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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우장(雨裝) 입은 경복궁 수문장 만나기

도깨비 마스크에 이어 새로운 비옷 갖춘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은 조선시대 군사들이 입은 우비용 옷인 유삼(油衫)과 쓰개(지삿갓, 갈모)를 복원하여 실제 광화문 파수군사들의 근무에 적용하여 공개한다.

 

 

 

문헌기록과 유물 조사로 유삼 2종(처네형, 방령형), 모 2종(지삿갓, 갈모) 실용화

 

이번 고증을 통해 실용화된 유삼(油衫) 2종(처네형, 방령형)과 모(帽) 2종(지삿갓, 갈모)은 문헌기록과 유물 조사에 따라 개발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삼(油衫)에 대해 ‘융복에 사의를 입는 것이 원칙이나 사의를 입는 이가 없었다.’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사의(도롱이)에 견주어 유삼의 활용성이 우수하다고 볼 수 있어 유삼이 더욱 자주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유삼 제작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삼 유물을 소장한 온양 민속박물관의 도움을 받았다. 쓰개의 경우 온양 민속박물관 소장 지유삼 유물과 《증보산림경제》 의주 주유삼 제조 기록, 미국 피바디 엑섹스 박물관 소장 평양감사향연도병 우장 도상을 참조했다. 이번 실용화에서 쓰개 2종은 수문군 직책에 따라 구분을 두었다. 지삿갓은 수문장이, 갈모는 수문군(갑사)가 쓰도록 하여 관람객들은 평소 보던 수문장 교대의식의 구성원을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비나 눈을 피하는 용도로 쓰거나 입은 장비는 사의(蓑衣)를 비롯하여 우의(雨衣), 유삼(油衫), 유의(油衣), 우구(雨具), 우장(雨裝), 우비(雨備) 등 다양한 용어로 표현되었다. 옷 개념으로 쓸 때는 유삼, 유의 등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머리에 쓰는 모자와 옷을 모두 포함하는 이름으로는 우장, 혹은 우구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여 수문장 교대의식에서는 우장(雨裝)이라는 이름을 썼다.

 

18일부터 비 예보, 우의 입은 수문장 보러 오세요

 

이번 우장 실용화를 통해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찾아갈 예정이다. 그동안 비가 올 때 모든 행사가 취소됨에 따라 궁궐 관람 콘텐츠를 즐기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해소하고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유물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볼 수 있다. 또한, 18일부터 비 예보가 있어 우의 입은 수문장을 볼 수 있으니 기대해 보자.

 

한국문화재재단은 새로운 관람 콘텐츠를 지속해서 개발하고 우장의 활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광화문 파수의식과 수문장 교대의식에 적용할 예정이다.

 

※ 문의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활용실(☎02-3210-3501)

 

 

 

 

■ 붙임 자료 “우장 기록”

 

《중종실록》 41권, 중종 16년(1521) 4월 30일 신해(辛亥) 2번째 기사

○ 대간이 백관이 사신을 접견할 때의 복색과 관련해 정원을 탄핵하기를 청하다

대간이 아뢰기를, “백관이 흰옷으로 명나라 사신을 만나보는 것이 매우 지당합니다. … 또 칙서를 맞은 뒤의 일은 마땅히 모두 상복을 입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향(香)을 받은 관원이 모두 길복을 입고 남문(南門)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마침 비가 와서 비옷을 입었기 때문에 두목들이 보지 않았기 망정이지 불행하게도 보았더라면, 반드시 본국에서는 황제 상중의 사사(私事)를 저렇게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는 매우 사체에 부당한 일입니다.”

 

《승정원일기》 원본24책 / 탈초본 2책, 인조 7년(1629) 2월 25일 (신해)

이경석이 예빈시 관원이 전한 금차(金差) 구관 당상의 뜻으로 아뢰기를, “세 차관이 한결같이 말을 전하기를, ‘바라건대 방사주(方絲紬) 1필(匹)씩을 얻어 유삼(油衫)과 궁전모(弓箭帽)를 만들고자 합니다.’ 하니, 신들이 답하기를, ‘이 물건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으레 백주(白紬)를 사용합니다.’ 하였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불쾌하게 여겨 기어이 얻으려고 하니, 해조가 처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유중림, 1766)

○ 명주로 기름저고리[油衫] 만드는 의주(義州)의 민간법

명주 26자[尺](중국 방식으로 짠 비단이 더 좋다)를 8폭(幅)으로 나누되, 1폭마다 길이 3자 2치가 되게 한다. 등 뒤 2폭은 전폭을 쓰고 좌우 폭은 모두 비스듬히 찢어 붙인다. 앞의 옷깃은 비스듬히 반 폭으로 1자 5치 되게 나누어 오른쪽 가장자리에 이어대고 뒤쪽 바람막이는 전폭 5치를 쓴다. 삼씨기름과 들기름 각각 5홉을 서로 잘 섞어 입에 머금고 고르게 기름저고리 위에 뿜어낸 다음 손 가는 대로 고르게 비벼 기름종이로 싸서 차지도 덥지도 않은 방에 놓아둔다. … 기름을 바르는 것은 대개 10여 차례 해 준다. … 처음부터 끝까지 기름 바르기를 많게 15∼16번까지 해주면 비로소 상등품이 된다. … 삼(衫)을 만들 때에 깃 길이[領長]는 1자 6치가 되게 하고 삼승포(三升布) 반폭을 쓴다. 이것은 의주사람 강해동(姜海東)의 만드는 방법이다. 비옷 만드는 첫째가는 방식이다.(농촌진흥청 2004: 310∼312)

 

《주해을병연행록》 권6, 431쪽.

대장지 닷 장을 주어 유삼을 ᄆᆞᆫ다라 길ᄒᆡ 닙고 가라 ᄒᆞ고, 장지 ᄒᆞᆫ 권과 부쳬 다ᄉᆞᆺ 병과 쳥심원 셰홀 주어 짐의 너허다가 제 부친의게 뎐ᄒᆞ라 ᄒᆞ니라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은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 쓴 사행일기. 1765년 겨울부터 1766년 봄까지 서장관인 작은 아버지를 따라 군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내용임.

 

《정조실록》 42권, 정조 19년(1795) 윤2월 22일 갑진 1번째 기사

○ 동지사 서장관 심흥영이 올린 별단

“… 또 붉은색 모직물로 우리나라의 유삼(油衫) 같은 것을 만들어 몸 앞부분을 가렸는데 손으로 안에서부터 잡아내어 가슴 앞부분에 대었습니다. 그러다가 황제의 행차를 맞을 때는 그것을 벗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