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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무더위엔 폭포만 한 것이 없기에

'일만 척 폭포 소동', 정선의 ‘박연폭포’로 끝나는구나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6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거대한 강이나 망망대해의 엄청난 물도 하늘에서 내리는 작은 물방울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지난 장마 기간에 벌어진 '일만 척 폭포 소동'도 발단은 집 근처의 폭포줄기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폭포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원래 진관동인데 웬 폭포동이람? 무슨 이런 이름이 끼어들어 있지? 하면서 이사 온 것이 지난 4월 초. 이달 초 사상 가장 긴 장마에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날 마침내 그 비밀을 풀었다. 우리 동네의 폭포동(瀑布洞)이란 이름은 행정구역상의 동(洞)이 아니고 폭포가 흐르는 골짜기라는 뜻임을. ​

 

아무튼, 북한산 향로봉에서 구파발쪽으로 내려 이어지는 바위 사이가 조금 파여있다 싶더니 그 사이로 허연 폭포 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그것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았다. 그 폭포 물줄기는 왼쪽으로 해서 골을 타고 내려오는데,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다가 비가 많이 오면 이런 폭포가 생긴단다. 너무 신이 나서 사진을 찍어 카톡을 통해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며 갑자기 폭포가 생겼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랬더니

 

 

속초에 사는 한 교수님이 이런 사진을 보내오는 것이었다. 앗! 우리나라에도 이런 폭포가?

 

 

바로 설악산 외설악에 있는 토왕성폭포였다. 비가 잘 오지 않는 평소에는 물줄기가 많이 보이지 않지만, 비가 많이 오면 이렇게 아득히 높은 산꼭대기, 곧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내리꽂듯이 내려오는 것이다. 촬영한 날짜는 우리 집 옆에 폭포가 생긴 것과 같은 날인 8월 7일. 가끔은 화보로만 보던 토왕성폭포의 진면목이 그대로 잡히고 있다. 엄청 높은 폭포인데 이 정도로 시원한 줄기가 잡히려면 엄청 멀리서 보여아야 한다. 교수님 서재에서 보이는 대로 잡은 것이라 하니 이분의 서재는 전망이 끝내준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사진만 올린 것이 아니라 폭포에 관한 멋진 표현도 알려준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 701~762)이 쓴 '여산폭포를 보다(​望廬山瀑布)'라는 시인데 여기에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폭포가 3천 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日照香爐生紫煙   향로봉에 햇빛 비쳐 안개 어리고

遙看瀑布掛前川   멀리 보이는 폭포는 강물을 매단 듯.

飛流直下三千尺   물줄기 내리쏟아 길이 삼천 자

疑是銀河落九天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 것 같구나

 

​이 시의 구절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 곧 예로부터 아주 장엄한 기세로 쏟아져 내리는 큰 폭포를 표현하는 명구로 중국이나 우리나라, 일본에서 애용되었는데, 토왕성폭포가 바로 그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어차피 가지 못하는 여산폭포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폭포들이 높고 웅장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중국 강서성, 양자강 근처에 있는 여산(廬山)은 경관이 매우 수려한 곳으로, 중국의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왔는데 이 시는 그곳에 있는 여산폭포(廬山瀑布)를 읊은 것이다. 폭포의 길이는 약 170m에 이르므로 그 웅장함은 당시 사람들을 빨려들어 가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 교수님은 자신이 알기로는 여산폭포는 높이가 155미터여서 500척 정도인데 이를 삼천 척이라고 했으니 엄청 과장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면 우리의 토왕성폭포는 높이가 320미터이니 약 6천 척에 해당한다며, 우리도 이 토왕성폭포를 중국식으로 표현한다면 최소한 2배까지 튀기지 않아도 1만 척은 되니, 앞으로 토왕성폭포를 묘사할 때는 비류직하일만척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말하신다. 과연 한문에 밝은 분답다. 그런데 이 교수님의 이름 한가운데에 만이란 글자가 들어가니 본인으로서는 기왕이면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일만척 토왕성폭포라고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에 토왕성폭포는 몇 년 전에 전망대를 만들고 거기서 보게 하는데, 교수님의 서재에서 본 폭포가 여기서는 더 높고 더 길게 구절양장으로 보이니 과연 명품 폭포임에는 틀림이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여산폭포에 대해서 알아보니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다. 우리가 중국인들이 그린 산수화를 보면 산이 높고 계곡이 깊고 강이 긴 형태로 나오는데, 이 여산이 그 중국산수화의 시발점이란다.

