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5 (토)

  • 구름많음동두천 3.8℃
  • 구름많음강릉 6.7℃
  • 구름많음서울 5.0℃
  • 구름많음대전 5.1℃
  • 맑음대구 6.7℃
  • 맑음울산 7.1℃
  • 맑음광주 8.2℃
  • 맑음부산 8.4℃
  • 맑음고창 6.8℃
  • 구름많음제주 9.2℃
  • 구름많음강화 3.8℃
  • 흐림보은 3.9℃
  • 흐림금산 6.0℃
  • 맑음강진군 8.3℃
  • 구름조금경주시 6.6℃
  • 맑음거제 5.5℃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재무부 30년 공직생활의 재미난 이야기

장일석 《효사재 가는 길》 서평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4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새금융사회연구소’ 장일석 이사장이 《효사재 가는 길》이라는 자서전적 책을 냈습니다. ‘자서전적’이라고 한 것은 본인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직접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장 이사장은 동문회지에 실을 원고 때문에 찾아온 대학 후배에게 틈틈이 써놓은 원고를 보여준 뒤 시간 나는 대로 후배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 결과물이 《효사재 가는 길》로 출판된 것입니다. 효사재는 장 이사장이 태어난 생가의 이름입니다. 인생 마지막은 효사재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고 싶어 제목을 그렇게 했나요? 서울법대 최고지도자 과정(ALP) 동문인 장 이사장이 저에게 책을 보내왔을 때는 그저 의무감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와! 책 재미있데요. 《효사재 가는 길》은 재무부에서 30년 공직생활을 하고 정년퇴임한 공돌이의 삶이 무슨 재미가 있겠냐는 제 편견을 싹 씻어준 책입니다.

 

 

“한양을 오르내리는 손길 가운데 굶은 사람들은 이 집을 찾아왔어. 그뿐만 아니라 먼길을 오가는 손길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한 끼 청할 때가 다반사였지. 그 집 문턱을 넘는 데에는 어떤 조건도 없었어. 배고픔이 유일한 입장권이었던 거지.”

 

구례 ‘운조루 류이주 종가’처럼 나눔을 실천한 명문종가

 

​자서전이 시작하는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해방동이로 태어난 장 이사장은 누구든 와서 밥을 청하는 이를 거절하지 않는 할머니의 따뜻한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밥 먹을 때에도 주인, 머슴 구분 없이 같은 상에 다 같이 먹었다는군요. 구례 운조루 류이주 종가의 경우 가난한 이웃들이 눈치 보지 않고 쌀을 가져가도록 쌀뒤주를 주인과 마주치지 않는 사랑채 헛간에 두고, 뒤주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든 쌀을 퍼갈 수 있음)’라고 써놓았다고 하지요?

 

장 이사장님 댁도 그런 나눔을 실천한 명가(名家)였군요. 그런 나눔의 명가였기에 6·25 때 좌익과 우익이 밤과 낮으로 번갈아 효사재에 주둔하였어도 큰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밤에는 빨치산들이 내려와 효사재 마당에 밥솥을 다섯 개가량 걸어놓고 밥을 짓는데, 모두 자기네가 가져온 것을 사용하고 효사재 것이라고는 우물물만 썼다는 것입니다. 철수할 때에는 청소도 깨끗이 하고요. 그리고 낮에는 경찰이 와서 주둔하는데, 경찰은 밤에 빨치산이 다녀갔다는 것을 눈치채고도 굳이 캐묻지 않았답니다. 모두 나눔의 명가 효사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를 한 것이지요.

 

고등학교 시절 만든 써클, 전라도 일대 평정

 

​자서전에는 ‘코만치’가 나옵니다. ‘코만치’라면 북미 인디언의 한 부족 이름 아닙니까? 자서전에 왠 코만치? ‘코만치’는 고등학교 시절 태권도 4단이던 장 이사장이 만든 동아리(서클) 이름입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자꾸 만나다가 당시 외국영화 본 게 생각이 나서 ‘코만치’라고 이름 지었다는데, 코만치는 전라도 일대의 서클들을 평정하다시피 했답니다.

