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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제73주기 추모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은 조국의 광복과 민족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제73주기 추모식’을 오는 19일(일) 낮 11시, 몽양 여운형 선생 묘소(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연다.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강창일)에서 주관하는 이 날 추모식에는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기념사업회원와 유족 등 4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추모식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예년보다 규모를 축소한 가운데, 선생의 약력 소개, 식사 및 추모사, 추모공연, 헌화ㆍ분향 순으로 진행된다.

 

 

 

      몽양 여운형 선생 주요 공적

 

○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1885.4.24~1947.7.19)은 경기도 양평(楊平)에서 출생하여 배재학당, 흥화학교 등에서 신학문을 익혔으며, 1908년에는 기호학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고, 1910년 강릉의 초당의숙에서 민족교육에 매진하였다.

 

○ 1차 세계대전 후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하였으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독립문제를 크게 부각하기 위해 장덕수를 일본에 파견하여 2․8독립선언을 촉발케 하였다.

 

○ 3․1운동 직후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외무부 차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지냈으며, 11월에는 일본의 심장부인 동경을 방문하여 일본 고위 관료들을 상대로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하여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 1920년 조국의 독립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써 공산당의 원조를 기대하여 고려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10월에는 상해로 돌아와 독립운동의 장기적 구도아래 백범 김구 등과 함께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조직하여 군사적 투쟁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 독립운동계에서 임시정부의 재편문제가 부상하자, 안창호와 함께 국민대표회의 개최를 주도하였고, 1923년 초부터 국민대표회의가 열릴 때 안창호 등과 함께 ‘임시정부 개조’를 주장하였다.

 

○ 1933년에는 조선중앙일보사(朝鮮中央日報社) 사장에 취임하여 언론을 통한 항일투쟁을 펼쳤으나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대회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사장직에서 물러났으며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었다.

 

○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고 1944년 8월 비밀리에 건국동맹을 결성하여 조국광복을 준비하였고, 광복 뒤에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으나 실패하고 극좌ㆍ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 1947년 극우파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200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고, 2008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