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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술잔에 담긴 쓸모없는 생각들

좋은 술잔이란 야광배, 시굉배, 약옥선...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6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여자들처럼 말 곧 언어를 안주로 해서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남자’라는 종족들은 자나 깨나 술을 마시기만 하면서 술잔에 대해서는 그리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이 술잔에 대해서도 애착이 있고 집착이 많았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기왕에 먹는 술, 뭔가 색다르고 정취가 있고 멋있게 먹느냐를 궁리하다 보니, 술잔에 멋이 있어야 한다는 데로 생각이 미친 것이리라. ​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한학자인 아오키 마사루(靑木正兒, 1887~1964)는 중국의 문화를 연구해서 펴낸 책 《중화명물고(中華名物考)》의 ‘주상취담(酒觴趣談)’이란 항목에서 술잔의 등급을 매겨 발표한다. ​

 

으뜸으로 치는 것은 ‘야광배(夜光杯)’다. ​

 

전설에 따르면 주(周)나라 5대 목왕(穆王)이 순시하기 위해 서역에 왔을 때 서역 사람들은 백옥의 정(百玉之精)으로 만든 술잔을 그에게 바쳤다. 달은 밝고 바람이 맑은 밤에 술이 잔 속으로 들어가자 술잔은 선명한 광채를 발하면서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주나라 목왕은 크게 기뻐하여 이를 나라의 보배로 여기고 “야광상만배(夜光常滿杯; 밤에 광채가 항상 잔에 가득하다)”라고 크게 칭찬을 하였다. 이로부터 야광배는 천하에 이름을 날렸고 지금까지 명성이 이어져 오는 것이다.

 

 

1989년 5월 필자는 동국대학교 조사단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중국 실크로드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감숙성 주천(酒泉)이라는 곳을 찾았는데, 이곳이 이 일대에서 나는 옥으로 만드는 야광배의 주산지이다. 거기서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야광배 두 개를 사서 집에서 가끔 술을 담아 마셨는데 불빛에 보면 은은하게 비치는 것이 술맛을 더욱 높여주었다.

 

 

 

그다음으로 꼽은 것이 ‘시굉여가배(兕觥與可杯)’다.

 

시굉(兕觥)은 만수무강을 빌 때 쓰는 술잔이다.

《시경(詩經)》 빈풍(豳風) 편을 보면

十月滌場(십월척장) 시월에는 타작마당 치우고

朋酒斯饗(붕주사향) 두어 통 술을 마련해 마을사람 대접하네.

曰殺羔羊(왈살고양) 염소와 양을 잡아 어른들 대접하지

躋彼公堂(제피공당) 공당에 올라앉아

稱彼兕觥 (칭피시굉) 물소 뿔잔을 들어 술을 권한다네

萬壽無疆 (만수무강)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이라는 시가 있는데, 섬서성 서북, 옛날 주나라의 발상지인 빈(豳)지방에서의 세시풍경을 전하는 이 시에서 물소뿔잔을 들어 만수무강을 비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굉은 어른들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술잔을 의미한다. 꼭 물소뿔만이 아니라 청동으로 만든 것도 북경 고궁박물원에 전한다.

 

세 번째로 치는 잔이 ‘약옥선(藥玉船)’이란 술잔이다.

 

중국 당나라 때 시골 선비 왕부(王敷)가 쓴 ‘주다론(酒茶論)’에 보면 술(酒)과 차(茶)가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말싸움하는 대목이 나온다. 술은 근심을 잊게 한다고 하여 망우군(忘憂君)이고, 차는 번민을 없애준다고 하여 척번자(滌煩子)라 이름하고 있다. 망우군이 먼저 좋은 다기(茶器)에 대해서 자랑하자 척번자는 술잔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렇게 대응한다.

 

“아아, 미천한 그대여, 풍류란 마음이 너그럽고 온화한 것인데 어찌 그것을 값으로 논한단 말이오. 술잔에도 금잔ㆍ은잔이 있고 약옥선(藥玉船)도 있소이다 그려. 그러나 주선(酒仙)들은 금잔 은잔보다 계절에 맞는 술을 더 즐겼지요. 봄에는 오얏동산(桃李園)에서 복숭아술 기울이며 달에 취했고, 여름이면 댓잎술(竹葉酒)로 더위를 잊었습니다.”