 

<여사잠도(女史箴圖)> 화첩으로 유명한 중국 동진(東晉 317~419)시대의 화가 고개지(顧愷之)가 이곳 여산에서 <여산도(廬山圖)>, <설제망오로봉(雪霽望五老峰)> 등 큰 그림을 그렸고(아쉽게도 그 그림은 전하지 않는단다), 같은 시대를 종병(宗炳 375~443)이라는 스님이 ‘화산수서(畵山水敍)’라는 글을 써서 산수를 그림에 어떻게 그릴지를 밝힘으로써 중국의 회화에 산수화라는 장르가 안착되었다는 것인데 이후에 수 많은화가들이가 여산의 멋진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고 한다. 여산을 그린 수많은 폭포 그림 가운데 나중에 청나라 때 고기패(高其佩1662~1734)란 화가의 <여산폭포도>가 유명해서. 왼편에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이 이백의 시에 묘사된 것과 가장 가까워 보일 정도로 시원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정선(鄭敾, 1676-1759) 이 고기패와 비슷한 시기에 상상으로든, 누구 것을 보았든, 여산폭포도를 남긴 것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전해온다.

 

 

그런데 이 여산에는 남당(南唐 937∼975) 시기에 오로봉(五老峰) 남쪽 기슭에 나라에서 수도가 아닌 이곳에 여산국학(廬山国学)이란 대학을 열어 운영했는데, 이윽고 송나라 때 주희가 이곳을 관할하는 성자현의 현장으로 부임하여서 이곳을 서원으로 중건하여 백록동서원이라고 하고 이곳에서 학문을 가르치며 서원의 목표, 서원의 규정을 정해 실시하면서 중앙정부에서 사액을 받고 서적을 받음으로써 중국 서원문화의 시원이 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엉주 풍기의 백운동 서원이 주세붕에 의해 이러한 사례를 참고로 해서 만들어졌고 후에 퇴계에 의해 중앙정부의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이 되면서 나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게 된 것도 다 이곳의 사례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긴 장마가 끝나고 다시 무더위가 몰려오는데 태양이 그동안 못 보냈던 빛과 열을 한꺼번에 보내려는 듯 전국이 가마솥에 들어간 형상이다. 왜 하필 이때 코로나는 다시 극성인가? 이때 우리도 폭포를 찾아서 더위를 새삼 식히면 좋을 것이련만 꼼짝도 하지 말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중국 산수화에 대한 이론을 세운 종병이란 스님은 젊은 시절 돌아다녔던 산수를 노년에 그려 벽에 걸어 놓고 ‘와유(臥遊)’, 곧 누워서 유람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원한 폭포그림을 걸어놓고 그것을 감상하던지, 아니면 요즘엔 인터넷으로나 영상으로나 폭포를 보면서,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더위를 식힐 일이다.

 

중국에서 산수화가 처음 확립된 동진시대라는 것은 정치ㆍ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여서 현실을 탈피하고자 하는 열망이 지식계층 사이에 만연하였고,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대변되는 청담(淸淡) 사상이 유행한 것도 이때며, 산수화는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등장한 것이라는데, 근래 우리나라에 산속에 들어가 사는 이른바 '자연인'에 관한 방송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시대야말로 속세를 떠나서 진정한 산수화 속에 빠져들고 싶은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 때가 때인 만큼 그저 집에 꼭 박혀서 종병 스님처럼 ‘와유(臥遊)’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 아니냐는 자조가 나오고 만다.

 

그런데 사실 폭포 그림으로 시원하기로는 정선의 《박연폭포도》 만한 것이 없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가 아닌가? 내가 공연히 자랑한다고 꺼낸 우리 집 옆의 폭포는 토왕성폭포, 여산의 폭포에 눌려 쨉도 안 되는 것이 나서서 깝짝거린 것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벌인 '일만 척 폭포 소동'은 정선의 이 폭포그림 하나로 끝나는구나

 

 

아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모든 인류의 발목이 잡히고 생각이 갇히게 되었을까? 올해 초부터 시작된 이 고난의 행군은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새삼스럽지만 그런 생각 속에 우리가 살아온 생활방식에 대한 반성을 다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