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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대한민국 어문정책의 큰 틀 만든 최현배 선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45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 겨레의 문화 창조의 활동은, 그 말로써 들어가며 그 말로써 하여 가며, 그 말로써 남기나니: 이제 조선말은, 줄잡아도 반만년 동안 역사의 흐름에서, 조선 사람의 창조적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성과의 축적의 끼침이다. 그러므로, 조선말의 말본을 닦아서 그 이치를 밝히며, 그 법칙을 드러내며, 그 온전한 체계를 세우는 것은, 다만 앞사람의 끼친 업적을 받아 이음이 될 뿐 아니라, 나아가 계계승승(繼繼承承)할 뒷사람의 영원한 창조활동의 바른 길을 닦음이 되며, 찬란한 문화건설의 터전을 마련함이 되는 것이다.”

 

 

위는 1894년 오늘(10월 19일) 태어난 외솔 최현배 선생이 펴낸 《우리말본》 머리말에서 있는 말입니다. 최현배 선생은 1929년 조선어 사전편찬회의 준비위원과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33년까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이루어내기 위해 진력하였고 표준어 사정, 외래어 표기법 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942년 선생은 한글을 역사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연구한 《한글갈》을 펴냈는데 이 해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광복될 때까지 옥중 생활을 하였지요.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어문활동을 통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로 규정하여 주요 회원들을 체포, 징역형에 처한 사건입니다.

 

광복이 된 한 달 뒤인 9월 21일에 선생은 미군정청 편수국장과 ‘조선교육심의회’ 교과서편찬분과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 수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광복이 되었지만, 일본어로 된 교과서를 쓸 수는 없었기에 새로운 교과서 편찬은 매우 종요로운 일이었지요. 이때 선생의 이끎으로 ‘조선교육심의회’가 결의한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은 첫째로 초ㆍ중등학교 교과서는 모두 한글로 하되, 한자는 필요한 경우에 괄호 안에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며, 둘째로 교과서는 가로쓰기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어문정책의 큰 틀이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최현배 선생은 참으로 위대한 분임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