 

조선 선조 때의 문인인 석주 권필(權韠, 1569~1612)이 지은 주생전(周生傳)에 보면 주생이 여주인공 배도를 만나는 장면에서 술잔으로 술을 권하는데,

 

“주생이 노래 짓기를 마치자 배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술상을 들여와 약옥선(藥玉船) 술잔에다 서하주(瑞霞酒)를 따라 주생에게 권하였다.”

 

라고 하였다. 약옥선은 약옥(藥玉)으로 만든 술잔을 뜻한다. 약옥은 돌가루를 빚어 잿물을 발라 구운 것으로 색이 광택이 나므로 약옥이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관직에 나간 사람 가운데 3품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약옥으로 패(佩)를 만들어 앞에 걸고 다녔다. ​

 

4번째로는 ‘삼아(三雅)’라는 술잔을 친다고 했다. ​

 

삼아(三雅)는 세 가지 잔의 이름으로서, 옛날 중국 사천성(四川省) 낭중현(閬中縣) 어느 못(池) 속에서 동기(銅器, 구리로 만든 그릇) 세 개가 발견되었다. 그 동기에는 백아(伯雅)ㆍ중아(仲雅)ㆍ계아(季雅)라는 전자(篆字, 한자 서체의 하나)가 각각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이 동기에 새겨진 그대로 술잔 이름을 했다고 한다. ​

 

우리나라 고려 중기의 시인 김극기(金克己)는 강릉에 있는 한송정(寒松亭)을 찾아 정자 이름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는데 ​

 

我今探歷放幽興 내 지금 좋은 경치 찾아 마음껏 흥을 쏟아내며,

終日爛傾三雅盃 종일토록 쉴새 없이 삼아배를 기울이네

라고 했다.​

 

5번째는 ‘도핵배(桃核杯)’다. ​

 

복숭아씨(桃核)로 만든 술잔이다. 명나라 때의 이시진(李時珍)은 유명한 본초강목(本草綱目)이란 책에서 촉나라 후주(後主)인 유선(劉禪)이 도핵배를 갖고 있는데, 다섯 되의 술을 담을 수 있고 오래 저장할 수 있어서 맛이 좋다고 말한다. 복숭아는 예로부터 불로장생의 명약이고 신선들이 그것을 먹고 오래 산다는 것이니, 복숭아씨를 잔으로 만들어 마시니 몸에 좋고 오래 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옛날 한 되(升)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쓰는 되와 비교하면 두 홉이 조금 넘는 것이고, 다섯 되는 한 되 남짓한 것이었다고 한다.​

 

6번째로는 ‘금련배(金蓮杯)’와 ‘해어배(解語杯)’를 들고 있다.

 

금련(金蓮)은 중국 여자들의 전족을 이르는 말이다. 금련배는 전족(중국의 옛 풍습에서, 여자의 발을 작게 하려고 어릴 때부터 피륙으로 발가락을 감아 자라지 못하게 한 발)을 한 여성들의 3치, 곧 1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꽃신을 잔으로 해서 마시는 술을 의미하니, 여기에는 중국 여성들의 눈물이 담겨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해어배(解語杯)는 해어배(解語盃)라고도 하는데, 명나라 도종의(陶宗儀)가 쓴 《철경록(輟耕錄)》에 보면 막 꽃이 핀 연꽃을 따서 작은 술잔을 꽃 한가운데에 넣고 술을 부은 다음 옆자리의 기생이 꽃을 잡으면 술을 마시는 사람은 왼손으로는 가지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화판을 벌여서 입을 대고 술을 마시는 것으로서, 그 풍치가 그만이라고 한다.

 

현대 우리나라에서는 기생을 해어화라고 한다는 데서 착안해서 해어배를 달리 해석하고 있다. 기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주흥이 오르면 기생 입에다 술을 머금게 해서 입을 번갈아 맞추며 돌려 마시는 것을 해어배(解語杯)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체적인 잔의 재료나 형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술잔의 정취를 말하는 것이니 조금 차원이 다르고 이런 주법을 굳이 설명하다가는 여성을 깎아내린다고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벽통배(碧筒杯)’와 ‘연금배(軟金盃)’가 있다.