 

그래서 절끼리 영역 문제로 패싸움이 날 때는 한쪽 절에서 코만치 대원들을 초대하기도 했다네요. 당시 장 이사장의 별명은 ‘검은 고무신’이었습니다. 늘 검은 고무신을 신고 다녀, 주먹 쓰는 애들 세계에서는 ‘검은 고무신’이라고 하면 알아주었답니다. 하하! 어쩐지 장이사장님이 70 중반의 나이에도 몸이 단단하다고 느꼈는데, 학교 다닐 때 주먹깨나 쓰셨군요.

 

​이렇게 학교 다닐 때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던 장 이사장이 180도 변신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자기와 대조적으로 모범생이었던 셋째 형이 서울대에 진학한 후 사법고시 준비를 위해 여름방학 때 팔공암에 들어갔는데, 그때 장 이사장도 따라갔답니다. 그런데 형이 갑자기 실신하여 형을 둘러업고 산에서 내려와 정신없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달렸답니다. 그렇지만 형은 업고 오는 동안에 이미 숨을 멈췄습니다.

 

이때 장 이사장은 통곡하는 어머님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면서 내가 더는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현’이라는 이름도 ‘일석’으로 바꾸고, 심기일전 공부하여 성대 법대에 들어갔습니다. 법대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사법시험 준비도 하였는데, 장이사장이 코만치 애들하고 연락을 끊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니까, 이들이 도서관까지 찾아와서 무슨 짓 하는 거냐며 책에 물을 붓기도 하였다네요. 하하! 조직원이 조직에서 나온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장 이사장은 사법시험 공부를 하다 경찰간부후보생 시험도 보아 합격했지만, 후보생이 된 지 8개월쯤 지났을 때 사법시험 1차 합격 통지를 받고는 사법시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경찰대학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무렵 중앙정보부 시험에도 합격했지만, 신원조회에서 큰형의 장인이 조총련계 실업인이라는 이유로 불합격 처리가 되었지요. 결국, 장 이사장은 사법시험에 대한 꿈을 접고 6급 재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평생 재무부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재무부는 축구로 유명한데, 그러다 보니 축구시합을 하다가 과열이 되어 패싸움이 난 적도 있답니다. 그때 장 이사장은 이재국 소속으로 시합에 나갔다가 패싸움이 벌어지자 ‘코만치’ 대장으로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옛날 쓰던 별명 ‘검은 고무신’의 명성이 재무부에 쫘악~ 퍼졌다는군요.

 

 

재무부 근무 시절 사과 상자 받았다가 어머니께 호통 들어

 

재무부에 근무하다 보면 선물도 많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이재국 근무 초창기에 사과 상자를 선물 받았는데, 당장 돌려주라는 어머니의 호통이 공무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차 한 잔도 얻어 마시지 않는 생활신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으로 오는 뇌물성 물건들은 철저하게 등기로 돌려보내고 그 기록을 반드시 보관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합니다.

 

한번은 저축은행 서울지부장들이 불러 저녁을 먹고 고스톱을 치는데 협회장이 나중에 가져가라며 007 가방을 옆에 놓더랍니다. 그래서 이게 뭐냐며 그 자리에서 열었더니 가방 안에 돈이 꽉 채워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장이사장은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나왔는데, 사실 협회장은 장이사장에게 미끼를 던진 것입니다. 당시 50개 정도 저축은행이 인가 취소되면서 자금 회수 업무를 장 이사장이 맡았는데 평소에 공정하게 일 처리 하는 장 이사장을 쫓아내려고 미끼를 던진 것이지요. 그 협회장은 아마 “지가 이 정도 돈이면 안 넘어가겠어?”라고 했겠지요? 녀석들! 사람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군!

 

엠바고 깬 기자 받아버려

 

이재국에서 계속 이런 업무를 하는 것이 정도를 걷는 장 이사장에겐 꽤 스트레스였습니다. 하여 장 이사장은 다음에 대변인실로 옮겼는데, 접대받는 처지에서 접대하는 처지가 되니까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더랍니다. 대변인실에서 근무하면서도 장 이사장의 강직함이 드러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대기업 세금 감면 조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전에 새어나가면 큰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엠바고(한시적 보도금지)를 걸어놓았답니다.

 

그런데 한 기자가 엠바고를 깨고 기사를 쓴 것입니다. 단독 특종 욕심을 이길 수 없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화가 난 장 이사장이 기자실에 들어오는 그 기자를 그대로 받아버렸다고 하더군요. 기자를 건드려놨으니 재무부가 발칵 뒤집혔는데, 기자들에게 빌던 장ㆍ차관도 뒤로는 장 이사장에게 잘했다고 했다는군요. 기자들도 그런 장 이사장에 놀라 그 뒤로는 조심하였겠지요?

