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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원혼이 서린 군함도, 왜곡말라

[맛있는 일본 이야기 555]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군함도>는 나가사키항에서 18km 떨어진 섬으로 1887년부터 1974년까지 석탄 채굴을 하던 곳이다. 1890년 미츠비시가 이 섬을 매입해 해저광산으로 이용했는데 미츠비시는 1916년 급증하는 노동자를 수용하고 태풍으로 인한 파손을 막기 위해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구조 대형 아파트(9층 규모) 단지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탄광으로 최전성기였던 1960년에는 5,300명이 거주할 만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인구밀도가 수도 도쿄의 9배가 넘을 정도였다.

 

탄광이나 금광지역이 활황기 때에는 언제나 광부와 그 가족들 그리고 돈벌이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군함도>가 단순한 일본인들의 돈벌이 장소였다면 오늘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곳이지만 그러나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석탄을 캐다 숨져 간 곳이기에 우리에게는 치욕의 장소다.

 

 

해저 700m에 있는 지옥 같은 탄광 속에서 조선인들은 12시간씩 2교대로 구부린 채 탄을 캐 날라야 했다. 탄광 일이란 갱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열악한 작업 환경이라 한 달에 적게는 수명씩 많으면 몇십 명씩 죽어 나가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광부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은 가혹한 노동과 배고픔이었다. 이러한 고통을 벗어나고자 일부는 탈출을 시도했지만,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라 대부분 물속에 빠져 죽거나 설사 헤엄쳐 간다고 해도 육지에 닿기 전에 잡혀 고문을 받기 일쑤였다. <군함도>는 2015년 7월 5일 세계문화유산 ‘명치시대 산업혁명유산 제철ㆍ철강ㆍ선박ㆍ석탄 산업’으로 정식 등록되어 있으며 일반인을 위한 관광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도쿄도 신주쿠에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만들어 지난 6월 15일 일반에 공개했다. 이곳에는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 등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시대 산업유산 23곳이 소개돼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시설에 ‘조선인 강제노역은 없었다’라는 역사 왜곡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일본 평화운동가인 신카이 도모히로 씨는 한국 정부 대표 다국어 포털 ‘코리아넷’에 기고한 칼럼에서 ‘군함도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군함도>는 단순한 일본의 근대산업 문화유산이 아니라 이곳에서 강제노역으로 숨져갔던 조선인들의 원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일본이 이렇게 ‘차별이나 강제노역은 없었다’라는 식으로 시치미를 떼는 것은 그들이 인감의 존엄성을 외면하는 파렴치한 집단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