 

벽통배(碧筒杯)는 해어배와 비슷하지만 자연 그대로를 마시는 것이다. 넓은 연잎을 원뿔 모양으로 말아 술을 담고 줄기를 통해 흐르는 술을 마치 코끼리 코처럼 들어 올려 빨아 마시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연(蓮)의 향내음도 스미고 술이 차가워지기도 하여 삼복(三伏)의 술잔으로 선호되었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는 문인들의 좀 특별한 주법이다

 

고려 때의 시인 이규보는 이 벽통배로 술을 마셔도 시원하지 않고 더웠다고 불만이다.​

 

銀蒜垂簾白日長 은산 드리운 발에 해는 길고

烏紗半岸洒風涼 오사모 젖혀 쓰고 서늘한 바람 쐰다

碧筩傳洒猶嫌熱 벽통배로 술 건네도 오히려 더워

敲破盤氷嚼玉漿 쟁반의 얼음 깨어 옥장을 씹는다

 

... 여름날(夏日)​

 

다만 이런 것은 술잔, 술문화의 풍취라고 하겠는데 예전 중국에서는 술잔의 이름이 크기나 용도에 따라 각양각색이었고 나름대로 다 뜻이 있었다. 성호 이익은 그의 명저 《성호새설(星湖僿說)》에서 이렇게 말한다. ​

 

《설문(說文)》에, “한되들이 잔은 작(爵), 두되들이 잔은 고(觚), 서 되들이 잔은 치(觶), 너되들이 잔은 각(角), 닷되들이 잔은 산(散)이라 한다. 작(爵)이란 것은 한껏 넉넉하다는 뜻이고, 고(觚)란 것은 적다는 뜻인데, 분량을 조금 적게 마셔야 한다는 것이며, 치(觶)란 것은 알맞다는 뜻인데 적당한 양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角)이란 것은 닿는다[觸]는 뜻인데, 양에 따라 알맞도록 마시지 않으면 죄가 닥쳐온다는 것이고, 산(散)이란 것은 나무란다는 뜻인데 스스로 한정해 마시지 않으면 남에게 나무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술잔에 대한 총칭은 모두 작(爵)이라 한다. 술을 가득 부은 잔은 상(觴)이라 하는데, 이 상(觴)이란 것은 여러 사람에게 먹인다는 뜻이고, 굉(觥)이란 잔 또한 닷되들이인데, 이는 술을 과히 마시고 공경한 모습을 잃은 자에게 벌주는 잔이다. 굉(觥)이란 것은 또 넓다는 뜻이며 밝은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자(君子)는 허물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활짝 나타내게 된다. 그러므로 벌주를 굳이 먹이지 않았을 것이니, 술잔도 따로 이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였다.

 

... 성호새설 만물문(萬物門) 주기보(酒器譜)

참으로 중국 사람들은 쓸데없이 자세하고 쓸데없이 나누고 묘사한다. ​

 

다만 여기서 생각해보면 술이란 적당하면 천하의 명약이지만 지나치면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고 심하면 죽게 하는 극약이므로 스스로 삼가고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다만 옛사람들이 술잔의 정취를 찾는 것도 그렇게 술을 도(道)로서 마시자는 것이요, 지나치게 빠지지(溺)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을 터이므로, 좋은 술잔을 구하기보다는 좋은 술친구를 구하고 좋은 이야기로 인생의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다 소용이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술집에도 마음 놓고 가지 못할뿐더러 누구랑 같이 술 마시기도 어렵다 그러니 서로 술잔이 어쩌니저쩌니 즐기고 이야기할 계제가 아니다. 원래 한가위에 식구들이 모이고 동네 왕래가 잦아지면 술도 나누고 하지만 올해는 그럴 수 없이 사이버로 한가위를 쇠어야 한다고 하니 이런 술잔에 대한 정보나 지식은 그야말로 쓸모없는 지식이 되어버리는 것이 올해의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