다는 점, 지휘자가 따로 없는 국악합주의 대편성 음악에서는 장고가 지휘자 역할을 한다는 점, <뇌고>와 <뇌도>는 하늘을 제사하는 천신제(天神祭)에 쓰였던 타악기였는데, 이러한 악기들이 지방의 사또 생일날, 배치되었다면 이것은 잘못 쓰인 것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취수(吹手)란 글자 뜻으로 미루어 나발이나 태평소 등 입으로 부는 악기를 다루는 악사를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취수(吹手)라는 말보다는 취고수(吹鼓手)라는 말을 많이 썼다. 다시 말해, 취타대(吹打隊)나 행렬 음악에 있어서 부는 취악기와 타악기 악사들까지 함께 이르는 용어로 쓰였던 말이다.

 

이제까지는 김세종제의 춘향가 중 암행어사 대목을 살펴보았다. 표현이 다소 점잖고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하는 편이다. 아마도 선비층이나 지식인들을 감상자로 끌어드리기 위한 사전 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에 견주어 동초제 사설은 훨씬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쉽다. 그 앞부분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암행어사 출두야! 출두하옵신다. 출두야!”

“두세 번 외는 소리 하늘이 답싹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 듯, 백일벽력 진동하고 여름날이 불이 붙어 가삼이 다 타는구나.

 

 

각읍 수령이 넋을 잃고, 탕건(관의 일종) 바람 버선발로 대숲으로 달어나며, ‘통인아, 공사궤(公事櫃-관청일을 넣어 둔 함) 급창아, 탕건 주워라.’ 대도(大刀-큰칼) 집어 내던지고, 병부(兵符-나무패) 입으로 물고 헐근실근 달어날 제, 운봉 영장 동이(질그릇의 일종) 잃고 수박 들고 달어나고, 담양부사 갓을 잃고 방석 쓰고 달어나고, 순창 군수 탕건(宕巾-벼슬아치의 관) 잃고 화관(花冠) 쓰고 달어날 제, 임실 현감은 창의(氅衣-윗옷) 잃고 몽도리 입고 달어나고, 순천 부사는 겁도 나고 술도 취허여 다락으로 도망쳐 올라가 갓모자에다 오줌을 누니 밑에 있던 하인들이 오줌 벼락을 맞으면서 ‘어푸! 어푸’ 겁결에 허는 말이, ‘요사이는 하느님이 비를 끓여서 나리나부다.’”

 

암행어사가 출도한다는 소리에 남원 변사또 잔치에 모였던 각 읍의 수령들이 정신없이 달아나는 급한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큰 칼 내던지고 병부를 입에 물고 달아나는 모습을 비롯하여, 동이 잃고 수박을 안고 있다든지, 갓 잃고 방석을 쓰고 있다든지, 탕건을 잃은 채 화관(花冠)을 쓰고 있는 모습, 그리고 창의를 잃고- 몽두리를 입는 등, 모두가 정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들이다. 그렇다면 본관 사또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가?.

 

본관이 넋을 잃고, 골방을 들어가다가 쥐구멍에다가 상투를 박고“ 갓 내어라. 신고 가자. 신발 내라 쓰고 가자, 말 내어라. 입고 가자, 창의 잡아라, 타고 가자. 문 들어온다. 바람 닫혀라. 요강 마렵다. 오줌 들여라. 물 마르니 목 좀 다오!”<중략>

 

갓은 머리에 쓰는 것이고, 신발은 발에 신고 가는 것인데, 정신이 없어 갓을 신고, 신발을 쓴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다음에도 말(馬)과 창의, 문(門)과 바람, 요강과 오줌, 물과 목 등 정신없이 반대로 뒤집고 있다. 그 뒤로 다음의 악기들이 부서지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는데, 김세종제 이 대목에 나타나는 악기들보다 훨씬 많고, 또한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 다양한 악기들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어 대단위 합주 음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거문고, 가야금, 양금, 해금, 생황, 단소, 피리, 젓대, 북, 장고, 산산히 부서질 제, 춤추던 기생들은 팔 벌린 채 달어나고, 관비는 밥상 잃고, 물통 이고 들어오며 “사또님 세수 잡수시오” 공방은 자리 잃고 멍석 말어 옆에 끼고 멍석인 줄을 모르고, “아이고 이놈의 자리가 어찌 이리 무거우냐?” 사령은 나발 잃고 주먹 쥐고 “홍앵, 홍앵, 홍앵” 운봉은 넋을 잃고 말을 거꾸로 집어타고 “워따 급창아! 이 말 좀 보아라!. 이 말이 운봉으로 아니 가고, 남원 어사또 계신 데로만 뿌드등 뿌두등 가니 암행 사또가 축천축지법도 허나부다!” <아래 줄임>

 

이처럼 거문고, 가야금, 양금, 해금, 생황, 단소, 피리, 젓대, 북, 장고 등이 나오고 있는 점으로 보아, 민간 줄풍류의 편성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