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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소학》 읽는 아이 어찌 큰 뜻 알겠는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47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業文猶未識天機(업문유미식천기) 글을 읽어도 아직 천기를 알지 못하였더니

小學書中悟昨非(소학서중오작비) 《소학》을 읽고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도다

從此盡心供子職(종차진심공자직) 이제부터 마음을 다하여 자식의 직분을 하려 하노니

區區何用羨輕肥(구구하용선경비) 구차스럽게 어찌 잘살기를 부러워하리오?

 

이는 조선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굉필(金宏弼)의 <독소학(讀小學)> 곧 《소학(小學)》을 읽고 쓴 한시입니다. 그는 공부해도 아직 천기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는데, 《소학(小學)》을 읽고 나서야 어제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다하여 자식의 직분을 다하고자 하니 구차스럽게 잘사는 삶을 부러워하지는 않겠다고 노래합니다. 그는 《소학》에 심취해 스스로 ‘소학동자’라 일컬었으며, 주위에선 그를 《소학》의 화신이라고 했습니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은 자신의 책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에서 위 시에 대해, “김굉필은 나와 동갑인데 생일이 나보다 뒤이다. 현풍에 살았는데, 그의 독특한 행실은 비할 데가 없어서 평상시에도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있었으며, 집 밖에는 일찍이 읍 근처에도 나가지 않았다. 손에서 《소학》을 놓지 않았고, 파루를 친 뒤에야 침소에 들었으며, 닭이 울면 일어났다. 사람들이 국가 일을 물으면 그는 반드시, ‘《소학》 읽는 아이가 어찌 큰 뜻을 알겠는가.’ 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김굉필은 학문으로 정몽주(鄭夢周)ㆍ길재(吉再)ㆍ김숙자(金叔滋)ㆍ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유학사의 정통을 계승하였다고 하는데 스승 김종직에게 공부한 기간이 짧아 스승의 후광보다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와 교육적 공적이 더 크게 평가됩니다. 조광조의 스승이기도 한 김굉필은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극형에 처해졌지만, 이후 중종 반정 뒤 복권되어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고, 1517년 증 우의정, 1575년 증 영의정에 거듭 추증되었습니다. 또 1610년(광해군 2) 정여창(鄭汝昌)ㆍ조광조ㆍ이언적(李彦迪)ㆍ이황(李滉)과 함께 오현(五賢) 한 사람으로 문묘에 배향되었지요.