 

​장 이사장은 재무부 근무 기간에 감사관실에 15년 동안 근무하며 제일 오래 있었습니다. 장 이사장이 감사관실에 와서 보니,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어서 비효율적이더랍니다. 그래서 《한국의 감독제도의 방향》이라는 책을 쓰면서 이를 지적했더니, 그 뒤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은 금융감독원으로 통합되었다는군요. 그리고 어머님의 호통을 가슴 깊이 새긴 장 이사장이니, 장 이사장은 감사를 나가더라도 일절 대접을 받지 않았습니다.

 

투서에 검찰 조사받았지만, 혐의 벗어

 

그런데 한 번은 투서가 들어와 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답니다. 은행 임원이 대출받으려는 사람에게 먼저 감사 나온 사람에게 돈을 줘야 해결이 된다면서 돈을 받은 것인데, 대출이 잘 안 되니까 대출받으려던 사람이 투서한 것이지요. 그런데 장 이사장은 자신이 계산한 식당 영수증을 제시하여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쪽에서 제시한 영수증과 비교를 해보니 같은 식당에서 따로 식사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지요. 그러니까 돈을 감사관에게 주겠다고 한 은행 임원이 장 이사장 식사하는 식당에는 들어가 따로 식사하고는 돈을 전달했다고 거짓말한 거네요. 돈을 준 사람은 이걸 믿고 투서한 것이구요. 장 이사장은 이렇게 모범적인 감사관을 하여 대한민국 처음으로 ‘한국의 감사인’이라는 상도 받았습니다.

 

뭐~ 책에 나오는 예화 다 들라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이만 줄이렵니다. 마지막으로 장 이사장이 어떻게 하여 퇴직 뒤 ‘새금융사회연구소’를 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렵니다.

 

장 이사장 마지막 근무처는 금융정보분석원입니다. 정보분석원에서는 금융기관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혐의 거래 건을 심사 분석해서 각 수사기관으로 보내는 일을 주로 합니다. 그런데 장 이사장이 공직생활을 마감할 무렵인 2004년도에 외환은행의 미국 내 2개 지점이 자금세탁법 위반으로 인가 취소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국내은행들은 자금세탁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다가, 미 사정당국에 걸려든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되니 외환은행이 다른 나라 은행들로부터 자금 조달을 할 때 금리가 올라가는 불이익을 당하고, 이게 곧 외환은행이 문을 닫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답니다. 그때 장 이사장은 자금세탁법이라는 것이 정말 무서운 조치라는 것을 실감하고, 이를 국내에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정년퇴임 뒤 ‘새금융사회연구소’ 열고 무상으로 자금세탁법 교육

 

그렇기에 정년퇴임 뒤 곧바로 《자금세탁 방지제도의 이해》라는 책을 썼고,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사비를 털어 ‘새금융사회연구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금융기관 전문 인력들을 뽑아서 무상으로 자금세탁법에 대해 교육을 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자금세탁방지 전문가 교육기관인 ACAMS와 업무협약을 맺고 ‘K캄스’라는 자격증도 발급한다고 합니다. 장 이사장의 이러한 노력으로 우리나라도 2009년 국제자금세탁 방지기구의 정회원이 되었고, 의장국까지 맡기도 했다고 합니다. 장 이사장님이 퇴임 뒤 제2의 인생도 정말 사회를 위해 보람있게 사시는군요.

 

 

자서전 제목이 《효사재 가는 길》이지요? 이에는 올바른 인재를 키우고 싶은 장 이사장의 꿈도 들어가 있습니다. ‘효사재’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충청, 전라, 경상도에서 중2 정도의 학생들을 선발해서 인재로 키우고 싶은 꿈이지요. 장 이사장은 효사재를 일본의 정경숙 같이 키우고 싶은 생각에 일본의 정경숙에도 갔다 왔다고 합니다. 자비로 ‘새금융사회연구소’를 운영하는 것만 하여도 대단한데, 거기에 또 장학재단이라니요!!! 정말 존경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군요. 《효사재 가는 길》! 앞으로 장이사장님이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 그 원대한 꿈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