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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앉아서 실컷 유람하시오

또 다른 여행, 와유와 좌유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4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금강산과 백두산에 관한 전문사진작가이며 영상작가이신 이정수 님이 새로 이사한 집을 위해서라며 액자에 넣은 사진을 선물로 가지고 오셨다. 사진을 보니 금강산 천화대의 모습이다. 구름이 영봉들을 휘감아 오르는 신령한 풍경사진인데 보는 사람들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선경이다. 지금 금강산에 가면 딱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금강산 관광이 끊어진 지 10년이 넘어 가볼 수가 없으니, 사진으로라도 이렇게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 아무리 좋은 경치도 구경하러 갈 수가 없으니, 옛날 교통편이 힘들어 천하의 명승이라도 구경을 하지 못한 선인들의 처지와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선조들이 실제로 가보지도 못하면서도 가장 많이 애송한 시가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의 '등악양루(登岳陽樓)'라는 시이다. 사실 옛날 악양루를 가서 볼 우리 선인들이 몇 명이나 있었겠는가? 얼마 전까지야 숱하게 우리가 관광으로 다녀왔지만, 이제는 못 가보는 그 악양루의 경치와 그것을 보는 시인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昔聞洞庭水러니

今上岳陽樓라.

吳楚東南坼이요,

乾坤이 日夜浮라.

 

고등학교 때 문과반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두시언해(杜詩諺解)’라는 우리말 번역본에 나오는 시를 공부했는데 대체로 이런 뜻이다;​

 

일찌기 동정수의 명성을 들었는데

이제사 악양루에 올랐구나.

오ㆍ초 두 나라가 동과 남으로 갈라지고

하늘과 땅은 낮밤으로 떠 있음이라.

 

 

동정수란 곧 중국 호남성(湖南省) 북부에 있는 중국 제2의 호수 동정호(洞庭湖)를 일컫는다. 호남성이란 말이 이 호수의 남쪽에 있는 곳이란 뜻에서 생긴 것이기에, 이 호수가 그만큼 크고 중요했음을 알겠는데, 그 호수를 굽어보는 악양루에 올라서 시인 두보는 경치만이 아니라 그 경치의 이면에 있었던 수많은 전쟁과 여전히 진행되는 전쟁통에 고생하는 모든 서민들의 힘든 삶을 가슴 아파한다. ​

 

親朋에 無一字일새 老病이 有孤舟구나!

戎馬는 關山北하니, 憑軒涕泗流라!​

 

친척 친구는 소식도 없고

늙은 몸만 쪽배에 있네

저 멀리 북쪽에서는 여전히 전쟁 중

난간에 기대니 하염없이 눈물만 나오네

 

두보의 이 ‘등악양루’의 첫머리는 우리의 시인들도 흔히 차용하는 수법이었다. 붉은 글씨로 표시한 석과 문 두 글자를 주목하시라.​

 

聞三日浦(석문삼일포)  예전에 삼일포 소문을 들었는데

上四仙亭(금상사선정)  오늘에사 사선정에 올랐구나

水拍白銀盤(수박백은반)  물이 들이쳐 흰 은반을 만들고

山圍蒼玉屛(산위창옥병)​  산이 둘러쳐 푸른 옥병풍이 되었네.​

 

 

天空綵雲濕(천공채운습)  하늘은 비단 구름에 젖어 있고

石老秋光淸(석로추광청)  바위는 가을빛에 선명하구나.

仙人去已遠(선인거이원)  신선들 떠나간 지 오래된 터라

古亭今無楹(고정금무영)​  옛 정자가 지금은 기둥도 없네.

 

                                           - 홍여하(洪汝河), <유삼일포기(遊三日浦記)​>

 

그야말로 두보의 시 형태를 그대로 차용한 것임을 한 눈에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홍여하(洪汝河, 1620~1674)가 금강산을 여행하다가 동해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삼일포에 들러 그곳의 멋진 경치를 한시로 표현한 것이다.

