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8 (월)

  • 맑음동두천 23.6℃
  • 구름조금강릉 22.7℃
  • 맑음서울 24.8℃
  • 구름조금대전 24.3℃
  • 구름조금대구 23.1℃
  • 구름조금울산 20.5℃
  • 맑음광주 23.9℃
  • 맑음부산 22.1℃
  • 맑음고창 21.9℃
  • 구름조금제주 22.3℃
  • 맑음강화 22.7℃
  • 구름조금보은 22.6℃
  • 구름조금금산 23.7℃
  • 맑음강진군 23.7℃
  • 구름조금경주시 21.3℃
  • 구름조금거제 21.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기녀 진향(眞香), 《선가 하규일선생 약전》 펴내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8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일제강점기에서 전통가곡의 명맥을 이어 온 금하(琴下) 하규일(河圭一, 1867~1937)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최수보와 박효관에게 배웠고, 한일합방이 되자 관직을 버리고 <조선정악전습소>의 학감, 대정권번과 조선권번의 사범, 특히 1926년부터<이왕직아악부>에서 가곡, 가사, 시조를 가르쳤는데, 대표적인 제자들이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 등이며 이들은 가곡, 가사, 시조의 악보를 제작해서 학생과 일반인 전수에 앞장서 왔다는 이야기, 특히 조선권번에서 여창가곡을 배운 기녀 제자, 김진향(眞香)은 1993년도에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내서 악계에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10년대 이후, 하규일은 권번에서 기녀들에게 가곡을 지도해 왔다. 국권을 잃은 후부터는 관기제도가 폐지되었고, 일반 시중에서는 기생들을 모아 조합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평양의 기성권번이나, 서울의 광교조합(廣橋組合) 등은 소리 잘하고, 춤 잘 추는 유명한 기생들을 많이 배출해 낸 대표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광교조합은 뒤에 한성권번(漢城券番)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곳 출신 가운데는 장계춘에게서 배운 최정희(崔貞姬)가 해방 후까지 활동하다가 1970년대 중반 타계하였다. 한편, 조선권번 출신으로는 하순일, 하규일에게 배운 지금정(池錦貞)이 활동적이었으나, 그 역시 70년대 중반, 최정희와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떴다.

 

기녀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10대 전후의 어린 여자들은 글짓기를 비롯하여, 악기, 서예, 노래와 춤 등, 다양한 분야의 예능과 예절 등을 배워야 했다. 노래 가운데서는 느린 가곡(歌曲)을 배우게 되어 있었고, 춤은 정재(呈才), 곧 점잖은 궁중무용이었다. 그러나 점점 권번이 많아지면서 초창기와는 달리, 시조와 가사를 비롯하여, 경기잡가나 서도잡가, 일반 민요 등도 배웠다고 한다.

 

어느 권번에서 누구에게 배웠는가에 따라 가곡의 음악적 분위기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고, 이에 따라 류파(流派)라는 것이 형성되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명인의 개성(個性)을 드러내는 중요한 계보가 되는 것이다.

 

 

서울대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민정은 한성권번의 최정희와 조선권번 지금정의 여창가곡을 견줘 그 차이점을 밝혀주었는데, 같은 여창가곡의 곡조라 해도 스승에 따라, 또는 부르는 이의 개성에 따라, 그 차이는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최정희의 여창가곡은 평민적인 소탈함과 소박함, 간간히 더해지는 흥취, 사치스럽지 않은 화려함 등이 내재하고 있지만, 지금정의 여창가곡은 상대적으로 깔끔하고 치밀한 짜임을 보이는 가운데 귀족적인 세련됨과 단아함, 은근함 등의 미감(美感)이 내재하고 있다.”

 

한편, 서울 조선권번에서 하규일에게 여창 가곡을 배운 바 있는 진향이라는 기녀는 1993년,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이라는 악보 책을 ‘예음’에서 펴내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가곡의 예능보유자, 김경배(金景培)의 서평에서 하규일과 김진향과의 음악적 관계나 악보집이 지닌 가치 등에 관한 정보를 엿볼 수 있다.

 

 

“잊혀가는 하규일선생의 행적을 돌이켜보고 가단(歌壇)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일이다. 방대한 자료들을 발굴, 정리하여 역저로 엮기까지 각고의 노력이 있었음을 한눈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집된 악보만 하여도 그 희귀성이 돋보이려니와 하마터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을 생전의 모습들을 펼쳐 보인 편자의 열의에 찬사를 보낸다.”

 

여기서 60여 년 전, 스승에게 배운 노래를 기억하며 악보책을 펴낸 진향은 어떤 인물인지, 국악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집안이 망하게 되어 조선권번(券番)에 들어가 기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권번에서 그녀에게 여창 가곡(歌曲)을 가르친 스승이, 바로 금하 하규일 사범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스승 하규일이 지도해 준 여창 가곡의 실체를 이야기와 악보로 남긴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가곡은 서양음악 어법에 의해 만들어진 ‘봉선화’나, ‘고향’, ‘일송정’과 신(新)가곡이 아니라 전통가곡이다. 신가곡은 남창가곡, 또는 여창가곡이란 명칭이 붙지 않는다. 전통가곡이란 조선 전기부터 전해오는 노래로 초장, 중장, 종장으로 구분되는 시조시(時調詩)를 5장 형식에 얹어서 반주악기들과 함께 느리고 길게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참고로 이 노래는 창법이나 발음법, 표현법 등이 일반의 통속적인 노래와는 달리 비교적 점잖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한 기녀들이 손님들을 대할 때, 교양의 기본을 갖출 수 있도록 지도해 온 노래라 하겠다. (다음 주에 계속)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