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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똑 떨어지게 잘 추는 애가 있었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8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 김숙자 명인은 타계하기 전, 수제자인 최윤희에게 이수증을 주고 그 전승체계를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 이수증(履修證)이란 무형문화재 제도에서 전수생 과정을 마쳤다고 하는 하나의 증명서인데, 수여 제도는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다가 보유자에게 일임하기도 하고, 현재는 다시 문화재청이 시행하고 있다는 이야기, 최윤희는 선생을 잃고, 평소 동경해 오던 인도로 가서 주위와는 소식을 끊고 잠적하였으나 춤꾼이 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법, 특히 <도살풀이춤>을 좋아했는데, 이 춤은 긴 수건을 허공에 뿌리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가는 춤사위가 일품이라는 이야기 등을 지난주에 하였다.

 

그래서일까, 최윤희는 가는 곳마다 <도살풀이춤>을 추었다. 미국공연을 마친 후에는“ 순백색으로 처절하게 펼쳐지는 살풀이, 그 예술성으로 청중들을 무아의 경지에 빠지게 하다”라는 논평이 신문이나 잡지를 도배하듯 했다.

 

 

그렇다. 그가 펼치는 도살풀이 춤사위는 비교적 선이 크고 굵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는 천근(千斤), 만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춤이며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이 땅으로부터 하늘에 닿아 하늘(天)+땅(地)+사람(人)의 삼위(三位)가 하나임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애절함과 장엄함이 보여 김숙자 명무의 생전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원로 국악인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이매방과 박동진, 박귀희 등은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최윤희가 광주에서 무용학원을 운영하며 김숙자 스승을 광주로 초청하여 공연 연습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마침 선생과 함께 그곳에 왔던 박귀희 명창이 “숙자의 제자 중, 저렇게 똑 떨어지게 춤을 잘 추는 애가 있었나?” 하며 놀랬다고 하는 솔직 담백한 표현이 재미있다. 어려운 시절, 선생과 함께 지내면서 힘든 과정을 이겨냈기에 최윤희의 춤사위가 김숙자의 전성기 시절 춤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최윤희는 자신에게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음가짐 바로 하고 마음자리 순수해야 춤이 나온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으니 나는 오직 춤만을 생각해야 한다.”, “춤을 추기 전,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천 번, 만 번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그 자리에 춤만 담아라. 춤은 인생살이다. 춤추는 몸짓 하나하나에 삶의 애환이 묻어나고, 차마 하지 못한 말은 춤사위가 되어 허공으로 풀려난다.” 하나같이 새길만한 명언들이다.

 

 

그래서 그럴까? 최윤희는 평소 말이 없다. 말 대신, 춤으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춤사위가 되어 허공으로 풀려난다는 말이 꼭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부에서는 최윤희를 일러 도도하거나 거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확신에 찬 <도살풀이춤>의 포교사로서의 모습일 뿐이다. 그의 참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두고 천상의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스스로 기억에 남기고 있는 공연은 나라 안팎을 가릴 것 없이, 하나둘이 아니다. 특히 뉴욕에서 발생한 2001년 911테러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마련한 세계평화기원 법회 공연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을 위해 <도살풀이춤>으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어서 매우 뜻깊고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이때 세계최강의 해병대를 돌며 우리의 전통춤을 알렸다는 점에서 최윤희의 <도살풀이춤>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춤으로 더더욱 유명해졌다. “가슴을 울린 감격스러운 공연”으로 최윤희는 미국 대통령위원회가 스포츠나 문화예술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행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을 받기도 했다.

 

 

또 하나, 그가 잊지 못하고 있는 공연은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공연이다.

공연 자체도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특히 대학의 학생들이나 지역민들이 한국의 전통춤을 직접 지도해 달라는 요청에 못 이겨 즉석 강습회를 여러 날에 걸쳐 실시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춤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에겐 몸과 마음을 다해 전수해 주려는 그의 열정에 모두가 감탄한다.

 

최윤희는 지금도 자신의 고향이자, 한성준이 태어난 충남 홍성을 오가며 <홍성군립 무용단> 단원들과 지역민들에게 25년 넘게 춤을 지도하고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 땅, 홍성을 한국 춤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이 있어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그가 갈 길은 오직 한 길, 바로 스승 김숙자 명무로부터 이어받은 <도살풀이춤>의 원형을 지켜나가면서, 이것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그 길은 또한 최윤희 자신이 스스로 김숙자 명무의 수제자로서 부끄러움 없이 사는 길이 될 것이다. 그에게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