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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기

온몸을 던져 일본인을 구한 이수현 씨 무덤에 뫼절한 이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소장 등 무덤과 기념비에 가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한국인 유학생으로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新大久保駅)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고귀한 목숨을 잃은 청년 이수현 씨. 그가 잠들어 있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부산 시립 영락공원을 찾은 이들이 있다. 지난 8월 4일(화),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소장  가토 다케시 씨와 동 센터 부장 다카하시 사치 씨, 대리 김혜연 씨  그리고 부산한일문화교류협회 하숙경 씨가 그들이다. 이날 이수현 씨의 무덤을 찾을 때이수현 씨의 어머니와 동생이 함께 했다.

 

 

 

 

이날 이들은 이수현 씨 무덤을 찾기 전에  이수현씨 모교인 내성고등학교 근처에 세워진 기념비에 헌화했다. 원래 이수현 씨 무덤 참배는 지난해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주최로 실시한 <이수현씨기념한국청소년방일연수> 를 마친 단원들과 올 2월에 뫼절(참배)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정이 취소되는 바람에 이번에 센터 소장 등 직원들 끼리 조촐하게 무덤을 찾은 것이다.

 

이수현(李秀賢)이라는 이름 석자의 청년을 기자가 유달리 잊지 못하는 것은 그가 숨져갔던 그 공간과 그 시간을 공유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성 보다는 그날의 사건으로 막 피기 시작한 그의 젊음, 그의 청춘, 그의 푸른꿈이 접혔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무역학과에 다니다가 휴학한 뒤 1999년 일본 도쿄 아카몽카이 일본어학교에 입학하여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었을 청년 이수현 씨는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그가 숨진 신오오쿠보 역을 이용하던 기자는 날마다 무력감에 시달려야했다. 무엇으로 그의 의로운 넋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를 위로할 언어가 생각나지 않아  몇대의 열차를 놓친 채 멍하니 선로를 응시하며 흘리던 그 뜨거운 눈물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런 눈물은 신오쿠보 역을 이용하던 한국인이면 누구나 흘렸을 것이다.

 

 

 

어느새 그가 떠난지 20년이 되었다. 이수현 씨는 비록 이 땅에 없지만 그의 푸른꿈을 이어가는 노력은 지속되어 왔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에서는 "이수현씨 기념 한국청소년 방일 연수" 단원을 모집하여 2002년부터 해마다 한국의 청소년들을 일본에 초대하고 있다. <이수현씨기념한국청소년방일연수>는 지난해(2019) 19회째를 맞았고 올해 20회(연수일정 2021년 1월 27일~ 2월 10일) 째도 연수생을 모집 중이다.(10월 5일까지, 문의 02-397-2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