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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뿌리가 숨이 막히면

소나무는 잎이나 줄기만이 아니라 뿌리까지도 숨을 쉰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5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나라의 봄과 여름이 좋은 것은 푸르름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계절적인 특성상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는 활엽수가 많고 침엽수도 낙엽송의 경우는 잎이 떨어지니까 가을을 지나 겨울 이후 이른 봄까지는 갈색의 나뭇가지만 보아야 한다는 아쉬움이 많은데 5월이 지나면 대부분 나무에 잎이 돌아오니 산과 들이 온통 푸르게 변하여 눈에도 좋고 마음에도 여간 싱그러운 것이 아니다. 특히나 요즈음 도시 주변이건 어디건 조경을 잘하고 나무를 잘 가꿔 그 속에 사는 재미를 실감하게 된다.

 

 

 

 

서설이 길어졌는데 새로 이사 간 북한산 자락에서 구파발역까지 약 2킬로미터는 산에서 내려오는 실개천이 흐른다. 이 물을 따라 양쪽으로 아름다운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 이곳 주민들뿐 아니라 북한산을 오르내리려는 분들도 즐겨 산책길로 이용하고 있다.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곳곳에 수초가 자라고 있고 군데군데 놓인 바위 근처로 몰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그 작은 물고기들을 노려 오리가 헤엄치고 해오라비가 날아오는 이 실개천은 도심에서 보기 힘든 선경임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실개천 옆에 조성된 조그만 휴식공간에 앉아 쉬다가 무심코 주위를 보다 보니 침엽수인데 몇 그루가 죽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아서는 칡덩굴이 올라가고 있고 그 옆의 나뭇잎들도 가려주고 있어서 죽은 것 같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꽤 높은 나무들 여러 그루가 돌아가면서 다 죽어 있다. 그래서 다시 주위를 보니 그 옆에 심은 소나무들도 잎이 누렇게 죽어가고 있다. 그 일대가 다 그렇다.

 

 

 

 

 

특별히 이 일대 나무들만 죽을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소나무들이 죽어가고 있을까?

 

그러한 생각이 들자 이 동네 한 절에서 죽어가는 소나무들을 본 기억이 난다. 그 절에서는 절 일대를 고치고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기존에 있던 건물터를 깊이 파다 보니 흙이 많이 나왔는데, 그 흙을 멀리 갖다 버리는 것이 힘들었거나 아니면 아까워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절 입구 쪽 평지에 넓게 흙을 펴서 깔았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평지에 살고 있던 수십 년 된 소나무들이 졸지에 두꺼운 흙이불을 덮게 되었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야 이런 공사 이후의 변화를 보고 그냥 그러려니 하는 정도인데, 그 후 이상하게도 몇 그루의 소나무, 그것도 아주 키가 크고 잘 살던 소나무가 누렇게 잎이 변하다가 죽은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인들과 나누다 보니 그 가운데 조경을 하는 분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소나무 뿌리를 두껍게 흙으로 덮어주어 소나무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말라 죽는 것입니다. 두꺼운 흙을 뒤집어쓰면 금방 말라주는 것이 아니라 몇 년을 두고 서서히 말라 죽게 되는데, 일단 잎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하면 다시 살아나기가 힘듭니다. 사람들은 흙이 있으니까 겨울에 소나무들이 얼어 죽기라도 할까 생각해서 덮어준다고 하는데, 기존의 소나무 뿌리를 덮어주면 소나무들은 영락없이 말라 죽게 되는 것이지요."

 

이 조경을 하는 분은 자신이 전국의 유명 소나무에도 그런 현상이 발생해 흙을 제거하고 긴급히 소나무에 영양을 공급해 살린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결국, 소나무는 잎이나 줄기만이 아니라 뿌리까지도 숨을 쉰다는 이야기였다. 이와 관련해서 조금 더 관련자료를 찾고 조언도 받아보니 소나무가 스스로 살아가면서 빗물 등에 의해 토사가 씻겨 내려가면 뿌리가 노출되는 수가 많은데 이것도 다시 덮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폭우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뿌리가 드러난 때에는 흙을 덮어 보호해줘야 하지만 오랜 기간을 거쳐 점차 흙이 유출된 경우에는 그 나무의 드러난 뿌리는 뿌리의 기능보다도 이젠 줄기로서 숨을 쉬면서 수목의 지지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무의 뿌리는 우선 물을 빨아들여 뿌리털에서 물과 무기양분을 흡수하는 것이 일차적인 기능이지만 땅속으로 뿌리를 내려 넓게 퍼지면서 나무의 몸을 지탱해주는 것도 중요한 기능이다. 그다음으로는 호흡기관으로서 호흡을 통해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며 영양분을 저장하는 등의 작용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출된 곳이라고 혹 겨울에 얼어 죽을까 봐 흙을 덮어 자연스러운 생육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산속의 절 등에서 주차장을 만든다거나 건물을 늘이는 과정에서 공사하다가 이런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되는 것이, 등산로를 가면 늘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옆에 서 있는 오래된 소나무들은 바위와 모래 사이를 뚫고 뿌리를 박고 있는데 그런 험한 지형조건 속에서도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뿌리들이 줄기처럼 나무를 지탱해주는 것 말고 바로 그 뿌리를 통해 숨을 마음껏 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을 겨울에 이들이 얼어 죽을까 해서 흙을 덮어주면 이 나무들은 어느새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리라는 것도.​

 

그렇구나. 나무는 그 뿌리를 잘 지켜주어야 잘 살 수 있구나.

세종 27년인 1445년 권제, 정인지 등이 <용비어천가>를 지어 올리면서​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뿌리 깊은 나무는 가지가 반드시 무성하고 뿌리가 깊으면 더욱 오래 살 것이옵니다."​

라는 글을 지어 올렸는데, 뿌리를 잘 지켜주고 관리해야 나무가 오래 잘 산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최근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올바른지 아닌지 하는 생각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더욱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아야 한다는 명제 아래 각종 제도와 장치가 마련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지만, 이것이 자칫 우리 사회의 뿌리인 자유시장경제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유시장경제라는 제도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틀을 통해 개인이나 나라가 부를 키우고 이를 축적해 왔는데, 자유시장 경제의 문제점인 부의 편중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분배를 강조하다 보니 국가가 점점 더 많은 부분을 관리, 통제하게 되고 그것이 경제의 흐름을 숨 막히게 해서 경제의 자체 성장을 가로막지 않겠느냐, 다시 말하면 시장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고민과 걱정이 많아진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우리 경제의 뿌리이자 줄기였다고 생각해왔기에 그 뿌리가 훼손되지 않아야 경제라는 나무가 계속 잘 자라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우리는 한다. 모두가 잘사는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정책은 그것만이 목표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펴는 정책이, 자칫 잘 자라는 소나무 뿌리를 흙으로 마구 덮어주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 경제의 뿌리에 두꺼운 흙을 덮어주는 작용을 해서 경제가 성장을 멈추거나 정체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인 것이다. 그까짓 흙 조금 덮어준다고 나무가 죽을 것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튼튼하고 오래된 소나무들이 말라 죽음에야…….​

 

경제는 노동의 값어치만이 아니라 창의와 노력의 값어치이기도 하다. 노동의 값어치만을 우선하다 보면 경제가 더 커질 수가 없다. 실개천 변의 나무 몇 그루가 죽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겠지만 그런 걱정의 목소리도 있음을 알고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공정한 규칙과 기회 속에서 각각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서 활력이 생기고, 활력이란 비료를 먹으며 경제가 크는 것이라면 우리는 경제라는 생명체를 계속 잘 크게 하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