 

 

서양인들이 어디를 보고 경치를 적은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그만큼 명산 명수가 적어서일까? 반면 동양, 특히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선비들은 어디를 가든 그곳 경치를 적고 감회를 읊었다. 그들은 산을 보면 물을 생각하고 물을 보면 인생과 시간을 생각해서 그 속에 있는 자신의 처신까지도 새롭게 다짐하곤 했다.​

 

처음 산으로 올라올 때는 산봉우리가 빙 둘러 에워싼 가운데 그윽하고 아름다운 경치가 올라올수록 한층 더 기이하여 신선한 기분이 끊임없이 들었는데, 정상에서 내려올 적에는 주위의 경관이 자꾸 더 속되고 좁아진다는 느낌에 가슴이 조여드는 듯 갑갑하여 마치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며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이로 볼 때 내 몸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 삼가지 않을 수 없으며, 혹시라도 보는 견해를 낮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한강(寒岡) 정구(鄭逑),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

 

세상에 도(道)를 지닌 사람 또한 실상이 그 명성을 웃돌기를 이 산과같이 한다면 그 명성은 커지기를 구하지 않아도 커지고 더 널리 이름나기를 구하지 않아도 더욱 멀리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산을 보는 자 어찌 한갓 바라보고 유람하는 데에만 그치랴. 반드시 마음속에서 감발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 노경임(盧景任,1569~1620),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

 

조선의 시인묵객들도 천하의 명산을 구경하기를 즐겼고 특히나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선비들의 유람기가 문집마다 태산의 모래처럼 많다. 특히 성리학이 틀을 확립한 조선조 중기 이후에는 주자(朱子)가 지은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의 경계를 흠모해서 산수의 경치를 마음으로 흠모하고 이를 통해 도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니 퇴계와 율곡이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 위에는 신선의 영(靈)이 있고

山下塞流曲曲淸  산아래 골짜기는 굽이굽이 맑도다

欲識箇中奇絶處  가장 멋있는 곳 알려고 한다면

櫂歌閑聽兩三聲  뱃노래 두세 가락 천천히 들어보소

 

                                                  - 주자, 무이구곡가

不是仙山詫異靈  신령스런 산이라 놀자는 게 아니라

滄洲遊跡想餘淸  주희 있던 유적 보려는 것

故能感激前宵夢  어젯밤 꿈에 선생 본 감격 살려

一櫂賡歌九曲聲  구곡가 운을 빌어 다시 노래하세

 

                                                  - 이황, 도산구곡가​

 

 

아! 산을 말하면 물이 그 가운데 있고, 인(仁)을 말하면 지(智)가 그 안에 포함되니, 옛날 선현들의 산을 유람하는 즐거움이 어찌 한갓 칠원(漆園)의 노인이 말한 백혼무인(伯昏瞀人)처럼 위태로운 길을 가서 먼 경치를 구경하는 것만 취하겠는가? 반드시 주자(朱子)가 무이구곡(武夷九曲)으로 비유한 것처럼 길을 나아가는 것이 차례가 있는 연후에 바야흐로 “물건을 관찰하여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 농곡 김명범, 유가야산록기(伽倻山遊錄記)

 

 

 

어쩌면 옛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여행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반드시 몸으로 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여행한 것도 포함해서이다. 산에도 오르고 물도 굽어본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아마도 지금 우리들이 스티븐슨의 여행기를 읽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명저라고 열심히 읽지만, 제대로 소개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조상들이 남긴 여행기를 다시 엮어서 펴내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여행기가 무수히 나오지 않을까? 결국, 우리 땅을 여행하면서도 우리가 남긴 기록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하기야 여행이라는 것이 그런 모든 지식을 떨쳐버리고 고정관념 없이 훌훌 털자는 것인데, 거기에 과거의 기록들을 읽으라고 한다면 누가 좋아할 것인가? 그러나 여행이라는 것이 때로는 정신으로도 하는 것이니까 때때로 우리의 사정이 밖으로 직접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각과 경험의 영역을 넓힌다고 생각하고 책 속으로, 글 속으로도 여행을 해 볼 일이다. 요즘같이 코로나 사태로 꼼짝을 하지 못하는 때에는 책으로나 글로 세상 구경을 새로 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방법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한동안 누워서 산수를 본다는 와유(臥遊)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 말은 멀리 가지 못하는 옛사람들이 사랑방에 누워서 병풍 속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는 법을 일컬었다. 그런데 이제 굳이 누워서 병풍을 보지 않고도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통해서라도, 집 안의 거실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멋진 경치를 다 볼 수 있다. 그러니 그것은 눕다는 뜻이 어울리지 않으므로 차라리 앉아서 유람한다는 뜻으로 '좌유(座遊)'라고 하면 어떨까? 이제 날씨도 더워지고 있으니 시원하게 창문을 열어놓고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코로나 사태를 생각해서 집 안에서 느러지게 좌유를 할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