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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꼽추 허조는 좌의정, 사팔뜨기 체제공은 영의정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45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장애인을 바라보는 눈은 오늘날보다 훨씬 선진적이었는데 장애인에겐 조세와 부역을 면해주고, 죄를 지으면 형벌 대신 면포로 받았으며, 연좌제도 적용하지 않았지요. 또한 시정(侍丁) 곧 활동보조인을 붙여주고, 때때로 잔치를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내려주었습니다. 또 동서활인원이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만들어 어려움에 부닥친 장애인을 구제하였지요.

 

특히 조선시대엔 장애가 있어도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벼슬을 할 수가 있었지요. 예를 들면 조선이 세워진 뒤 예법과 음악을 정비하고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운 허조(許稠, 1369~1439)는 어려서부터 몸집이 작고 어깨와 등이 구부러진 꼽추였지만 좌의정까지 오를 수 있었지요. 또 간질 장애인이었던 권균(權鈞, 1464~1526)은 이조판서와 우의정에 오르고 영창부원군에까지 봉해졌으며, 체제공(1720년~1799)은 사팔뜨기였지만 영의정까지 올라 정조 때 큰 공을 세웠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장애인에게 사회분위기가 긍정적이었습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은 그의 시문집 《담헌서(湛軒書)》에서 “소경은 점치도록 하고, 벙어리와 귀머거리, 앉은뱅이까지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장애인을 무조건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가둬두고 장애 수당만 지급하면 끝이라는 오늘날에 견줘 정말 인간적이었지요. 다시 말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