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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뭐지? 가을의 이 낯선 느낌은...

결국에는 익숙해질 것, 서글픈 익숙함이겠지만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7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계절이 빨리 가는 것 같지만 올해처럼 가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가는 해는 처음이렸다. 연초 겨울에 별 것 아닌 것처럼 시작된 질병이 봄을 망치고 여름을 부질없게 하고 가을까지도 꼼짝을 못 하게 하니 올 한해는 정말 우리가 계절에 따라 자연을 즐기지 못하고 ‘한 번도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한 해를 산 것이 아니냐는 억울함이 이제 가을을 보내면서 진하게 솟아오른다.

 

 

​우리는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면, 털털 털고 길을 나서곤 했다. 시골길이든 산길이든 호젓한 길을 걷다가 밤이 되면 자연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 홀로 길을 나섰네

안개 속을 지나 자갈길을 걸어가네

밤은 고요하고 황야는 신에게 귀 기울이고

별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네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여성 스베틀라나가 20여 년 전에 불러 우리의 애청곡이 된 ‘나 홀로 길을 나섰네’의 노랫말에서처럼 가을은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만나고 자연과 대화하는 계절이었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가을이다. 감염을 막기 위해서라며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호소 겸 명령을 거역하기 어려웠기에 어디든 가서 마음 놓고 차 한 잔 음악 한 곡 마음대로 듣기 어려웠고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마음 놓고 나눌 기회를 갖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올해는 그동안 우리와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우리 곁에서 떠나가는 해인 것 같다.​

 

우리, 아니 나도 그새 많이 떠나보냈다. 젊을 때 그렇게 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고, 보고 듣고 공부할 것도 많더니 이제는 점점 일이 없어져 홀가분해지고 사람도 덜 만나고 술을 덜 먹게 된다. 그만큼 몸이 홀쭉해지고 정신도 맑아지지만, 그만큼 마음 한구석에, 머리 한쪽에 뭔가가 찬 가을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것이 있다. 선배들이 하나둘 떠나가시고 같이 웃고 울던 동료들도 몸이 안 좋다고 모임에 안 나오려 하고, 퇴직하는 후배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만나기가 어려우니 점점 길가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山下孤亭盡日留 산 아래 외로운 정자에 종일토록 머무니

綠筠黃菊使人愁 푸른 대 누런 국화 사람을 시름 하게 한다

天涯物色還佳節 하늘 닿는 자연에는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가

壺裏風光更杪秋​ 한 잔 술에 풍광은 어느새 늦가을 되었구나

 

雲散碧空分嶺陸 구름은 창공에 흩어져 고개와 육지 구분되고

日臨荒野見汀洲 해는 거친 들에 비추어 물가와 모래톱 보이네

悲歡自是千年事 슬퍼하고 기뻐함 스스로 천 년의 일이라

仙夢悠悠海外州 바다 밖 고을에 신선의 꿈만 유유하리라

 

                                                    ... 기대승, 백운정에서 양 통판을 전송하며

 

 

맥주 같은 가벼운 술에 카페 같은 데서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광화문 어느 카페에서 누가 확진을 받았다는 보도 이후엔 그쪽으로 나가는 것조차도 꺼리게 되니, 정을 붙이고 자주 가던 카페가 어찌 유지가 될 것인가? 이미 7년 전에 다른 카페가 문을 닫았는데 이번 카페도 문을 닫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지만 감히 전화도 못한다. 그걸 확인하면 공연히 마음만 더 아프지 않을까 하는...​

 

현직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필요하겠지 하면서 용돈을 아껴 모았던 책이랑 자료들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음을 확인한 순간 그 책들도 미련 없이 대폭 보내버렸다. 마침 집 근처에 있는 고전번역원에서 중요한 자료들을 받아준 것이 나에겐 행운이었다. 수백 장의 음반은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분께 시집을 보냈다. 젊은 날의 온갖 꿈과 희망과 즐거움을 주던 것들이 그나마 있을 자리를 찾아간 것은 다행인데. 광화문 카페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면 이 카페들에 담았던 나의 추억과 낭만을 잡아두거나 보관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옛 친구들이 사라지는 만큼 이젠 새 친구를 만들고 만나야 할 것 같다. 자연이라는 친구, 시간이라는 풍부한 자산이 있지 않은가? 아직 코로나 금족령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 들판을 함께 걷거나 음악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연락하자. 광화문 카페만큼은 아니더라도 동네에 생겨나는 만남의 공간을 개발하고 거기서 인생과 예술을 다시 반추해 보자. 기억의 창고에 들어가려고 하는 소중한 지식과 추억들을 거기서 함께 꺼내어 나눌 수 있도록 해보자.

 

큰 강연장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으니 이제 집 근처나 지역사회 도서관, 소모임에서도 사람들의 만남과 소통이 허용되면 우리가 그동안 가꾸고 공부하고 키워 온 삶의 지혜들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정말 그냥 두면 금방 없어질 시간이 아직은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후배들이나 세상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의 아들딸도 있고 어느새 손자 손녀들도 있으니 그들에게 우리의 시간을 나눠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그렇게 뭔가를 보내어 허전할 것 같으면서도 또 머리가 맑아져 새로운 것을 얻는 계절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을 합쳐서 우선 눈앞의 공동의 적인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고립시켜 이 가을의 점점 세지는 바람 속으로 모두 날려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으로 점점 나타나고 있어서 우리의 희망을 무디게 하고 있지만...

 

 

 

파란 하늘엔 흰 구름만 두둥실 떠다니고 차가워진 공기는 게으른 나무들의 옷을 바꾸어준다. 그 때문인가? 나뭇잎이 모두 물들어 땅으로 내려온 다음 산에 난 작은 오솔길마저도 덮어버리는 이 가을이 낯설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익숙해질 것이다. 그것은 서글픈 익숙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